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1년… 美 대선 흔들며 전선 확대한 속내는

김우영 기자 2024. 10. 2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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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9월 27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9차 유엔총회에서 저주’와 ‘축복’이라고 적힌 두 개의 지도를 들어 보이며 연설하고 있다. /AP연합

“이란의 ‘악의 축’에 선 적에게 반격하는 게 우리의 미래와 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이스라엘 총리는 10월 7일(이하 현지시각) 내각 회의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비롯해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 세력을 악의 축이라고 명명하며 이번 전쟁을 승리로 끝내겠다고 다짐했다. 이날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한 지 1년째 되는 날이다. 가자 지구에서 시작된 이 전쟁은 최근 레바논까지 전선이 확대되며 ‘다중 전선 전쟁(multifront war)’ 양상을 보인다. 그런데 이 전쟁의 향방을 좌우할 인물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도 아니다. 열쇠는 네타냐후가 쥐고 있다. 만약 그가 10월 1일 이란이 이스라엘에 퍼부은 대규모 탄도미사일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의 석유 인프라나 핵 시설을 타격한다면, 자칫 제5차 중동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올해 11월 예정된 미국 대선의 주요 변수로 네타냐후가 꼽히는 배경이다.

가자→헤즈볼라→이란⋯ 다중 전선 양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작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됐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민간인을 비롯해 약 1200명이 살해됐고, 250여 명이 하마스에 인질로 붙잡혔다. 네타냐후도 지상군을 투입해 가자 지구에서 하마스 소탕전에 돌입, 팔레스타인 민간인 수만 명이 사망했다. 무고한 민간인 피해가 늘자, 국제사회는 휴전을 압박했고 실제 휴전 성사 직전까지 갔으나, 7월 31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하마스 최고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이스라엘에 의해 암살당하면서 무산됐다.

하마스 소탕을 어느 정도 마무리한 네타냐후는 레바논의 무장 단체 헤즈볼라로 눈을 돌렸다. 하마스와 마찬가지로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는 이전에도 국경 지대에서 이스라엘과 수차례 교전을 벌여왔다. 그러던 중 9월 17일 많은 헤즈볼라 조직원이 사용하는 무선 호출기(삐삐) 수천 개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해 수십 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다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배후로 지목된 이 사건으로 헤즈볼라 통신망은 와해됐고, 이 틈을 타 9월 27일 이스라엘은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폭격해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를 제거했다. 10월 1일부터는 레바논 본토에서 지상전을 개시, 10월 3일 헤즈볼라 차기 수장으로 거론된 하심 사피에딘도 공습으로 제거했다. CNN방송은 “이스라엘이 레바논에서 작전을 시작한 지 3주도 안 돼 벌써 1만 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생겨났다”고 전했다.

네타냐후는 이란과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모습이다. 최근 이란은 하마스와 헤즈볼라 수장이 모두 살해된 데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 본토를 향해 고성능 탄도미사일을 대거 발사했다. 이에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을 공격한 자는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는다. 이란은 이 규칙을 곧 이해하게 될 것”이라며 보복을 공언했다. 미국의 만류에도 그는 현재 이란 내 석유 시설 또는 핵 시설 타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 폭격으로 사망한 하마스 최고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왼쪽)와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 /AP연합·EPA연합

네타냐후, 내부 결속으로 기사회생

가자 지구에서 레바논과 이란까지, 네타냐후가 국제사회의 휴전 압박에도 전선을 확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정치생명 연장 때문’이란 분석이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당시 이집트와 시리아의 기습 공격을 막아낸 골다 메이어 총리도 전후엔 결국 사임했다. 작년 10월 하마스 기습 공격을 못 막은 네타냐후도 책임을 회피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여기에 1년간 가자 지구에서 대대적인 군사 작전을 벌였지만, 하마스 궤멸은커녕 인질 97명이 아직 억류 중이다. 특히 그는 사법 리스크 부담도 안고 있다. 뇌물 수수 등 부패 혐의로 기소돼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쟁이 지속되고 그가 총리 자리에 있어야 형사처벌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상황이 급변했다. 네타냐후가 레바논으로 전선을 확대하고 이란과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내부 결집을 이뤄냈다. 9월 19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집권 여당 리쿠드당 지지율은 24%로 선두를 달렸다. 게일 탈시르 히브리대 정치학 교수는 워싱턴포스트(WP)에 “헤즈볼라를 파괴할수록 네타냐후가 정치적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네타냐후는 이번 기회에 중동의 안보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9월 27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9차 유엔총회에서 그는 ‘축복(THE BLESSING)’ 과 ‘저주(THE CURSE)’라고 각각 제목 붙인 두 개의 지도를 들어 보였다. 축복의 지도는 아랍 국가들과 하나가 돼 평화를 이루는 지도, 저주의 지도는 이란과 그 후원 세력이 남아있는 지도였다. 그는 “세계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번 기회에 이란의 영향력을 중동에서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美 대선 주요 변수로 부상 노력

폭주하는 네타냐후는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선의 주요 변수로도 꼽힌다. 지금까지 세 차례(1996~99년, 2009~2021년, 2022년~) 총리로 재직하며 네 명의 미국 대통령을 상대해 본 그는 자국 이익을 위해서라면 미국의 회유와 압박도 뭉갤 수 있다. 그간 바이든 행정부가 공들여 온 휴전 협상을 네타냐후가 무산시켜 미국이 중동에서 통제력을 잃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FT는 “민주당 내에선 바이든 대통령이 네타냐후를 통제하지 못한 것이 박빙인 선거 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일례로 미 대선 경합 주인 미시간주는 이슬람 인구 비율이 약 4%를 차지한다. 미국 전체 비율(1%)의 네 배를 넘는다. 그런데 바이든 행정부가 네타냐후의 폭주를 막지 못하면서 아랍계 미국인과 무슬림 사이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지지가 급감하고 있다는 게 뉴욕타임스(NYT)의 설명이다. 10월 7일 선거 분석 사이트 리얼클리어폴리틱스(RCP)가 집계한 미시간주 최근 여론조사 평균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겨우 0.7%포인트만 앞서고 있다. 승리를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네타냐후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을 바라고 전쟁 수위를 높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그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에 지지를 보내왔다. 그는 10월 7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 시설을 타격할 경우 지지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란이 미사일로 이스라엘을 공격했기 때문에 반격할 자격이 있고 누구도 화를 내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 바 있다. 그러면서 해리스 부통령을 포함한 바이든 행정부의 대(對)이란 유화 정책 탓에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며 유대계 미국인에게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할 것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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