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백영의 생생 디자인] 컬러의 사회적·문화적·마케팅적 역할
컬러는 사람들의 인식·감정·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이는 확장되어 사회·문화·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는 컬러에 둘러싸여 있다. 이른 아침 붉은 햇살에 하루를 힘차게 활동한 에너지를 얻고, 출근 후 진한 갈색 커피 한 잔으로 일터라는 전쟁터에서 잠시 평온을 찾는다. 점심엔 시뻘건 김치찌개에 상사의 잔소리 스트레스를 날린다.
컬러는 감정에 기반한 비언어적 소통을 하기에 매우 좋은 도구이다.
빨간색은 경고의 색상으로 많이 사용되고, 녹색은 안전함으로 인식된다. 때문에 어느 나라를 가든 신호등의 멈춤은 빨간색이고, 건너도 되는 신호는 녹색이다. 또 그 어느 곳 보다 청결해야 할 병원의 인테리어는 대부분 밝은 흰색이고, 의사의 유니폼도 흰색이다. 검정색은 권위와 애도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성직자의 복장이나 장례식장에서 복장이 이를 보여준다.

이러한 컬러의 능력을 기반으로 기업의 마케팅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코카콜라이다.
코카콜라의 생생한 Red는 알다시피 전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브랜드 색상 중 하나이다.
아이코닉한 레드(Red)의 역사는 1890년대 콜라 운송 중 세금이 많이 부과된 알코올 용기와 콜라 용기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빨간색으로 칠한 것이 유래다.
Red는 흥분·열정·에너지를 감정적으로 불러일으켜 코카콜라를 마셨을 때 행복과 상쾌함이라는 브랜드 약속을 만들어냈고, 100년이 지난 지금 더욱 더 코카콜라를 코카콜라처럼 상징하게 하는 매개가 되었다.
이는 100년동안 패키지·광고·기타 브랜딩 전반 활동에 일관성 있게 사용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또 하나의 컬러 마케팅에서 성공한 사례가 스타벅스이다.

스타벅스는 시작부터 철저히 컬러를 브랜딩에 잘 활용한 기업이다.
평범한 회사였다면 아마도 커피를 연상케하는 브라운 또는 초콜릿 컬러로 자사의 로고를 만들고 다른 어플리케이션에 활용했겠지만 스타벅스는 자신들의 가치를 커피를 맛있게 파는 카페가 아니고, 고객을 위한 '제 3의 장소'를 만들겠다는 가치에서 출발했다.
집이나 회사가 아닌 올곧이 나만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정의하였고, 이는 차분하고 매력적이며 편안한 장소를 제공하는 곳이어야 했다. 때문에 당연히 적합한 컬러는 녹색이였을 것이다.
컬러 활용에 실패한 사례도 있다.
2011년 코카콜라는 북극곰 보호 캠페인의 차원으로 흰색으로 디자인된 캔을 출시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불만은 가득했다. 지구 온난화로 부터 북극곰을 보호하자는 취지와는 다르게 기존 은색으로 디자인된 다이어트 콜라와 헷갈렸기 때문이다.
당뇨병 환자들이 다이어트 콜라로 오인해서 구매한 후 반환한 사례가 다수 발생했다. 결국 소비자들의 반발에 흰색 콜라는 한 시즌만을 선보인채 퇴장하게 되었다.

코카콜라의 영원한 맞수 팹시도 컬러 때문에 낭패를 당한 적이 있다.
팹시는 1950년대 동남아시아에서 콜라콜라보다 훨씬 지배적인 시장 점유율을 누렸다. 하지만 1950년대 후반에 경쟁사 코카콜라에 시장을 내어준다. 원인은 컬러였다.
팹시는 자판기 색상을 로얄 블루에서 라이트 블루로 바꾸었다. 라이트 블루는 동남아 지역에서 죽음과 애도를 의미한다. 그 나라 문화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적용한 컬러 마케팅이 그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친 것이다.
크레파스에는 살색(살구색)이 없다.
크레파스에 더 이상 살색이 없다는 것은 이제 다들 잘 아는 상식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과정을 통해 살색이 되었는지는 잘 모를 것이다.
이야기는 25년 전으로 훌쩍 거슬러간다. 2001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에 “크레파스 특정색을 ‘살색’이라고 표현한 것이 인종차별”이라며 외국인 노동자집의 대표 김해성 목사와 외국인 노동자들이 진정을 내면서 시작됐다.
이듬해 헌법 제 11조 평등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 인정되어 ‘연주황’ 또는 ‘연한 노랑분홍’으로 사용됐다. 그러나 2004년 초중생 6명이 “어려운 한자어인 ‘연주황’을 사용하는 것은 어린이 차별”이라며 ‘살구색’으로 바꿔줄 것을 인권위에 진정하였다. 이를 받아들여 지금의 살구색이 탄생하였다.
어릴 적 아무 의심 없이 살색을 당연히 살색으로 알고 사용 했는데, 많은 이들의 고민과 열정으로 제 이름을 잘 찾은 것 같다.

컬러는 단순한 미학적 관점의 용어가 아니고 심리·사회·문화·커뮤니케이션 전반을 아우르는 것이다.
감정을 자극해 브랜드 정체성을 강화하기도 하고, 각 사회의 문화적 감성의 도구로도 활용된다.
무엇보다 마케팅 관점에서 고객의 인식을 형성하고, 브랜드의 정체성을 만들고 전달하며 고객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훌륭한 도구이다.
디자이너들만 컬러를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컬러는 수없이 우리의 선택을 받는다. 옷을 살 때, 스마트폰을 교체할 때, 새로운 화분을 들일 때 매번 나도 모르게 어떤 색이 어울릴까? 어떤 색이 돋보일까? 고민하며 결론을 내린다.
올해 새로운 아이템을 구매한다면 한두 가지는 '모카 무스' 컬러로 결정하는 건 어떨까?

오늘은 늘 먹는 아이스아메리카노 대신,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절제된 고급스러움과 우아함으로 세련된 매력을 선사하는 다재다능한 색상을 지닌 따끈한 모카 커피로 마무리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