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시즌을 앞두고 LG 트윈스가 또 한 번 빠른 판단력과 과감한 결단력을 보여줬다. 바로 호주 출신 좌완 투수 라클란 웰스(Lachlan Wells, 28) 영입 소식이다. 내년부터 KBO리그에 새롭게 시행되는 ‘아시아쿼터’ 제도의 첫 주인공으로 웰스가 낙점되면서, LG는 국내 무대뿐 아니라 아시아 시장에서도 한발 앞선 행보를 보이고 있다.

웰스는 야구팬들에게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2025시즌 여름, 키움 히어로즈에서 부상으로 이탈한 케니 로젠버그를 대신해 단기 대체 선수로 합류했기 때문이다. 6주 계약 조건으로 받은 금액은 단 3만 달러였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웰스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4경기에 선발 등판해 1승 1패 평균자책점 3.15, 피안타율 0.234, WHIP 1.20을 기록했다. 20이닝 동안 삼진 16개를 잡아내며 안정된 제구력과 이닝 소화력을 보여줬고, 특히 두 차례 퀄리티 스타트(QS)를 달성하면서 키움 팬들에게 “더 오래 보고 싶은 투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계약 종료와 동시에 팀을 떠났다. 키움은 장기 부상 중인 로젠버그 대신 웰스와 시즌 끝까지 가길 바랐지만, 그는 개인적인 사정을 이유로 미련 없이 고국 호주로 돌아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웰스의 이름은 잠시 스쳐간 ‘좋은 기억’으로 남는 듯했다. 그러나 LG는 그 짧은 활약 속에서 다른 구단이 보지 못한 가능성을 발견했다.
LG는 이미 몇 년 전부터 호주 시장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구단 내부에는 아시아 전담 스카우팅 조직이 있으며, 호주프로야구리그(ABL) 팀들과 협력 관계를 꾸준히 유지해왔다. 2025시즌 초에도 호주 국가대표 출신 코엔 윈을 스프링캠프에 초청해 테스트를 진행했고, 실제로 5월 한 달간 1군 선발로 기용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윈은 평균자책 7.04로 부진했지만, 이 과정에서 LG는 ‘호주 야구 시장의 깊이’를 체감했다. 그리고 웰스가 떠난 직후부터 아시아쿼터 제도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자, LG는 누구보다 먼저 움직였다.

이번 계약은 그 연장선에 있다. LG는 포스트시즌 도중 이미 웰스 측과 접촉을 시작했고, 시즌 종료 직후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갔다. 차명석 단장은 “올해 아시아쿼터 대상자 중 웰스보다 나은 선수는 없었다”며 “지금 나와 있는 후보 가운데 가장 완성도 높은 투수였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웰스는 호주 리그에서도 정상급 투수다. 2014년 미네소타 트윈스에 입단해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5시즌 동안 통산 346⅓이닝 ERA 3.14를 기록했다. 이후 고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시드니 블루삭스와 애들레이드 자이언츠에서 뛰며 2023~2024시즌 호주리그 MVP를 수상했다. 호주 리그 통산 성적은 34경기 13승 3패 평균자책 2.91로, 꾸준함과 실력을 모두 증명했다. 직구는 평균 145km, 최고 148km까지 나왔고, 좌타자와 우타자 모두를 상대로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자유롭게 구사한다. 특히 우타자 상대 피OPS가 0.575, 좌타자 상대 0.538로 양쪽 타자 모두에게 약점을 보이지 않았다.

웰스는 ‘KBO형 투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제구 중심의 피칭 스타일, 빠른 템포, 그리고 스트라이크존을 적극 공략하는 공격적인 투구 패턴이 한국 야구에 잘 맞는다. 웰스는 마운드에서 감정 표현이 적고, 경기 흐름을 스스로 조율하는 타입이다. 키움 시절에도 위기 상황에서 쉽게 무너지지 않는 ‘멘탈 강한 투수’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4경기 모두 5이닝 이상을 소화했을 만큼 안정적인 이닝이터형 좌완이기도 하다.
LG가 그를 낙점한 이유는 단순한 전력 보강을 넘어 ‘시스템적인 연장선’에 있다. 2026시즌부터 아시아쿼터가 시행되면 각 구단은 기존 외국인 3명에 더해 아시아권 선수 1명을 추가로 등록할 수 있다. 포지션 제한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4번째 외국인 선수’로 운용이 가능하다. 구단 입장에서는 외국인 에이스 한 명을 더 보유하는 효과를 볼 수 있는 셈이다. LG는 이미 외국인 3인방(켈리·플럿코·오스틴)과 재계약을 마친 상황에서, 아시아쿼터를 통해 투수진의 깊이를 보강하는 전략을 택했다.

다른 구단들도 아시아 시장을 탐색 중이지만, LG만큼 빠르고 구체적인 행보를 보인 곳은 없다. NC, 롯데, KT, 한화 등은 일본과 대만, 호주를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약 소식은 없다. 반면 LG는 “첫 아시아쿼터 제도의 실질적 수혜자”가 될 전망이다.
LG는 웰스 영입과 함께 내년 시즌 국내 FA 단속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차명석 단장은 “2차 드래프트 보호 명단도 마무리 단계에 있다. 내부 FA 두 명과는 합리적인 조건으로 계약을 추진 중”이라며 “아시아쿼터 포함 외국인 4인 체제가 완성되면, 전력 면에서 어떤 팀에도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LG는 올해 통합우승을 차지하며 오랜 숙원을 풀었다. 하지만 구단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왕좌를 지키는 팀’은 늘 다음 수를 준비한다. 웰스 영입은 바로 그 철학의 연장이다. 그는 즉시 전력감으로서,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아시아쿼터 제도의 첫 성공 사례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크다.
야구는 운과 타이밍의 경기라 하지만, 이번 LG의 행보를 보면 그보다 중요한 건 ‘준비된 선택’이라는 걸 다시 느끼게 된다. 다른 구단이 발을 떼기도 전에 시장을 읽고 움직인 LG. 그리고 키움에서의 짧은 경험으로도 충분히 자신을 증명한 웰스. 이 조합이 2026시즌 KBO의 새 판을 흔들 첫 퍼즐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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