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초반 원태인의 수치는 설명이 안 됐다. 스스로 "프로 데뷔 이후 구위가 가장 좋다"고 확신하는 투수가, 4월을 2패로 마쳤다. 포심 최고 구속 150km/h. 지난 시즌 국내 투수 이닝 1위(166⅔이닝), ERA 3.24. 이 정도 투수가 초반에 흔들리는 건 흔히 두 가지 이유다. 부상이거나, 자기 피칭을 잃었거나.
원태인의 경우는 후자였다. 그것도 꽤 근본적인 방향에서.

5월 19일 포항구장, KT전 선발 등판. 원태인은 이날 총 109구를 던지며 6이닝 1실점으로 마무리했다. 퀄리티스타트 기준을 충족한 시즌 세 번째 등판. 삼성은 10-2 대승으로 공동 선두에 올라섰다.
숫자만 보면 깔끔한 호투다. 그런데 이 109구에는 단순한 투구 기록 이상의 맥락이 담겨 있다.
원태인은 올 시즌 7경기를 소화하며 2승 3패, ERA 3.43을 기록 중이다. 지난 시즌 ERA 3.24와 큰 차이는 없어 보이지만, 내용은 다르다. 4월 성적을 들여다보면 볼넷 비율이 높았고, 피안타가 몰렸다. 구속은 평년 이상이었는데 결과가 따라오지 않았다. 5월 1일 한화전에서도 5이닝 3실점, 제구가 흔들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원태인 본인이 그 이유를 정확하게 짚었다. "구위와 구속이 좋다 보니 힘으로만 붙으려 했다. 원래 내 강점은 변화구로 타이밍을 빼앗고 타자와 볼카운트 싸움을 유리하게 가져가는 것인데, 그 피칭을 잠깐 잊었다."
이것은 단순한 자기반성이 아니다. 피칭 전략의 구조적 문제를 건드린다.
KBO 리그는 빠른 공에 충분히 익숙한 타자들로 채워져 있다. 시속 148~150km 포심이 더 이상 압도적 무기가 되지 않는 환경이다. 원태인도 이 점을 인정했다. "요즘엔 공이 빠른 투수들이 너무 많다. 내 공은 타자들에게 이미 익숙할 것이다."

즉, 문제는 구위가 아니었다. 구위가 좋아진 게 오히려 함정이었다. 공이 좋으니까 더 세게 밀어붙이고 싶어진다. 볼카운트 싸움보다 직구 대결로 끌고 가려 한다. 그 결과 타자 입장에서는 패턴이 단순해지고, 직구를 기다리면 된다는 계산이 서게 된다.
이날 KT전 투구 분포가 그 변화를 보여준다. 포심 46개, 체인지업 31개, 슬라이더 17개, 커브 7개, 커터 7개. 전체 109구 중 변화구 비중이 55%를 넘는다. 힘이 아니라 배합으로 던진 경기다. 6탈삼진 중 상당수가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로 처리됐다는 점도 이 맥락과 맞닿는다.
경기 중 3회부터 둔근 근육 불편감이 생겼다. 밸런스가 흔들렸다고 본인도 인정했다. 그럼에도 6이닝을 버텼다. 이 상황에서 오히려 제구와 배합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그게 오히려 피칭의 본질을 되살리는 계기가 됐다.

109구의 배경에는 벤치와 사전에 조율된 일정 조정이 있었다. 20일 포항 비 예보로 로테이션이 하루 밀릴 가능성이 생겼고, 최일언 투수코치는 원태인에게 "일요일 등판 없이 오늘 105구까지 끌고 가자"고 제안했다. 결과적으로 기상 변수를 선제 활용한 기용 전략이었다.
이 부분은 삼성 벤치 운용 관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현재 삼성은 최원태가 2군에 내려가 있어 로테이션이 빡빡한 상황이다. 에이스에게 하루 더 쉬는 날을 확보해주기 위해 화요일에 투구 수를 모두 소진하는 선택은 단기 리스크를 감수한 결정이다. 공동 선두 싸움이 본격화되는 시점에 이런 기용을 택했다는 건, 벤치가 원태인의 컨디션과 내구성에 그만큼 신뢰를 갖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원태인은 이날 6회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고 마운드에서 포효했다. 그리고 경기 후 "포효를 이제 안 하고 싶다"고 했다. 좋은 것도 안 좋은 것도 숨길 줄 아는 투수가 되겠다는 말이었다.
표현의 절제를 말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은 피칭 철학의 변화와 같은 맥락이다. 힘으로만 붙지 않겠다는 것, 감정을 앞세우지 않겠다는 것. 둘 다 결국 "내 피칭의 본질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이다.

남은 시즌, 원태인의 ERA가 3점대 초반으로 수렴하는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구위가 있는데 결과가 안 나왔던 이유를 본인이 이미 찾았다면, 기술적 수정의 속도는 빠를 수 있다. 반대로 구위에 다시 의존하는 경기가 나온다면, 오늘의 피칭은 일회성 수정에 그칠 수도 있다.
기록은 이미 방향을 바꾸고 있다. 유지될지는 다음 등판이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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