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하균, 지진희, 우현에게 빌린 5천만원을 13년 만에 갚은 무명배우

배우 이정은을 떠올리면, '기생충'의 문광, '동백꽃 필 무렵'의 정숙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그 진한 연기의 밀도는 단기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데뷔는 1991년. 그 후 28년 동안 단역, 무대, 뮤지컬을 전전하며 얼굴을 조금씩 알려왔다.

이정은은 방송에 45살에 데뷔했다. 늦었다는 생각보다, 그 나이가 되기까지 쌓아온 내공이 드디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연극 무대에서는 1년에 20만 원을 벌기도 했고, 생계를 위해 마트 직원, 연기학원 강사, 간장·녹즙 판매까지 온갖 일을 해냈다.

시간이 얼굴을 만들고, 연기를 완성시켰다는 걸 이정은은 누구보다 알고 있었다.

이정은이 마주한 무명의 깊이는 생각보다 깊었다.

2000년, 직접 연극을 제작했지만 연출가가 도망가는 바람에 연출까지 맡았다. 관객이 1명도 없어 공연이 자동 취소된 날도 있었다.

사비를 털어 제작을 이어갔고, 연극 무대에서조차 버티는 게 쉽지 않은 현실을 체감했다.

공연이 끝나고 남는 건 적자뿐. 그런데도 그는 무대를 떠나지 않았다.

연극은, 연기는, 그에게 여전히 재미있고 살아 있는 일이었다.

생활고는 점점 심해졌다. 결국 그녀는 주변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신하균, 우현, 지진희. 배우이자 친구였던 세 사람은 큰 고민 없이 흔쾌히 돈을 빌려주었다.

당시 금액은 5천만 원.

이정은은 “금방 갚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무려 13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돈을 다 갚던 날, 우현이 전화해 말했다.

“빌려준 사람 중에 너만 갚았어.”

그 말에 이정은은 웃었지만, 그 안에는 얼마나 무겁고도 오랜 시간이 담겨 있었는지, 듣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게 한다.

이정은은 단역이라도 ‘똑같이 연기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비슷한 역할도 그때마다 새롭게 접근했다.

영화 ‘변호인’에서는 한 장면, 몇 마디 대사뿐이었지만, 반쪽 아이라인을 그린 채 등장해 경상도 억양을 완벽히 구현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에서는 욕쟁이 보살로 코믹 연기를 펼치며 시청자들의 기억 속에 강하게 각인됐다.

무명의 시기에도, 그녀는 매 순간을 ‘존재하는 연기’로 채웠다.

‘이 역할은 이정은이어서 맛깔났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배우. 그 간절함이 결국 오늘의 그녀를 만든 셈이다.

이정은은 자신의 좌우명을 이렇게 말한다.

“연기는 신이 도와주는 게 아니다. 요행은 없다.”

대본을 수험생처럼 공부하고, 장면마다 실마리를 찾아 나서는 것. 그런 철저함이 그녀를 이 자리까지 데려왔다.

봉준호 감독과의 세 번의 인연, ‘기생충’의 문광, '동백꽃 필 무렵'의 정숙, 그리고 수많은 영화제에서의 여우조연상.

이 모든 것은 단순히 운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지치지 않고 해낸 사람’에게 주어진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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