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고등학생 수준 타자” 오타니가 치욕과 혹평을 이겨내는 방법

사진 제공 = OSEN

시끌벅적했던 영입 경쟁

보답은 어마어마했다. 슈퍼카 선물까지 등장한다. 17번을 양도(?)한 대가 말이다. 그런데 진짜 그의 숫자는 따로 있다. ‘11’이다. 일본 시절 5년간 달던 번호다.

상징적인 사건도 있다. 2017년 가을의 일이다. 기자회견이 열렸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합니다.” 오타니 쇼헤이(30)의 메이저리그 진출 선언이다.

시간이 눈길을 끈다. 11월 11일 (오전) 11시에 이뤄졌다. 물론 백넘버에서 착안한 것이다. 이날은 또 반려견 ‘에이스’의 생일이기도 했다. 8살 때부터 키우던 가족 같은 존재다. 그해 여름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11번을 단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때부터다. 메이저리그가 발칵 뒤집힌다. 거의 모든 구단이 영입전에 뛰어들었다. 갑(甲)과 을(乙)이 뒤바뀐다. 구직자를 향한 애원이 사방에서 쏟아진다. 30개 구단 중 27곳에서 제안서를 보냈다.

명문 구단이라고 예외는 없다. 양키스의 단장(브라이언 캐시먼)은 고층(22층) 건물 외벽을 탄다. 거기서 방송 카메라를 향해 멘트를 날린다. “당신 같은 위대한 선수가 뛸 무대는 이곳 뉴욕이다. 기다린다. 빌딩 꼭대기에서 이렇게 외친다.”

그러나 1차 전형에서 탈락이다. 서류 심사를 통과한 구단은 5~6곳에 불과하다. 2차는 면접이다. 각 팀의 사장과 단장, 감독, 간판스타들이 총출동한다. 본 적도 없는 23살짜리를 설득하기 위해서다.

그중 한 팀이 다저스다. 클레이튼 커쇼도 차출됐다. 불만 가득한 표정이 눈에 선하다. “이건 거대한 시간낭비에 불과하다.” 투덜거림도 들린다. 당연하다. 결혼기념일까지 포기해야 했던 톱스타의 자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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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탈 털렸던 첫 시범경기

최종 행선지는 LA가 됐다. 다만 다저스가 아니다. 옆집 에인절스로 간다. 아쉽게도 11번은 달지 못한다. 이미 영구 결번된 상태다. 선수로, 감독으로, 팀을 빛나게 만든 짐 프레고시(2014년 타계)의 백넘버다.

대신 고른 것이 17번이다. 오타니 자신의 고교 시절 등번호다. “본래는 27번을 달고 싶었다. 그런데 이미 주인이 있다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 입단식에서는 수준 높은 미국식 조크까지 선보인다(27번은 마이크 트라웃).

엄청나고, 화려한 스토브리그였다. 그리고 맞은 2월이다. 스프링캠프가 시작된다. 이른바 ‘언박싱’이 이뤄지는 시기다.

기대감은 터질 듯했다. 그런데 뜻밖이다.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응? 뭐지? 겨우 저 정도였어?’ 갸웃거림, 수군거림, 그리고 피식거림으로 얼룩진다. 캠프 초반의 모습은 그야말로 보잘것없다. 영입이 치열했던 만큼, 반감도 크게 작용한다. 신랄한 목소리가 봇물이 터지듯 했다.

이도류는 2배로 시달린다. 마운드에서는 탈탈 털렸다. 시범경기 초반 흔들림이 역력했다. 4경기에 등판, 8.1이닝 동안 홈런 4개를 맞았다. 평균자책점은 16.21로 치솟았다.

특히 심각한 것은 타격이다. 이건 스윙이 아니다. 배트를 들고 춤을 춘다. 지명타자로 9게임에 나갔다. 24타수 동안 안타는 2개뿐이다. 1할도 안 되는 타율(0.083)에 허덕인다. 삼진은 9개를 당했다.

일부 국내 커뮤니티에서는 ‘팔푼이’라는 호칭이 돌기 시작했다. 일본도 비슷했다. 이도류(二刀流)에서 ‘도’를 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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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잊지 못할 치욕적 평가

그 무렵이다. 17번 본인이 평생 잊지 못할 기사가 등장한다. 작성자는 저명한 칼럼니스트 제프 파산(당시 야후스포츠)이다.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오타니가 잭 고들리(D백스)나 커쇼의 커브에 삼진 당하는 모습을 보라. 전혀 타이밍을 잡지 못한다. 직구와 싱커뿐만 아니다. 일본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회전수의 커브를 공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어지는 평가는 치욕적이다.

‘그를 관찰한 결과, 몸쪽 패스트볼에 전혀 대응하기 어려운 스윙을 갖고 있다. 그 정도로는 메이저리그에서 버티기 어렵다. 생산적인 타자가 되기 위해서는 마이너리그에서 500타석 이상을 경험해야 한다.’

그리고 결정적인 코멘트가 등장한다.
“메이저리그? 당장은 터무니없다. 기본적으로 현재는 고등학생 수준의 타자라고 봐야 한다.”

제프 파산 본인의 의견은 아니었다. 기사는 현직 MLB 스카우트 8명의 분석을 종합한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은 이 말이 더 무섭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들이다. 그들의 견해가 일치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ESPN도 비슷한 논조였다. ‘일본보다 수준이 높은 곳에서 플레이한 적이 없다. 전문가들은 그가 싱글A에서 시즌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커쇼도 인상적인 소감을 남겼다. 오타니를 삼진으로 잡아낸 다음이다. ‘어떤 느낌이었나’라는 질문을 받았다.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그의 행운을 빈다.” 가장 냉소적인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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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타자를 멈춰라” 나가시마의 만류

그의 나라에서도 걱정이 크다. ‘미스터 베이스볼’ 나가시마 시게오가 진심 어린 조언을 한다. “당장 타자를 멈춰야 한다. 투수에만 전념하라. 그는 일본 야구 사상 처음 나온 선수다. 다른 일본인에게는 없는 장점을 갖고 있다. 그걸 살려야 한다.”

전설적인 포수 노무라 가쓰야도 거든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면 안 된다. 내가 감독이라면 무조건 투수로 기용한다. 시속 160㎞를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장훈 같은 독설가는 오죽하겠나. “야구는 프로레슬링이 아니다. (이도류 같은) 화제성만으로 버틸 수 없다. 게다가 메이저리그는 동네 야구가 아니다. 한쪽에만 몰두해도 될까, 말까 하다. 조금이라도 재능이 나은 투수로 승부해야 한다.”

심지어 (니혼햄) 선배 다르빗슈 유도 같은 마음이다. “그는 넘버 원이 될 수 있는 투수다. 투타 겸업이 흥미로운 일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계속 고집한다면 발목이 잡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고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잡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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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편지를 써야 했던 파산 기자

그러나 모두가 놀랄 일이 벌어진다. 개막 후 2주가 지날 무렵이다. 그의 배트가 거침없이 불을 뿜는다. 3경기 연속 홈런포가 터졌다.

마운드에서도 빛이 난다. 2번의 선발 등판에서 모두 승리를 챙긴다. 7이닝 무실점 경기도 해냈다. 안타 1개를 맞으며, 삼진은 12개를 뽑아냈다. ‘이 주의 선수’, ‘4월의 선수’로 거푸 선정됐다.

급기야 사과문까지 떴다. “친애하는 오타니 씨, 미안하게 됐습니다”로 시작하는 글이다. 제프 파산이 자신의 잘못을 깔끔하게 인정한다. 편지 형식으로 쓴 반성문(?)이다.

“오랜 경험을 가진 스카우트들의 말을 전했지만, 당신은 이를 무력화했습니다. (중략) 사실 스카우트들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결점으로 지적된 부분을 빠르게 바로잡았고, 덕분에 스카우트들이 난처해졌군요. 나도 좋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너무 일찍 결론을 내리는 어리석음을 후회합니다.”

고딩 수준의 타자는 그해 22홈런을 쳤다(신인상). 가능성만 보여준 셈이다. 그리고 3년 후(2021년) 활짝 핀다. 46홈런을 쏟아냈다(첫 MVP). 이듬해 34홈런, 작년에는 44홈런(1위)으로 꾸준함을 유지했다.

그리고 올해. 어쩔 수 없이 이도류를 포기했다. 그가 한쪽에만 전념하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보여준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숫자가 펼쳐진다. 50-50이다. 홈런은 그렇다 치자. 60개 가까운 도루는 또 어떻게 된 것인가.

다저스 1루 코치 클레이튼 맥컬러의 얘기다.

“우리 팀이 수비할 때가 되면 나는 벤치에서 더 바쁘다. (오타니) 쇼헤이가 태블릿을 들고 이것저것 묻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정말 뛰어난 관찰력을 가졌다. 상대(투수)의 동작을 파악하는 능력이 대단하다. 아마 자신도 투수라서 더 그런 것 같다. 아무튼 생각하지 못한 것을 지적하며, 의견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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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류도 그렇고, 50-50도 그렇다. 말리는 사람도 많고, 걱정하는 말도 많았다.

아니, 그 정도면 다행이다. ‘그게 되겠냐’, ‘하나나 제대로 해라’, ‘잘 난 척 적당히 해라’. 삐딱하게 보고, 트집 잡는다. 헐뜯고, 피식거린다. 그런 표정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해명하거나, 변명하지 않는다. 반박한 적도 없다. 오로지 보여줄 뿐이다. 마운드에서, 타석에서, 그리고 베이스에서. 묵묵히 준비하고, 연구하고, 훈련한 것을 숫자로 입증할 뿐이다.

‘고딩 수준’이라던 비웃음은 말끔히 사라졌다. 이제는 ‘역대 최고’ 혹은 ‘사상 유례없는’ 같은 수식어만이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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