[DUGOUT Inside The Park] SPOTV 이현우 해설위원

조회수 2024. 5. 6. 14:3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최고의 유틸리티

세계 최고의 선수들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이하 MLB). 흔히 야구를 깊게 좋아하는 팬이라면 한 번쯤 MLB를 직관해보는 걸 꿈으로 삼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무대기에, 보통은 온라인으로 경기를 챙겨보는 게 전부다. 사실 한국 기준으로 아침, 혹은 새벽 3~5시에 시작하는 생중계를 보는 것조차 그리 여의치 않은 게 현실. 하지만 그걸 볼 정도로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국어로 들려오는 경기 해설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이번 ‘더그아웃 인사이드 더 파크’에서는 칼럼, 유튜브, 팟캐스트, 해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는 유틸리티 플레이어를 소개해볼까 한다. 더욱 깊은 야구를 탐닉하는 이들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는 주인공, 바로 이현우 해설위원이다.

Photographer Inbi Na Editor Mingyu Kim Location Dugout Magazine Studio

<더그아웃 매거진> 독자분들한테 자기소개하면서 시작하겠습니다. (3월 6일 인터뷰)
안녕하세요. 저는 SPOTV에서 MLB 해설위원을 하고 있고, 네이버에서 ‘오늘의 MLB’를 연재하고 있는 이현우입니다.

MLB 해설을 맡고 있는데, 평소에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시즌 중에는 새벽에 일어나서 MLB 경기를 꼭 챙겨보려고 해요. 그러면서 칼럼 작성도 하고, 다음날 해설 준비도 하고요.

MLB 특성상 새벽에 중계가 잡히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활동 시간대가 규칙적이지 않은 만큼 생체 리듬을 조절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10년이 넘게 이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데도 적응이 잘 안 돼요. 사전에 준비한 내용만큼이나, 중계할 때의 제 몸 상태가 해설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그래서 중계 전날엔 최대한 일찍 자면서 수면 시간을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해설위원을 맡은 지 4년 차가 됐습니다. 처음과 비교했을 때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처음엔 긴장을 많이 했죠. 모든 스포츠 중계는 생방송으로 진행되니까요. 그래서 철저하게 준비를 하곤 했는데, 사실 중계는 저 혼자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제 지식을 뽐내는 시간도 아니고요. 이젠 캐스터와 대화하듯이, 시청자분들이 최대한 편하게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거에 주안점을 두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옛날보다는 덜 긴장이 되는 효과도 있었어요.

SPOTV 대표 해설위원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데, 그 원동력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손사래) 대표라는 건 가당치도 않습니다. 지금도 선배들의 중계를 들으면서 배우는 상황이에요. 그래도 간혹 제 중계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건 제가 최대한 경기에 집중하려고 노력한 덕이 아닐까 싶어요. 또 평소에 어떻게든 뻔한 얘기는 하지 않으려고 해요. 시청자분들에게 다양한 인사이트를 드리려고 한 것이 좋은 평가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중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뭔가요?
제가 야구라는 종목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야구는 굉장한 역사와 서사를 가지고 있어요. 근데 그건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이잖아요? 과거로부터 이어진 서사를 살리는 것도 저희의 역할이지만, 중요한 건 현재의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그래서 듣는 이로 하여금 현재 상황에 몰입하도록 하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어요.

#유틸리티가 되기까지

살면서 야구를 처음 접한 건 언제였나요?
제가 미국에서 태어났어요.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한국으로 오긴 했지만, 유년 시절을 미국에서 보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미국 야구를 접할 수 있었어요. 어릴 때 아버지랑 캐치볼도 자주 했고요. 집에서 TV로 야구 중계로 봤고, 예전에 뉴욕 메츠의 홈구장이었던 셰이 스타디움에도 가곤 했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제 일상에 야구가 들어와 있었어요.

뉴욕 메츠의 팬으로 알려져 있어요. 뉴욕을 연고로 하는 팀이 메츠 말고도 양키스가 있는데, 메츠를 응원하게 된 이유는 뭐였는지 궁금해요.
응원팀이 꼭 지역으로 나뉘는 건 아니지만, 보통 양키스의 팬들은 맨해튼이나 브롱스에 있는 경우가 많아요. 홈구장인 양키스타디움이 브롱스에 있거든요. 근데 저 같은 경우는 나고 자란 동네가 퀸스와 브루클린 쪽이었는데, 이곳은 전통적으로 메츠의 팬이 많은 동네에요. 그래서 동네 분위기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어요. 메츠의 유니폼이 예뻐 보이기도 했고요. 결정적으로, 제가 야구를 처음 보기 시작했을 땐 마침 양키스가 최악의 암흑기에 빠져 있었어요. 반면에 메츠는 1986년에 우승을 거뒀을 정도로 강팀이었고요. 또 아직도 생각이 나는 게, 메츠의 1루수 중에 키스 에르난데스라고 지금은 SNY(Sportsnet New York)에서 해설하는 분이 있어요. 이분이 현역 시절엔 콧수염을 길러서 카리스마가 있었거든요. 옛날에 미국에서 켈로그 시리얼을 사면 야구 카드가 동봉돼 있던 시절이 있었는데, 거기서 그 선수의 반짝이 카드가 나온 거예요. 그걸 얻고 나서 더 메츠를 응원하게 됐던 기억이 나요.

나중에 한국에 들어왔을 때는 KBO리그 분야로 진출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KBO리그를 좋아하긴 하지만, MLB와는 즐기는 방식에 차이가 있었어요. 일례로 제가 예전에 태평양 돌핀스와 현대 유니콘스 팬이었어요. 지금은 없어진 도원야구장에도 자주 갔을 정도로요. 근데 MLB는 동경의 대상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야구 게임만 하더라도 MLB는 ‘하드볼’이나 ‘하이 히트 베이스볼’ 같은 게임이 있었지만, KBO리그 게임은 잘 없었어요. 거기다 MLB는 90년대에도 이미 기록을 정리한 사이트가 있었으니까, 팬으로서 그 리그를 분석할 기회도 있었고요. 그런 대목에서 더 흥미를 붙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엠엘비파크’ 등 야구 커뮤니티에도 활발하게 글을 쓰곤 했죠. 처음으로 커뮤니티에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뭐였나요?
본격적으로 글을 쓴 건 2001년~2002년 무렵이었어요. 이때가 엠엘비파크 말고도 MLB 관련 커뮤니티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시기였거든요. 전 그 당시에 중고등학생이었지만, 거기서 글을 쓰는 ‘고수’분들의 글을 보면서 공부를 많이 했어요. 그래서 어린 마음에 흉내를 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글을 잘 쓰는 게 멋있어 보였거든요. 처음엔 해외 사이트에 올라온 기사를 번역해서 올리곤 했는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조금씩 제 생각을 담아 분석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혼자서 기획부터 자료 준비까지 다 해야 하니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아는 것도 많이 없었을 때였죠. 근데 뭣도 모르던 시절이라 더 용기가 있었어요. 아는 게 많아질수록 사람은 점점 겸손해지기 마련이잖아요. 지금도 부족한 게 많지만, 어릴 땐 저 나름대로 어떤 ‘진리’가 있다고 믿었어요. 당시에 한국에는 잘 없는 세이버 매트릭스에 관한 내용을 소개하면서, ‘이게 진리야!’라는 마음으로 활발하게 글을 쓰곤 했죠. 지금 돌이켜 보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도 제 글을 잘 썼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조금 귀엽게 보셨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그렇게 커뮤니티 외에도 정식으로 글을 기고하기 시작하다가, 아는 업계 사람들이 “아예 이쪽에서 일할 생각은 없니?”라고 하셔서 발을 들이게 됐죠.

해설위원의 자리까지 오게 된 과정은 어땠나요?
본격적으로 경력을 쌓기 시작한 게 2016년 초에 MBC SPORTS+에서 ‘이현우의 MLB+’라는 이름으로 칼럼을 쓸 때부터였어요. 근데 여기에 웃긴 사연이 있는데, 사실 전 처음에 해설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간 거였거든요. 그래서 카메라 테스트도 했는데, 막상 가서 떨어진 거죠. 사실 떨어지는 게 당연한 거였지만, 그때만 해도 그 상황이 진짜 분했어요. 해설에 대한 욕심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분명 제가 부족한 점이 많았죠. 이후로 열심히 칼럼도 쓰고 팟캐스트랑 유튜브도 하면서, 지식적인 부분 말고도 방송에서 말하는 능력을 키우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다가 MLB가 SPOTV로 중계권이 넘어가면서 해설위원이 필요하게 됐고, 그동안의 경력을 보고 SPOTV에서 절 써주신 거죠. 그때도 새롭게 카메라 테스트도 하고, 한두 달 정도 트레이닝을 하고 투입이 됐는데, 그 과정이 정말 도움이 됐어요.

’이현우의 MLB+’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콘텐츠도 만들고 있죠. 처음 유튜브 계정을 만들었을 때 구상한 방향성은 어떤 거였나요?
첫 번째로는 글이나 중계로 다루지 못하는 부분을 팬들에게 제공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어요. 그 시기가 텍스트에서 영상으로 유행이 넘어가는 시기였거든요. 텍스트가 내용을 압축적이고 깊게 담아낼 수 있다면, 영상은 사람들이 비교적 편하게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MLB에 입문하고자 하는 팬들을 위한 채널을 운영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는데, 막상 시작해보니까 방향성은 계속 달라지더라고요.

지금은 어떤 식으로 달라졌나요?
아무리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도 결국은 사람들이 찾아서 봐야 하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시의성이 높은 주제를 찾게 되고요. 그리고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고 MLB의 사진이나 영상을 퍼와서 보기 좋게 디자인을 했는데, 이게 다 저작권이 걸려 있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처음 계획한 대로 시각자료를 풍부하게 쓰지 못하니까 초기 구상과는 많이 달라졌죠.

얼마 전에는 김형준 위원과의 합방을 진행했어요. 두 유명 해설위원의 만남이라 국내 MLB팬들 사이에서도 화제였어요.
김형준 위원님과 일한 지는 워낙 오래됐어요. 그래서 유튜브를 만들고 나서 ‘한번 해보자’라는 얘기는 늘 있었는데, 미루고 미루다가 지난겨울에서야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됐죠. 작년 시즌이 끝나고 합방을 진행하기로 얘기는 오갔습니다만, 그 시기를 류현진 선수의 계약이 끝난 이후로 잡자고 정했어요. 근데 아시다시피 류현진 선수의 계약도 계속 미뤄졌잖아요. 그래서 예상보다 늦게 하게 된 거죠.

류현진의 계약 확정 뉴스를 기다리면서 조금은 애간장이 탔겠어요.
합방 시기를 계약 체결 이후로 잡은 이유가 있는데, 김형준 위원님이 “류현진 선수의 계약이 터졌을 때 내가 현우 방송에서 라이브를 하고 있으면, 내가 관련 클립을 못 올리지 않겠냐?”라고 하시더라고요. 방송 날짜가 계속 밀리게 된 이유인 거죠. 이게 농담조로 말씀하신 거지만, 가만 보면 진심도 약간 들어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장난)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류현진의 행선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갔는데, 한화행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분은 어땠나요?
저도 현지에 거의 못 나가는 실정이지만, 그래도 업계 소식통을 통해 전해 듣는 게 있어요. 그때 들었던 거에 따르면 (스캇) 보라스 에이전트에서도 MLB 잔류에 무게감이 있었다고 해요. 작년 류현진 선수의 성적을 고려하면 충분히 좋은 계약을 따낼 수 있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근데 이번 MLB 스토브리그가 묘하게 흘러갔거든요. 오타니 쇼헤이 선수를 제외하고는 거물급 선수들의 계약이 전부 지연되면서, 시범 경기가 시작할 때쯤 류현진 선수 쪽에서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와중에 한화랑 접선했다는 첩보를 전해 들으니까, ‘아, 지금 시점에 한화랑 만났다면 류현진 선수도 확실히 흔들리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워낙 한화에 대한 애정이 강했던 선수니까요. 그렇게 예상대로 KBO리그 복귀 소식이 들렸을 때, 전 사실 아쉬운 마음이 컸어요.

아쉬운 기분은 정확히 어떤 대목이었는지 궁금하네요.
올해 이정후, 고우석 두 선수가 미국으로 가면서, 다시 국내에서 MLB에 대한 관심이 쏠리는 시기잖아요. 이럴 때 큰형으로서 류현진 선수가, 그것도 유일한 한국인 선발 투수로서 1년만 더 이끌어준다면, MLB 시장이 더 커질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그런 이유에서 아쉬운 마음이 컸는데, 선수 입장이 돼 보니까 11년 동안 외국에서 고생깨나 했을 거잖아요. 그래서 그 심경이 이해도 되고요. 지금은 아쉬움을 내려놓은 상태입니다.

KBO리그에 비하면 여전히 국내 MLB 업계의 시장이 작은 상황입니다. 업계에 종사하면서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요?
말씀대로 시장 규모가 작은 편이죠. 그래서 업계에 있는 사람들이 아등바등해도 그 규모를 키우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에요. 그렇다 보니까 새롭게 유입되는 젊은 친구들이 없기도 하고요. 요새 젊은 세대는 손흥민 선수를 포함해서 축구를 좀 더 좋아하다 보니까, 새로운 피의 유입이 해외 축구 시장으로 집중되는 상황이에요. 그런 맥락에서 아쉬움이 크죠.

#유틸리티의 시선

2024시즌이 시작됐습니다. 올해 MLB 시즌을 어떻게 보고 있나요?
앞서 얘기한 대로 이정후 선수와 고우석 선수가 새롭게 메이저리거가 됐잖아요. 비록 류현진 선수는 이제 MLB에서 볼 순 없겠지만, 여러모로 세대가 교체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거기에 MLB 전체로 봤을 때는 오타니가 LA 다저스와 7억 달러의 계약을 맺으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고, 덕분에 국내에서도 MLB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이 한국에서도 MLB가 흥행할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곧 ‘MLB 월드투어 서울 시리즈 2024’가 열릴 예정인데, 해설위원으로서 이번 시리즈에서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요?
일반적으로 TV로 접하는 것과는 다르게, 직관은 오프라인 콘텐츠인 데다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부분이잖아요. 분명 이번 서울 시리즈를 계기로 MLB에 대한 관심도가 환기될 거로 봐요. 해설위원으로서 기대하는 부분이 있다면, 최고의 선수들이 멋진 경기력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한 팀이 일방적으로 이기는 게 아니라 정말 멋있는 명승부가 펼쳐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그 외에는 행정적인 부분을 포함해서 준비할 요소들이 많잖아요. 중계사인 쿠팡 플레이뿐만 아니라MLB 사무국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엄청 열심히 뛰어다니고 계시더라고요. 제발 큰 사고 없이 말끔하게 대회가 진행됐으면 해요.

해설위원으로서 올해 뉴욕 메츠의 성적을 예측해 볼까요?
올해는 쉬어가는 해죠. (해탈) 지난해 메츠가 MLB에서 가장 압도적인 연봉을 지불하면서까지 우승에 도전했지만, 잘 안 됐잖아요. 끝내 시즌 중반에 저스틴 벌랜더라든가 맥스 슈어저 같은 주축 선수들을 팔면서 일찍이 리빌딩에 돌입했고요. 그나마 최소한의 경기력을 위해서 1~2년 계약으로 여러 자원을 영입했지만, 아무래도 힘들죠. 1선발인 센가 코다이가 부상으로 이탈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객관적으로 평가해보자면… 동부지구 5개 팀 중 4등!

그럼, 해설위원의 직함을 내려놓고 팬심을 살짝 얹어서 다시 예측해 본다면요?
팬심을 얹어도… 5할 승률만 달성하면 다행이라고 봐요. 중요한 건 볼 만한 수준의 경기력이 나와줘야 한다는 거겠죠. 당장 올해의 성적이 아니더라도, 미래를 위해서 프란시스코 알바레즈나, 마크 비엔토스, 브렛 베이티 같은 젊은 선수들이 잘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MLB를 봐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뭔가요?
메츠의 팬으로서는 2000년 월드시리즈 5차전에서 알 라이터 선수가 8.2이닝 동안 142구를 던지고 울면서 강판 됐던 경기가 떠올라요. 하지만 MLB 팬으로서 골라보자면, 2001년 월드시리즈 7차전이 극적이었어요. 당시 뉴욕 양키스는 90년대에만 네 번을 우승한 ‘악의 제국’이었고, 상대였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는 창단한 지 4년밖에 안 된 신생팀이었거든요. 그런 신생팀이 악의 제국을 상대로, 그것도 통산 포스트 시즌에서 블론 세이브가 없었던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를 상대로 7차전에서 끝내기 안타를 친다는 게 얼마나 극적이에요. 그리고 그 상황까지 가는 과정도 재밌었고요. 그 시리즈에서 김병현 선수가 두 번이나 블론 세이브를 해서 7차전까지 간 터라, 거기서 떨어지면 완전 역적이 되는 게 아닌가 싶어서 걱정도 됐어요. 또, 시리즈를 지배한 커트 실링과 랜디 존슨의 원투펀치도 멋있었고요.

직접 인터뷰를 해본 선수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선수는 누가 있었나요?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을 한 번씩 만나봤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는 건 오승환 선수요. 제가 알던 오승환 선수는 완전히 과묵한 이미지였는데, 만나보니 굉장히 웃음도 많고 신사적이었어요. 또, 자신의 공에 대해 깊게 연구한다는 느낌도 받았고요. 그때가 MLB에 진출하면서 만난 거였는데, 답변에 자신감이 묻어나서 그런지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어요.

최근 이정후의 출국 기자회견은 어땠나요?
정말 잘생겼고, 반짝반짝 빛나고, 자신감 넘치는 젊은 세대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사실 이정후 선수는 갓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에 지명됐을 때 MBC SPORTS+에서 본 기억이 나요. 당시 이종범 전 해설위원(현 텍사스 레인저스 연수 코치)께서 데리고 오셨거든요. 그때 회사 센터장님이랑 팀장님이 저한테 “얘 잘 봐야 한다, 얘는 MLB에 갈 친구다”라고 하시더라고요. 물론 저도 이정후 선수가 유망주인 건 알고 있었죠. 하지만 지금에 비하면 체형도 마르고, 방송국 분위기에 적응을 못 해서인지 표정도 주눅이 들어있었어요. 근데 이번에 출국 기자회견에 갔는데, 그때보다 덩치도 커지고 얼굴도 더 잘생겨진 거예요. 어릴 때 보지 못했던 자신감도 느껴지다 보니까, 확실히 슈퍼스타가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올 시즌 ‘메이저리거’ 이정후에게 거는 기대는 어느 정도인가요?
지금 시범 경기에서 정말 잘하고 있죠. 물론 시범 경기는 시범 경기일 뿐이라는 것도 맞지만, 이정후 선수처럼 처음 MLB에 발을 들인 입장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봐요. 첫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무대잖아요. 긴장도 하고, 떨릴 법도 한데 이 정도로 잘하니까 기분이 좋더라고요. 주변의 예상보다 훨씬 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돌풍을 일으킬 것 같아요.

#유틸리티의 진심

어느덧 MLB 업계에서 일한 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어요.
10년이 넘은 건 사실이지만, 아직 이룬 것도 하나도 없고… 일단 저조차도 막내에서 갓 벗어난 수준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제 글과 해설을 좋아해 주신 분들이 계셨고, 절 좋게 보신 선배님들이 그동안 잘 이끌어주셨어요. 그렇게 보면 전 운이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추천을 통해서 MBC SPORTS+에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고, SPOTV에서 해설을 맡게 된 것도 행운이었고요. 부족한 점으로 가득했지만, 앞으로는 더 자신 있게 뭔가를 이뤄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특별한 직업적인 꿈이나 목표라기보다도, MLB 팬들을 위해서 꾸준히 양질의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본인이 생각하는 야구의 최대 매력은 뭔가요?
매력은 정말 다양하지만, 최근에 느끼는 건 무엇보다 경기 수가 많다는 거요. 그리고 야구를 틀어놓고도 다른 걸 할 수 있다는 거요. 예를 들면 축구나 농구 같은 스포츠는 계속해서 보고 있어야 하는데, 야구는 틀어놓고 설거지도 할 수 있잖아요. 그러다 놓친 부분이 있으면 리플레이도 보여주고요. 매일 경기가 있는 데다, 가볍게 볼 수 있다는 거죠. 그건 결국 야구가 일상에 스며들기 좋다는 의미예요. 미국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가 뭔가요?’라고 물어본다면, 야구가 1위를 하진 않아요. 보통 NFL(미국 미식축구리그)나NBA(미국 프로농구)를 뽑는 사람이 대다수니까요. 하지만 그들에게 야구가 첫 번째로 좋아하는 종목은 아닐지언정, 그냥 일상 그 자체인 거예요. 경기 시간이 되면 자기 응원팀의 중계를 틀어놓는 게 당연한 일이고요. 그래서 야구만의 이런 일상적인 분위기가 참 매력적이에요.

MLB 업계로 나가고 싶어 하는 후배들한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이런 말을 할 위치에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웃음) 그래도 몇 마디를 남겨보자면, 국내에서 MLB 업계는 KBO리그에서 일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문도 좁고, 할 수 있는 일도 거의 없어요. 그렇게 정말 힘든 길이지만, 그런데도 이 길을 걸어가고 싶다면 ‘꾸준함’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10년 동안 일하면서 굉장히 빛나는 친구들을 본 적이 많거든요. “어떻게 이렇게 글을 쓰지?” 싶은 경우를 발견하곤 하는데, 아쉽게도 그 사람들이 오래 가지 못하고 금방 사라질 때가 많더라고요. 물론 다른 쪽으로 잘 풀려서 그만둔 친구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이 일을 꾸준하게 한다는 게 참 쉽지 않다고 느껴요.

본인의 인생을 야구 경기로 비유해보면, 지금 몇 회 정도 왔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직 30대니까, 길면 60대까진 이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그래서 한 3회 말 2아웃 정도? 아직 경기를 알 수 없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남은 6이닝은 어떻게 풀릴 것 같나요?) 제가 열심히 해야겠죠. 추가 실점을 허용하지 않고 지키다 보면, 저희 쪽에서 홈런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구독자분들이랑, 본인을 응원하는 팬분들한테 인사 부탁해요.
일단 감사합니다. 팬 여러분들 덕분에, 절 조금이라도 좋게 보시는 분들 덕분에 지금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었다고 늘 생각해요. 어떻게든 받은 사랑에 보답하려고 노력하는데, 이게 쉽지 않네요. (웃음) 그래서 더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유튜브 커뮤니티 이벤트를 통해서 선물을 드린다거나 한 적도 있는데, 이런 건 단편적인 거고요. 어쨌든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양한 분야에서 질 좋은 콘텐츠를 제공하는 거잖아요. MLB를 더 즐기실 수 있도록 꾸준히, 열심히 콘텐츠를 만들 테니까, 앞으로도 사랑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4년 156호 (4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www.dugoutmz.com
페이스북 www.facebook.com/DUGOUTMAGAZINE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dugout_mz
유튜브 www.youtube.com/@DUGOUTMZ
네이버TV tv.naver.com/dugoutmz


<더그아웃 매거진>은 대단한미디어가 제작, 제공하는 콘텐츠입니다.
포스트 내 모든 콘텐츠의 저작권은 대단한미디어와 표기된 각 출처에 있습니다.
잡지 기사 전문을 무단 전재, 복사, 배포하는 행위를 금하며,
적발 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음을 알립니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