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공약 '백신무료접종' 줄좌초…의료현장 "선진국 추세에 역행"
"무료접종 활발히 할 수록 질병, 건강보험 재정 부담 덜 것"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백신 무료접종' 공약이 집권 3년 차에 접어든 현재까지 단 1건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최대한 빨리 도입하고 싶다. 재정 당국과 협의 중"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는 가운데 공약 실행에 대한 의구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질병청의 내년도 국가예방접종 예산은 올해 8010억원보다 1992억원(24.9%) 감액된 6018억원이다. 당초 질병청이 국가예방접종(NIP)에 새롭게 도입하려던 사례가 있었으나, 기획재정부와의 예산 협의 과정에서 반영되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질병청은 무료접종 대상으로 △12세 남아 대상 HPV(인유두종바이러스) 백신 △70세 이상 고령층 대상포진 백신 △19~64세 만성질환자 인플루엔자 4가 백신을 염두에 뒀다. 특히 12세 남아 HPV 백신과 70세 이상 고령층 대상포진 백신 무료접종은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지영미 질병청장 역시 지난해 12월 기자간담회에서 60~64세 만성질환자 인플루엔자(계절독감) 백신, 남아 HPV 백신 등 국민적 요구가 많은 사례의 국가예방접종(NIP) 편입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대상포진 백신 역시 NIP 도입을 고려 중이라고도 했다.
지난 1월 질병청이 공개한 '국가예방접종 도입 우선순위 설정 및 중장기 계획 수립' 연구 결과 도입 우선 1순위는 19~64세 만성질환자에 대한 연내 1회 인플루엔자 백신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1순위는 물론, 윤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사례 조차도 내년 NIP 편입이 어려울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질병청을 상대로 한 국정감사에서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각각 HPV 백신의 남아 접종과 HPV 9가 백신의 NIP 도입이 무산된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지영미 질병청장은 국감장에서 각 사례에 대해 "9가 백신과 남여아 대상 확대가 들어가 있다"면서도 "예산이 반영되지 않은 이유는 코로나19 백신 예산 감소가 NIP 예산 삭감의 가장 큰 원인이다. 최대한 빨리 도입하고자 노력 중이다. 의원님께서도 도와달라"고 답했다.
질병청 관계자는 뉴스1에 "코로나19 예방접종의 영향으로 (여타 백신의) 접종률 자체가 주춤하는 경향을 보였다. NIP 예산은 코로나19 백신과 묶여 활용되고 있다"며 "NIP에 백신을 신규 도입하는 건에 대해 재정 당국과 긴밀히 협의하겠다"고 전했다.
당장 이들 백신의 내년도 무료화는 어려워진 가운데, 의료 현장에선 대상포진과 HPV로 인한 질환은 백신 접종으로 큰 예방효과를 거둘 수 있는 데다 유료 접종은 본인 부담이 커 하루빨리 NIP 도입이 논의돼야 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대상포진은 심한 통증과 지각 이상이 동반될 수 있으며 병변이 사라진 뒤에도 신경통이 흔하게 발생한다. 급성기에는 뇌수막염, 척수염, 망막염 등의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고 대상포진 환자에서 뇌졸중 발생 위험이 증가한다는 연구 보고도 있어 예방이 중요하다.
HPV는 자궁경부암, 항문암 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백신 접종을 통해 예방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은 12세~17세 여성 청소년과 18세~26세 저소득층 여성에게만 HPV 2가 및 4가 백신접종을 지원하고 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12세 남아 HPV 백신, 65세 미만 만성질환자 인플루엔자 백신 NIP 등이 무산됐다"며 "해외 각국이 질환 발생률을 줄이고 질환 부담을 낮추는 걸 목표로 하는 추세와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무료로 백신 접종을 함으로써 건강보험 재정 부담도 덜 기회가 된다"며 "대한감염학회에서는 성인에게 10개 이상의 백신 접종을 권고하지만, NIP는 인플루엔자와 폐렴구균 일부 백신만 포함하고 있다. 미충족 수요를 고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추은주 순천향대 부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생애 수십 년에 걸쳐 HPV 질병, 특히 HPV가 유발하는 암으로 인해 누적되는 사회경제적 비용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남녀 청소년들에게 선진국 수준의 국가필수예방접종이 강화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추 교수는 "국가필수예방접종은 감염질환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국가적인 최선의 지원책이기 때문에 우선 과제에 포함된 감염질환에 대한 지원이 앞당겨질 수 있길 바란다"고 첨언했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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