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없던 구성과 형식으로 눈길끄는 제42회 경남연극제 출품작
인간의 삶은 날씨처럼 매일 변하고, 혼란을 겪는다. 연극은 이렇게 완벽하지 않은 삶의 한 조각을 보여준다. 매년 열리는 경남연극제가 그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42회 경남연극제가 15일 김해 극단 이루마의 〈선; 얼룩진 다리〉 공연으로 시작됐다. 연극제는 28일까지 김해문화의전당과 김해서부문화센터에서 열린다. 올해 '문화도시에서 연극을 말하다'를 주제로 한 곳 늘어난 14개 극단이 참여했다.
관람료는 작품당 3000원이다. 관람권은 한국연극협회 경남지회(gnta.kr) 누리집 팝업창에서 구매하면 된다. 문의 055-322-9004.
올해도 가족, 지역 소멸, 인간 존재 자체 등 다양한 내용의 연극이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경남도민일보〉가 개막 전 극단의 연습 현장을 찾아가 열띤 연습 현장을 담았다.
◇극단 마산 〈굿, 문門〉 = 경남연극제 개막을 4일 앞둔 12일, 마산 극단 객석과 무대가 사용하던 연습실에 모인 극단 마산 배우들은 몸과 목소리를 유연하게 풀었다. 이날은 디자인 된 음향을 배우들의 연기에 입혀보는 시간이었다. 최성봉 연출가는 음향이 처음으로 개입되는 터라 반복되고 버벅거릴 수 있었다는 주의를 배우에게 전했다.
연습이 시작되자 무속인 '신자'가 나타났다. 연극인지, 굿판인지 분간되지 않는 장면이 빠르게 흘러갔다. 감정이 격해지며 집중이 높아질 때, 최 연출가가 문득 연습을 멈췄다. 그의 상상과 다른 분위기와 그림이 나왔던 탓이다. 그는 감정은 충분하다며 대사의 정확도, 전달력 등에 초점을 두고 배우간의 합을 더 좁혀나가자고 했다.
작품은 낙태, 무속신앙 등으로 불편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춰낸다. 최 연출가는 생명경시나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패륜적인 일들이 뉴스로 보도되도 그것에 무뎌지기만 하는 사회를 비춰보려 했다. 그는 "연극을 보면서 죄책감들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고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려 의도했다"며 "그 때문에 희생당한 이들의 한을 풀어주는 건 '굿'이라는 생각에 마산 김현공 법사를 찾아가 자문을 구하고 무대 위 악사로 출연시켰다"고 말했다.
'신자'는 세 명의 아이를 뱃 속에서 떠나보내는데, 할매는 세 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자식에게 홀대받는 '할매'를 무심하게 바라보지 못한다.
"치매보다 무서운 병이 모성애라는 걸."
넋두리인지 한숨인지 모를 말을 신자가 내뱉는다. 실제 공연에서 관객은 〈굿, 문門〉의 주요 여성 배우들의 강한 에너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쏙 빠져버릴지도 모른다. 이번 작품에서 오화라 배우는 10년차 무속인 신자를 맡았다. 오 배우는 처음에 대본을 받아들고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라 생각했다. 그는 "연습을 하면서 신자를 인간으로서 받아들이기로 한 순간, 작품과 인물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창원예술극단의 〈당신의 프롤로그〉(김종록 작·장은호 연출)에도 출연하는 김위영 배우. 실제 나이와 차이가 큰 80대 '할매' 역할을 하느라 연습 내내 허리를 수그리고 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묵직한 기운을 오래도록 끌고 작품을 이어갔다. 신자와 함께 자기 인생의 마지막 여정을 둘러보게 된다. 작품 말미에 신자와 관객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무속인 신자의 몸주인 '애기씨'는 이예슬(32) 배우가 맡았다. 애기씨는 어린아이 목소리를 내지만 행동하는 것은 성인이라는 설정이 있다. 성악을 전공해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는 이 배우는 그 성량을 효율적으로 써 애기씨의 입체적인 모습을 구현해내고 있었다.
극단 마산의 출품작 〈굿, 문門〉은 18일 오후 7시 30분 김해문화의전당 누리홀에서 볼 수 있다.
◇진주 극단 현장 〈개는 물지 않는다〉 = 지난 11일 진주 중앙시장 근처에 있는 현장아트홀을 찾았다. 경남연극제 공연을 일주일 앞둔 진주 극단 현장 단원들이 공연 연습에 한창이었다.
연습장 바닥에는 노란색 테이프로 무대 모양을 그려놨는데 전반적으로 삐뚤어져 있었다. 의도였을까? 고능석 연출가가 작은 화면으로 무대를 미리 보여줬다. 지난해에 공연했을 땐, 세 면에 벽을 세우고, 출입구를 만들어두었지만 이번 공연에선 삭제했다. 대신 권투 경기장인 '링'을 연상시키는 무대를 만들어 배우에게 집중할 수 있게 했다. 무대 천장에 있는 바턴에 커튼식으로 추상적인 그림이 걸린다. 천장에는 형광등을 설치해 현대적인 분위기를 살렸다.
고 연출가는 "대본과 배우는 지난해와 같지만, 배우가 어떤 상태인지, 어떤 상황으로 분석했느냐에 따라 다른 작품이 된다"면서 "저번 공연과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 연출가는 이날 연습에서 "공연일까지 밀도를 높여가겠다"며 "우리 작품은 의견을 대립하고 전달하고 긴장감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염두에 두고 배우들에게 목표점을 갖고, 그 감정에 맞는대로 하되 대사를 선명하게 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연습 3분 전에 "소리가 아닌 밀도와 의지로 객석을 채워야 한다"면서 배우들을 집중시켰다. 비록 연습이지만, 연습실은 공연 전 암전되는 순간처럼 긴장감이 감돌았다.
한 마디로 이상한 작품이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묘하고 이상한 기운이 떨쳐지지 않는다. 작품은 거대 주택인 것으로 추측되는데, 집 주인은 없고 일하는 사람들만 있다. 이 집은 '난공불락의 요새'라 불리는데 그곳에 침투하려는 심부름센터 운영자인 '이현중'도 멀쩡해보이진 않다.
작품 초반엔 블랙코미디가 가미됐기에 웃음이 터질 듯 말듯 하다. 하지만 중후반부로 가니 이현중이 처한 상황이 점점 심각해짐을 깨닫는다. 이건 고 연출이 강조하는 밀도로 배우 6명이 밀고 나간 덕분이다. 배우의 감정은 요동치지 않지만 이를 바라보는 관객은 예측하지 못하는 인물들의 선택과 그 결과 때문에 여러 감정을 느낀다.
3층에 사는 아버님은 작품 중에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등장시키지 않는 이유는 관객의 상상력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 구조에서 권력이나 자본 등을 상징하는데 이 또한 관객의 몫이다. 3층에 사는 아버님에게 선택받지만, 결국 자유를 택해는 주인공 이현중에게 동질감을 갖게 된다. 그 순간 작품은 개인적인 문제에서 사회적인 문제로 시선을 확장한다.
고 연출은 "새로운 연극 형식을 선보이고 이에 대한 평가도 듣고 싶다"면서 연극제에 참여하는 본질적인 이유를 언급했다. 누군가에게는 재밌게 느껴질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의아한 연극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감안하며 말이다.
극단 현장은 19일 오후 7시 30분 김해서부문화센터 하늬홀에서 공연한다.
◇창원 극단 나비 〈(당)신의 재판〉 = 지난 14일 창원 용호동에 있는 나비 소극장에서 극단 나비의 연습이 진행됐다. 소극장은 현재 공연 중인 오페라 공연 무대로 꾸며져 있었다. 하지만, 나비는 아랑곳 하지 않고 법정이 배경인 자신들의 작품 연습에 몰입했다.
연습 전 김동원 연출가는 배우들의 상태부터 물었다. 지난해 12월에 공연했지만 그 3개월 간 사이에 잊은 것을 되살리고 바뀐 배우들과의 합을 맞춰야했다. 또 하나의 과제는 배우들의 음량이었다. 소극장에 맞춰진 목소리 크기이기에 이번 연극제 공연 장소인 김해문화의전당 누리홀에 맞추도록 훈련해야했다.
김 연출가는 심리나 표정, 눈빛을 읽어낼 수 있는 나비 소극장과는 달리 정제된 표정이나 말투로만 배역을 보여줘야 하는 공연장 상태를 설명했다. 그는 고정적인 연기 연습을 하지 않고, 즐긴다는 마음을 임하자고 말했다. 무선 마이크를 착용한다고 해서 목소리를 작게 내는 것을 돕는 게 아니라는 섬세한 부분까지 언급했다. 김 연출가는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바로 물어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배우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방향으로 연습을 진행했다.
작품의 막이 오르면 관객은 앉은 자리에서 순식간에 배심원이 된다. 관객이 작품에 체험, 개입을 하는 '이머시브(immersive art·몰입형 예술) 연극'이다. 배심원은 전해받은 칩 3개로 선택권을 주장할 수 있다.
작품은 관객에게 최종결정에 관여하는 배심원의 역할을 부여한다. "이 결정을 즐겨라, 재판장에 진정한 신이 되는 것이다"라는 대사로 작품은 첫인상부터 불길한 암시를 전한다.
작품 속 피고로 등장하는 강서영은 급성심부전증을 진단받고, 입양한 딸 최지아에게 심장을 이식받는다. 강서영은 결혼하기 전부터 심장 이식을 노려온 것이 아니냐, 자녀를 살해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다.
강서영은 어머니다움, 환자다움이라는 고정관념에 끊임없이 비교되면서 무죄추청원칙에 전혀 적용되지 않는 수치스러움을 법정에서 겪는다.
작품은 재판장의 모습을 주요 다루지만 피고 강서영의 삶을 극중극으로 보여줘 관객 이해도를 높였다. 법정 드라마이지만 김 연출가는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지점을 만드는 연습을 했다. 그는 "즐겁게 흘러가게 만들어보자"며 웃었다.
창원 극단 나비가 즐겁게 만들어나간 작품은 22일 오후 7시 30분에 김해문화의전당 누리홀에서 볼 수 있다.
◇창원 극단 미소 〈함부로 놀리지 마라〉 = 폐막 공연을 책임진 창원 극단 미소는 지난 12일 창원 도파니아트홀에서 연습 중이었다. 김해문화의전당 누리홀과 비슷한 블랙박스형 공간이었다. 객석 기준으로 왼편에는 쇼파가 오른쪽에는 카운터로 쓸 대도구가 놓여있었다. 장 연출가는 "거실 연극이라서 화려하고 큰 무대 장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작품 대본을 쓴 장 연출가는 주거 약자들의 삶에 주목했다. 배경은 장기 숙소도 겸하는 모텔의 로비다. 장기 숙박자들 사이에서 일주일 내내 방을 빌리러 오는 천 씨가 그들의 관심 대상이다.
극단 미소는 장 연출가의 지휘로 지난해 경남연극제에서 〈난파 가족〉으로 첫 대상을 받았다. 희곡상도 거머쥔 장 연출가는 이번에도 신작을 준비했다. 특별히 수상에 염두를 두거나 기대는 하지 않고 있지만 연습만큼은 열정적이었다.
작품 속 천 씨는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며, 모텔 화재경보기를 울린다. 주요 인물 4인 영춘, 민석, 도철, 황 마담은 천 씨가 잃어버린 것을 그가 들고 있던 큰 가방이라고 추측한다. 그들은 가방에 돈 될만한 값어치있는 물건이 들어있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점점 '우리 돈'이라는 이상한 확신에 빠진다.
작품은 말미로 흐를수록 인간의 잔혹성, 나약한 것을 더 약하게 만들어버리고 마는 이기심 등을 그려냈다.
연출은 장 연출가 특유의 '코미디'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내용은 비극적으로 흘러간다. 웃어야하나 고민하도록 하는 아리송한 블랙 코미디다.
장 연출가는 "우리 작품은 뽕짝 연극이라 생각해라"며 "대본에 적힌 글을 읽으려 하지 말고, 상대가 말하는 걸 듣고 이해하고 반응해야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지금은 연출가와 극작가로 그 방향성을 뚜렷하게 하고 있지만, 배우로 활동했던 그의 모습을 잊지 않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장 연출가는 보통 객석에 앉아있지만, 가끔 무대 위에서 연기를 지도할 때 희극 연기가 드문드문 나와 여전히 그의 실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올해는 연출에만 집중하고 있다. 폐막 공연인 만큼 부담감도 크기에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려 한다.
극단 미소의 초연작 〈함부로 놀리지 마라〉는 연극제 폐막일인 28일 오후 4시 김해문화의전당 누리홀에서 공연된다. 〈끝〉
/주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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