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일대 철공소가 소멸 위기에 처했다. 독특한 인테리어와 저렴한 임대료를 쫓아 온 젊은 층이 이곳에 음식점을 열면서 기존 철공소 자리를 하나 둘 대체해서다. 전형적인 젠트리피케이션이다. 문래동 일대는 쇠를 깎고 녹여 제조업의 부품과 소재를 만드는 소형 철공소가 밀집했다는 점에서 1960년대부터 ‘뿌리산업’의 메카로 불려왔다.
■ ‘제2성수동’ 평가받던 문래동, 젠트리피케이션 터졌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공원 사거리 일대. 이곳에서 문래동2가 철공단지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자 용접 가게 위로 베이커리 카페 간판이 보였다. 맞은편에는 샌드위치 전문점이, 대각선 가게에는 타로카드 전문점, 멕시코 음식점이 들어서 있었다. 왕복2차선 도로를 넘어 있는 문래동4가 역시 분위기가 비슷하다. 파이프와 스테인리스강 간판을 지나니 레트로 감성이 묻어나는 곱창집이 나왔다.
이러한 변화는 2005년 문래동3가에 ‘문래 창작촌’이 생기면서 시작됐다. 창작 지원금 때문에 젊은 예술가들이 늘었는데, 이후 서울 도심 대비 저렴한 임대료와 독특한 인테리어를 눈여겨 본 젊은 자영업자들이 몰린 것이다. 문래동은 기존 건물 골조를 그대로 두고 특성 있는 가게들이 많다는 점에서 ‘제2성수동’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이후 상황 역시 성수동과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자영업자가 높은 임대료를 부담하자 원주민 격인 철공소가 외곽으로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벌어진 것이다. 현장에서는 입지 좋은 점포가 필요한 자영업자가 건물주에게 더욱 높은 임대료를 제시하면서 임대료가 올랐다는 의견이 나왔다.
문래동2가 A산업 관계자는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기존 세입자에게 이사비까지 챙겨 줄테니 자리를 달라는 경우가 경우가 빈번하다”며 “나이가 많은 사람은 이전 대신 폐업을 택하고, 그나마 젊은 사람은 더욱 안쪽으로 가게를 옮긴다”고 했다.
■ ‘이사비 줄 테니 나가라’ 철공소 임대료 3배 내는 자영업자
문래동 철공소 흔적이 옅어질수록 이 일대 임대료는 오른다. 수년 만에 월 임대료가 60만원에서 200만원까지 치솟은 사례도 있다.
온라인 중개사이트에 따르면 문래동4가 철공소 한가운데 위치한 1층 카페 매물은 보증금 3000만원, 임대료 230만원에 세입자를 찾고 있다. 음식점이 밀집한 문래동2가는 문래동4가 등에 비해 월세가 더욱 비싸다. 문래동2가 초입 코너 자리에 위치한 전용면적 92㎡ 1층 상가는 보증금 3400만원, 임대료 340만원에 나와 있다.
이 금액은 기존 제조업 기반의 철공소가 부담하던 임대료보다 3배가량 비싸다. 2021년 서울시와 서울소공인협회가 공동으로 작성한 ‘문래동 실태조사 및 활성화 보고서’에 따르면 철공소 사업장이 납부하던 평균 보증금은 ㎡당 16만5000원이다. ㎡당 월 임대료는 1만6000원이다. 이를 90㎡로 환산하면 보증금과 임대료는 1485만원, 144만원이다.
문래동의 경우 임차인 비중이 높아 임대료 부담이 커진 이들이 많다. 영등포구청 실태조사에 따르면 문래동 철공소 가운데 90.2%는 임차 공장이다.
■ 고령화·산업구조 변화 직격타 맞은 문래동, 임대료 상승은 ‘엎친 데 덮친 격’
임대료 상승은 고령화와 산업구조 변화로 어려움에 처한 문래동을 더욱 위태롭게 만든다. 20·30대는 가업을 물려받는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하고 40대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이 일대 노동자 연령은 높은 상황이다. 60대는 은퇴를 고민하는 경우가 많은데, 임대료가 부담스러우면 사업을 접는다. 기술 발전으로 제조업 자동화가 이뤄졌고, IT(정보통신) 산업이 발전한 영향이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1980년대 2500여 개에 달했던 문래동 철공소 수가 1200여 개로 줄었다고 보고 있다.
앞서 영등포구청이 문래동 철공소 전체를 수도권 그린벨트 부지를 확보해 산업단지로 옮기겠다는 구상을 세웠으나, 이 역시 비현실적인 대안이라는 평가다.
문래동3가 B철공소 대표는 “외곽으로 가면 작업자를 구하기 더욱 힘들고, 생활권을 완전히 옮겨야 해 반대하는 사람이 더욱 많다”며 “공장을 이전할 사람은 이미 수년 전 떠났다”고 했다. 이어 ““문래동 철공소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고 했다.
글=김서경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