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테이블에 마이크가 있다?"..드래프트 뒷이야기
♦ 앞순위 선수는 오래 전 결정
이번 드래프트에 참가한 선수는 총 42명이다. 그 가운데 대학 재학생이 역대 동률 1위인 10명이 참여한 것이 눈길을 끈다. 이들 덕분에 팀에 맞는 자원을 고르면서 1라운드 선수를 지명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어떤 선수가 어떤 순위에 뽑힐지는 드래프트가 열리기 전까지 오리무중이었다. 심지어 1순위도 예상과 달라질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는 연막작전으로 보인다. 한 관계자를 통해 25일 7순위까지 선발 예상 선수를 들었는데 실제로 그대로 나왔다.
1순위 지명권을 얻은 LG는 지명 순위가 나왔을 때 6대4 정도로 양준석에게 기울었고, 드래프트를 앞두고는 양준석 지명이 확실시 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LG는 드래프트 현장에서도 양준석이 아니라 20순위에서 누구를 뽑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번 드래프트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KT는 지난해 하윤기에 이어 또 빅맨을 뽑아야 하는지 고민했지만, 순리대로 LG에서 뽑고 남은 선수를 선발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골밑을 책임질 김민욱, 김동량, 하윤기에 이두원까지 가세하면 빅맨이 포화 상태다. KT 관계자는 이두원을 지명하면 빅맨 자원 교통 정리를 고려해볼 여지를 남겼다.
KT와 반대로 한국가스공사는 2년 연속 운이 따르지 않았다. 자신들의 이름이 새겨진 구슬조차 구경을 하지 못하고 또 8순위 지명권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8순위로 신승민을 뽑아 정효근의 부상 공백을 메웠던 가스공사는 한 번 더 순위 대비 만족스런 염유성을 지명했다. 내년에 무조건 입대해야 하는 전현우의 빈 자리를 완벽하게 채울 슈터를 충원한 것이다.
가스공사는 2라운드를 건너뛰고 3라운드에서 안세영을 뽑았다. 전반적인 기량에서는 안세영보다 더 나은 선수가 있다. 예를 들면 성균관대 득점을 책임진 김근현이다. 유도훈 가스공사 감독은 드래프트를 마친 뒤 “우리 테이블 밑에 마이크가 있는 거 같다(웃음). 2라운드에서 뽑으려고 했던 선수들을 언급하면 앞에서 다 뽑았다”며 “3라운드에서도 그랬다. 예상 명단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이 앞에서 다 지명되었다. 안세영은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적극성이 좋아서 뽑았다”고 안세영 선발 이유를 설명했다.
다른 구단 관계자는 “트라이아웃을 할 때 안세영이 허슬 플레이를 하자 유도훈 감독이 ‘쟤는 키가 몇이야?’라고 했다. 가스공사가 안세영을 뽑는 걸 보고 그래서 뽑았나 했다”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이번 드래프트는 2라운드 중반 이후 많은 팀들이 지명을 하지 않을 거라는 예상이 나왔다. 팀당 두 명씩은 뽑더라도 3라운드에서 많이 뽑을 거라는 의미다. 그렇지만, KT와 가스공사만 2라운드 지명을 포기했다. 더구나 3라운드에서 7명이나 뽑혔다.
3라운드 7명 지명은 역대 신인선수 드래프트 공동 1위 기록이다. 2018년에도 3라운드에 7명의 선수 이름이 불렸다. 당시에는 2라운드 지명 인원이 3명에 불과했다. 2라운드에서 최대한 뽑지 않고 3라운드에서 많이 선발했던 2018년과 올해는 분명 차이가 있다.
한 구단 관계자는 “대학연맹에서 아시아쿼터 선수 영입과 관련해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그래서 단장님도, 감독님도 3명을 뽑아야 형평성에 맞다고 하셨다”고 예상보다 많이 뽑힌 이유를 설명했다. 이 구단은 최대 4명까지 뽑으려고 했는데 해당 선수가 다른 구단의 부름을 받아 3명으로 마무리했다고 한다.
대학 감독들은 지난 7월 열린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 때 아시아쿼터 제도로 필리핀 선수가 많이 영입되는 것과 관련해 KBL과 이야기를 나눠봐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실제로 최근 대학 감독들은 KBL, 일부 구단 사무국장과 이 문제를 논의했다.
정재훈 한양대 감독은 “대학이 취업률 때문에 예산이나 선발 정원이 줄어들고 있고, 이를 고등학교에서도 우려하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여러 가지 질문을 하고, 답변도 들었다. 대학도, KBL도 서로 노력하겠다는 결론이 났다”며 “많이 뽑아달라는 말을 한 건 아니다. 그건 때를 쓰는 거다. 아시아쿼터 제도로 발생하는 대학의 상황을 전하며 소통하고, 질의를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참석한 사무국장들도 이런 자리가 거의 없어서 사정을 몰랐기에 이 내용을 사무국장들끼리 소통하겠다고 했었다”고 당시 회의에서 나눈 내용을 전했다.
각 구단들도 대학 측의 의견에 공감하며 아시아쿼터 제도 도입으로 아마추어 무대에서 농구를 하는 유망주들이 영향을 받지 않고 농구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선수들을 뽑은 것으로 추측된다.
많은 인원이 지명되며 일부 구단은 중복 자원을 뽑은 것으로 보인다. KCC는 포인트가드인 송동훈과 김승협을, KGC인삼공사는 슈터인 고찬혁과 유진을, 현대모비스는 포인트가드에 가까운 김태완과 염재성을 지명했다.
KCC는 허웅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입대한 유현준을 보상선수로 DB에게 내줬다. 당장 포인트가드가 부족하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송동훈을 가장 먼저 뽑았다. 3라운드에서도 플레이 스타일이 다르다고 해도 김승협까지 데려갔다. 이진욱까지 있는 걸 고려하면 단신 포인트가드가 너무 많다. KCC는 3라운드에서 포워드 자원을 뽑으려고 했지만, 남은 선수 중에서는 크게 끌리지 않았다. 더불어 팀 내에서 김승협의 평가가 나쁘지 않아 가드를 더 보강했다.
김상식 감독과 새롭게 출발하는 KGC인삼공사는 전성현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고찬혁을 선택했다. 고찬혁이 앞에서 뽑힐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기에 만족스럽게 지명했다. 2라운드에서는 포인트가드를 뽑으려고 했지만, 고찬혁의 신장이 작은 점을 고려해 포워드인 유진으로 방향을 바꿨다. 유진이 KGC인삼공사와 연습경기에서도, 트라이아웃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것 역시 가산점으로 작용했다.
현대모비스에서 뽑은 김태완과 염재성은 재능이 넘치지만 홀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포인트가드를 맡기에는 부족하다. 김태완의 경우 론제이 아바리엔토스와 함께 뛸 때 활용 가치가 높을 것이라고 여겼다. 서명진이 몇 년 내에 군 복무로 팀을 잠시 떠나야 하는 것도 대비한다. 염재성은 올해 다소 부진했지만, 지난해 수비와 적극적인 공격 가담, 승부처에서 빛난 강심장 등 두드러진 활약을 펼쳐 D리그에서 경험을 쌓게 하며 키우려는 선수다.
#사진_ 문복주, 김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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