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환자 보다 심정지 환자 죽어가...의사가 본 '응급실 뺑뺑이' 해법

이창섭 기자, 정심교 기자, 박정렬 기자 2023. 6. 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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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응급실 뺑뺑이 20년(下)
[편집자주] 최근 경기도 용인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70대 노인이 2시간동안 병원 11곳에서 '수용불가' 통보를 받고 결국 구급차 안에서 사망했다. 지난 3월 대구에서는 건물에서 추락한 10대 학생이 2시간 동안 응급실을 찾다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했다. 지난해 병상과 의사 부족 등의 이유로 응급실에서 다른 병원으로 재이송된 사례는 13만건에 육박한다. 정부는 2005년부터 5년마다 '응급의료 기본계획'을 마련해 응급의료체계 개선을 도모하고 있지만 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길에서 사망하는 불행은 반복된다. 20여년에 걸친 대책 마련에도 불구하고 '응급실 뺑뺑이'가 일상이 된 근본 원인을 점검해 본다.

열만 나도 "우리 애 봐줘요"…응급실 온 100만명이 단순 감기·설사
- 응급실로 몰리는 '경증 환자'


#이달 초 대구 소재 한 상급종합병원의 소아응급의료센터. 오전 11시, 119로부터 환자 이송 문의가 왔다. "34개월된 남자아이가 어제 저녁부터 발열이 나니 응급실로 오겠다"는 내용이었다. 환자 내원 후 진료를 봤으나 단순 발열이었다. 알고 보니 보호자가 아동병원 대기 시간이 3시간이라 진료를 빨리 봐야겠다는 이유로 119에 전화해 응급실로 온 것이었다.

지난해 발열 등 경증으로 응급 의료기관을 찾은 환자 수가 약 400만명 이상인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응급실 내원 환자의 절반 이상이다. 단순 감기나 설사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 수는 100만명 이상,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었다.

제때 응급실에 도착하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연이어 발생한 가운데 '경증 환자'로 인한 의료기관 과밀화가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의료계는 종합병원 응급실로 경증 환자를 이송하지 않되, 이를 판단하는 구급대원에게 면책특권을 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15일 응급의료통계연보와 신현영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종합하면, 2022년 응급 의료기관을 찾은 환자 수는 769만4473명이다. 이 중에서 중증도 분류(KTAS) 레벨 5등급 판정을 받은 환자 수는 108만6603명이었다.

KTAS는 응급실로 실려 온 환자의 중증도를 파악해 분류하는 기준이다. 레벨 5등급은 중증도가 가장 낮은 단계다. 감기, 장염, 설사 등 증상이 여기에 해당한다. 지난해 감기 등에 걸렸다고 응급실을 찾은 환자가 100만명을 넘은 셈이다.

반면 2021년 기준, 5등급 판정을 받은 응급실 환자 수는 53만186명이었다. 1년 새 감기 등으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 수가 두 배 이상 늘었다. 2021년은 코로나19(COVID-19) 유행으로 응급실 내원 환자 수가 적었다는 걸 감안해도 큰 폭의 증가다. 5등급 응급실 환자 비율도 2021년 10.5%에서 2022년 14.1%로 늘었다.

이보다 한 단계 높은 KTAS 레벨 4등급도 응급 처치가 필요한 상황은 아니다. 38도 이상의 발열을 동반한 장염, 폐렴, 척추통 등이 환자의 대표적 증상이다. 2022년 4등급으로 분류된 응급실 환자 수는 302만567명이다. 4·5등급을 합친 환자 수는 410만7170명, 전체 응급실 내원 환자의 과반(53.4%)이다.


경증 환자가 몰리면서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응급실 '과밀화'다. 과밀화로 병상이 부족해져 정작 긴급 조치가 필요한 중환자를 받을 수가 없다. 지난해 2만731명이 응급실 내원 후 병실·중환자실 부족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권역별로 한 두 군데 존재하는 상급종합병원 응급의료센터에는 이런 문제점 더 커진다.

경증 환자가 몰릴 때마다 중환자들은 뇌출혈·심장마비 등으로 응급실에서 죽어갔다. 2021년 기준, 출혈성 뇌졸중(뇌출혈)으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는 3만698명이다. 응급실에서 급하게 진료했으나 423명이 사망했다. 3046명은 다른 응급실로 옮겨야 했다. 또한 심정지로 응급실을 찾은 3만2957명 중에서 64.3%에 해당하는 2만1180명이 응급 진료 도중 끝내 사망했다.

조병욱 경북대학교병원 소아응급의료센터 진료교수는 "중증 환자를 위해 만들어진 권역별 응급센터들이 경증 환자 중심으로 자원을 소비하고 있다"며 "저도 24시간 근무하면 KTAS 레벨 2등급 이상의 환자는 하루에 한 명 아니면 두 명 온다. 나머지는 전부 3~4등급 환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단순 발열이 시작된 지 30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급종합병원 소아응급의료센터에 접수하고 들어오는 게 가능한 곳이 우리나라"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응급의료센터가 아니라 편의점과 같은 '편의'의료센터이다"고 덧붙였다.

의료계는 경증 환자가 응급실을 이용하는 건 자제해달라고 호소한다. 중환자만 응급실로 이송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도 요구했다. 일본은 중환자·경증 환자가 가는 응급실이 별도 건물로 철저히 나뉘어있다. 구급차 안에서 환자의 중증도 분류가 끝나고 그에 알맞은 응급실로 이송한다.


우리나라도 시스템은 유사하게 갖춰져 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119 응급구조사는 최초로 응급 환자의 중증도를 분류할 수 있다. 환자 상태를 고려해 응급 의료기관에 이송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구조대가 환자의 중증도를 제대로 분류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증도 분류 후 이송했다가 혹여나 환자가 잘못되면 그 책임과 비난이 응급구조사에게 쏟아지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의사가 아닌 구조사가 환자보고 '당신은 경증이니 동네 병원에 가라'고 얘기할 수가 없다"며 "그렇게 얘기했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환자나 보호자가 민원을 넣는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런 시스템에서는 구조대가 '경증'으로 판단했음에도, 보호자가 원한다면 환자나 아이를 권역 응급의료센터로 이송할 수밖에 없다"며 "119 대원에 이에 대한 면책 특권을 주고, 그들의 판단으로 중증이 아니라면 상급종합병원 응급실로 환자를 이송하지 않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응급실 뺑뺑이, 10건 중 3건은 '의사 부족'…병상만 늘려선 의미 없어
-환자 받고 싶어도 못 받는 응급실


'응급실 뺑뺑이' 사고가 최근 연이어 반복하면서 당정이 팔을 걷어붙였다. △응급의료상황실 설치 △경증 환자 이송 제한 △중증 응급환자 수용 의무화 △중증 환자에게 경증 환자의 병상 제공 △응급 수술 시행 시 추가 수당 지원 등이 새 대책의 골자다. 특히 경증 환자의 병상을 빼 중증 환자에게 배정하겠다는 건 기존보다 강도 높은 대책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를 제외한 상당수는 이미 앞서 발표된 '응급의료 기본계획'에서 나왔다. 정부가 네 차례에 걸친 응급의료 기본계획을 20년여년에 걸쳐 추진하고 있지만 똑같은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대책의 실효성도 의심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번에 당정이 내놓은 대책에 대해 의료계는 "전체적인 방향에는 동의한다"면서도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는 표면적인 대책에 불과할 것"이라고 보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을 역임한 가천대 길병원 양혁준(응급의학과) 권역응급의료센터장은 "경증 환자도 비록 경증이긴 하지만 응급 환자임은 분명하다"며 "경증의 응급 환자까지도 응급실에서 1차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여건이 조성돼야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응급의학과 배톤 이어받을 의사 공백 여전

그러기 위해선 의료체계 전반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가장 급한 문제로 지목되는 게 '의사 공백'이다. 양 센터장은 "응급실에서 처치와 응급 시술 등 1차 진료를 마치면 관련 진료과 즉, 배후 진료과에 배턴을 터치해 환자의 수술 등 치료를 담당하게 하고, 새로운 응급환자를 받을 수 있다"며 "문제는 배턴을 터치 받을 전공의·전문의가 부족하거나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후 진료과는 모두 '필수 의료' 영역에 해당한다. 하지만 필수 의료의 인력 자체가 부족한 탓에 응급실에서의 1차 진료에서 그다음 단계로 이행되지 못한 채 병목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심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에게 응급실에서 응급처치를 시행한다 해도, 흉부외과 전문의나 전공의가 없으면 이 환자는 흉부 수술을 받을 수 없다. 흉부외과 수술을 어차피 해줄 수 없어 응급실에서 환자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구급차 재이송(응급실 뺑뺑이) 10건 가운데 3건(31.4%)은 해당 질환을 보는 의사 부족(전문의 부재)이 원인이었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은 "이미 운영되는 응급실도 의료진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설만 늘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응급실의 배후 진료과에는 △흉부외과 △신경외과 △소아청소년과 △외과 등이 꼽힌다. 모두 필수 의료 영역이다. 양 센터장은 "전공의 특별법 시행 이후 24시간 근무하는 전공의가 사라진 데다, 수가는 낮고 의료사고 소송에 휘말리기 십상"이라며 "전공의들이 필수 의료를 기피하는 원인부터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면 응급진료 문제는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정부와 여당은 응급실·권역외상센터뿐 아니라 '배후 진료과'에도 특별수가 지급과 직접적인 예산 지원 등을 논의하고 있지만 의료계의 반응은 냉담하다. 지역 의료원은 4억원이 넘는 연봉에도 일할 의사를 구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제한적으로 할당될 의료 수당은 '당근책'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이에 필수 의료 분야 수가 정상화 등 육성책과 함께 당장 병원마다 갖춰진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광역 배후 진료'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최석근 경희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응급 환자를 살리기 위해 지역별로 치료할 수 있는 의료진과 수술 여건이 확보된 곳을 알려주는 '스마트 맵'을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 코로나19 때 병상 간격 넓히느라 수용 인원 더 줄어

'병상 수 부족'도 응급실 과밀화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코로나19의 영향 탓이 크다. 양 센터장은 "길병원의 경우 코로나19 범유행 시기에 병상 간격을 더 벌리기 위해 기존 병상의 10%가량을 빼놓은 상태"라며 "현재 코로나19가 종식돼가고 있다고 하지만 향후 어떤 감염병이 도래할 지 모르므로 기존처럼 병상을 다시 빼곡하게 세팅할 수는 없다. 추가 감염병 유행을 대비해 이 방역 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고 못 박았다. 양 센터장은 "응급실 환자에 대해 병원에서 수용을 거부하는 게 아니란, 수용 불가 상태가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전에 중증도를 파악해 적절한 병원을 연결하는 '컨트롤 타워'가 없다는 점도 과제로 남아있다. 과거 응급 상황의 신고를 받고 환자 분류, 병원 간 전원을 조정하던 '응급의료정보센터 1339'에 준하는 전문 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19 등 감염병 신고와 질병 정보를 제공하는 번호지만, 2010년대 초반까지 1339는 일반인·119 구급대를 대상으로 한 병원 안내와 병원 간 전원 업무를 총괄하는 관제센터였다. 의사·간호사, 교육받은 전문 인력이 응급상황에 실시간으로 대응했다. 현재 정부가 설치를 논의하고 있는 병원 간 전원 중심의 '응급의료상황실'보다 확장된 개념이다.

조석주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어느 병원에 가야 할지 모르는 일반 환자, 수용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 헤매는 119구급대, 개인적인 친분 등의 한정된 정보로 전원을 의뢰하는 의사의 불편을 모두 해소할 수 있는 1339와 같은 '제3의 기관'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의사조차 환자가 경증인지 중증인지 한 눈에 판단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문진·시진·촉진과 혈액검사나 X선, CT, MRI와 같은 영상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 병원에 오기 전, 혹은 이미 수용한 환자의 중증도를 결정하는 것은 의료법 위반과도 직결된다. 책임이 따르는 '과소평가'보다 안전한 '과잉 진료'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의학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과 119구급대는 "일단 큰 병원으로 가자"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대형병원의 '응급실 과밀화'가 해소되지 않는 배경이다. 중증 환자에게 경증 환자의 병상을 제공하라는 정부·여당의 안이 '탁상행정'으로 비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응급의료체계 대책의 컨트롤 타워 부재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도 나온다. 양 센터장은 "응급의료 대책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저수가와 전공의 특별법 시행 등으로 인한 필수 의료 인력 부족에서 출발한다"며 "응급의료 대책을 복지부 응급의료과에서 맡고 있지만 필수 의료 영역은 응급의료과의 업무 영역에서 벗어나므로 의료계 전반을 통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부서에서 응급의료 대책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창섭 기자 thrivingfire21@mt.co.kr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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