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서구에 사는 59세 정모 씨는 다음 달 퇴직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20년 전 장만한 아파트는 지금 시세로 12억 원이 넘지만, 정작 손에 쥔 현금은 몇 백만 원이 전부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정 씨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많은 50~60대가 자산의 대부분을 부동산에 묶어둔 채 정작 노후 생활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본시장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 자산의 평균 53% 이상이 부동산에 집중되어 있으며, 고령층일수록 그 비중이 더 높아 70대는 64%에 달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보유한 부동산은 팔지 않는 이상 생활비로 전환하기 어렵고, 이로 인해 ‘자산은 있는데 가난한’ 역설적인 노후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은퇴 이후에도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생계를 위해 무리하게 전세를 내주거나 고금리 대출에 의존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노후에 필요한 돈은 ‘월 300만 원 이상’
은퇴 이후 평균적인 삶을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의 생활비가 필요할까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전국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월 300만 원 이상이 있어야 품위 있는 노후를 보낼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과반을 넘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국민연금 수령액은 평균 96만 원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퇴직 후 추가 수입 없이 이 금액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더 큰 문제는 수명이 길어졌다는 점입니다. 평균 수명은 83세를 넘어서고 있으며, 이는 은퇴 후 최소 20~30년 동안 안정적인 소득원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많은 중장년층이 정년 이후에도 계속 일을 해야 한다고 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물리적으로 계속해서 소득 활동을 이어가는 것도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다운사이징과 주택연금, 집을 활용한 생존 전략
이러한 불안한 노후에 대한 해답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주택 다운사이징’과 ‘주택연금’입니다. 다운사이징은 큰 집을 팔고 더 작고 저렴한 주택으로 이사하면서 차익을 노후자금으로 활용하는 전략입니다. 관리비, 세금, 보험료 등 고정비가 줄어드는 효과도 있어, 고령층에게 실질적인 지출 절감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주택연금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매달 연금 형태의 수입을 얻는 방식입니다. 집은 그대로 보유하면서도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할 수 있어, ‘팔지 않아도 되는 유동화 전략’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실제로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주택연금 신규 가입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2024년 상반기 기준 월평균 130만 원 수준의 연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주택연금도 만 55세 이상, 주택 시가 9억 원 이하 등의 조건이 있어 사전 준비와 상담이 필수입니다.

사회적 인식 전환과 제도 보완이 필요한 시점
아직까지 많은 고령층은 ‘집은 자식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부동산 자산을 적극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지금, 과거의 관념만으로는 생존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정부와 금융기관 역시 고령자 맞춤형 주택 공급 확대, 공공임대 연계형 이주 정책, 주택 개조 사업 등 종합적인 대응이 필요합니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노후 자산 활용이 단지 경제적 생존만이 아닌, 삶의 질과도 직결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또한 주택금융 상품과 연계한 ‘이사 연계형 금융 서비스’ 등 새로운 상품의 도입도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개인에게는 자산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노후의 안정과 불안이 갈릴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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