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용 기준인 ‘밀스펙’으로, 라이프스타일을 저격한다 - 브리핑

‘밀스펙(MIL-SPEC)’이라는 말이 있어요. Military Specification의 줄임말로 군인들이 사용할 제품을 선정하는 기준인데요. 통상적으로 미국 육군에서 다양한 물품들을 평가하는 기준인 ‘MIL-STD-810G’를 말해요. 혹독한 환경과 목숨이 달린 전투 상황에서도 믿고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고르기 위한 미군의 엄격한 기준이죠.

밀스펙의 까다로운 기준 덕분에 군인 이외에도 거친 환경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나 아웃도어를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도 밀스펙을 통과한 제품을 선호해요. 내구성이 튼튼하니까요. 대신 디자인적인 요소는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패션 브랜드 ‘브리핑’은 밀스펙을 지키면서도 특유의 빨간 원사 장식으로 디자인마저도 탄탄한 제품들을 만들어요.

그런데 이 브리핑이 제품을 제조하는 방식이 흥미로워요. 보통의 경우 생산비 절감을 위해 인건비나 물가가 저렴한 국가에 공장을 짓는데요. 브리핑은 거꾸로 인건비와 물가가 비싼 미국에다가 공장을 뒀어요. 도대체 미국까지 건너가서 제품을 만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브리핑 미리보기
군사용 기준인 ‘밀스펙’으로 만든 일상용 가방
굳이 생산비가 비싼 미국의 공장과 손잡은 이유
두 번의 위기로 품질에 대한 진정성을 증명하다
효율적인 생산보다 중요한 효율적인 ‘제품’
라인업을 늘리는 3가지 축
가방 디자인은 라이프스타일을 따른다

역사를 되짚어보면 크고 작은 전쟁들이 끊임없이 있었어요. 특히 두 번에 걸친 세계 대전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었죠.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됐지만, 역설적이게도 전쟁을 치르면서 다양한 산업이 발전했어요. 패션 업계도 예외가 아니에요. 레전드 아이템 중 일부는 전쟁 때 개발한 군인용품에서 탄생한 경우가 많아요. 트렌치 코트, 필드 자켓, 에비에이터 선글라스, 그리고 손목 시계 등까지. 거친 전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군인들을 위해 개발된 아이템들이에요.

그뿐 아니라 생활용품 중에서도 군사용으로 개발된 것들이 있어요. 대표적으로 의자를 살펴볼까요? 1차 세계 대전 후반부 때였어요. 본체 전체가 알루미늄으로 된 ‘Junkers F13’ 항공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알루미늄 제조 기술이 발전할 수 있었어요. 이후로 알루미늄을 이용한 다양한 제품들이 탄생하게 됐죠. 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면서 알루미늄 성형 기술은 더더욱 발전했어요.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미국은 잠수정에서 사용할 튼튼한 의자가 필요했고, 알루미늄을 소재로 의자를 만들기로 했어요.

최초의 풀 알루미늄 바디 항공기 Junker F13 Source: Wikimedia

이 때 디자인과 생산을 맡은 기업이 에메코에요. 에메코는 해류의 충격에 계속해서 흔들리는 잠수정 안에서도 부서지지 않는 튼튼한 알루미늄 의자를 만들어냈어요. 이 의자는 특유의 단순한 디자인과 내구성으로 80년이 지난 지금도 ‘네이비 체어(NAVY Chair)’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끌고 있죠. 소재도 디자인도 군대로부터 시작된 거예요.

에메코 네이비 체어 ©Emeco

네이비 체어보다 유명한 의자도 군사용으로 탄생했어요. 바로 세계적인 가구 브랜드 ‘허먼 밀러’의 ‘임스 체어’예요. 임스 체어는 미국 가구 디자인의 선구자인 임스 부부가 디자인하고 허먼 밀러에서 생산한 의자예요. 특유의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에다가 목재를 사용해 경량성와 내구성까지 챙기면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죠. 임스 체어처럼 특정 모양을 띄는 목재를 성형 합판이라고 부르는데요. 딱딱한 목재를 열처리를 통해서 곡선의 형태로 휘게하는 것은 어려운 기술이었어요. 이 기술이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2차 세계 대전이 있었죠.

(좌) 2차 세계 대전 당시 쓰인 부목, 다리의 굴곡에 맞게 모양을 성형했어요. ©Eames office LLC / (우) 허먼 밀러에서 판매하고 있는 임스 체어 LCW 모델이에요. ©Herman Miller

전쟁 당시 골절상을 입은 병사들이 쓸 수 있는 부목이 필요했어요. 하지만 딱딱하고 직각의 목재를 그대로 사용하자 부드러운 신체 부위와 유격이 생기면서 지지 효과가 떨어졌고 치료가 더뎌졌죠. 이 때 성형 합판 기술이 발전되고 병사들의 몸에 딱 맞는 목재 지지대를 만들게 되면서 목재를 변형시키는 기술의 완성도가 높아졌어요. 임스 부부는 이를 활용해서 우리 몸의 곡선에 딱 맞는 목재 의자를 만들 수 있었던 거죠.

이렇듯 일상에서 사용하는 많은 제품들이 군대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어요. ‘브리핑(Briefing)’도 그중 하나예요. 군인들이 사용할 제품을 선정하는 기준을 ‘밀스펙(MIL-SPEC, Military Specification의 줄임말)’이라고 하는데요. 브리핑은 밀스펙을 기준으로, 그 이상의 내구성을 가진 일상용 가방을 만드는 브랜드예요.


군사용 기준인 ‘밀스펙’으로 만든 일상용 가방

밀스펙은 ‘군 규격’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요. 통상적으로 미국 육군에서 다양한 물품들을 평가하는 기준인 ‘MIL-STD-810G’를 말해요. 혹독한 환경과 목숨이 달린 전투 상황에서도 믿고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고르기 위한 미군의 엄격한 기준이죠. 전면전을 포함한 격렬한 전투와 초고온, 극저온, 방사능 같은 극한의 환경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물품들만 통과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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