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하게 떠오른 사회 이슈, ‘매크로’가 낳은 부작용
복잡하고 반복되는 작업을 자동화해 시간을 절약하는 데 도움이 되는 소프트웨어 기술인 매크로(Macro). 그런데 이 기술을 악용하는 사례가 늘면서 사회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유명 가수의 공연이나 스포츠 경기 등 입장권을 구매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말이 있다. 바로 ‘댈티’와 ‘아옮’이다. 댈티란 대리 티케팅, 아옮은 아이디 옮기기의 줄임말이다.
한마디로 암표 거래에 흔히 쓰이는 수법이다. 공연, 각종 경기, 게임, 팬미팅 등 입장권이 필요한 인기 행사의 경우 으레 비싼 값에 되파는 암표가 나돈다. 미리 표를 대량 구매한 세력들이 비싼 값에 암표를 판매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때 쓰이는 거래 수법이 댈티와 아옮이다.
대리 티케팅(댈티)은 하늘의 별 따기인 인기 입장권을 대신 구해 주는 행위다. 아이디 옮기기(아옮)는 구매한 티켓을 제3자에게 넘기는 행위로, 대리 티케팅을 막기 위해 본인 확인 절차가 도입되자 등장한 신종 수법이다. 두 가지 모두 정상적인 티켓 구매 행위에서 벗어난 편법 수단으로, 보통 전문 업체들이 대신한다. 요즘 인기 입장권은 댈티와 아옮을 거치지 않으면 구할 수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편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암표 구매의 도구, 매크로
댈티와 아옮을 위한 도구가 매크로 프로그램이다. 매크로 프로그램은 자주 사용하는 여러 개의 명령어를 묶어 특정 자판 하나만 누르면 여러 행위가 한꺼번에 처리되도록 만든 소프트웨어다. 일반적으로 입장권을 예매하려면 인터파크, 예스24 등 티켓을 판매하는 사이트에 접속해 이용자 번호(아이디)와 자동 방지용 문자를 입력하는 로그인 절차를 거친 뒤 좌석을 선택하고 요금을 결제한다. 당연히 여러 번 마우스를 움직여야 하고, 자판도 여러 번 두드려야 한다. 그런데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이 모든 절차가 클릭 한 번으로 해결된다. 쉽게 말해, 아주 빠르게 선착순 티켓 구매 행위를 대신해 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공연 티켓의 30~40% 이상이 매크로 프로그램을 거쳐 팔려 나간다.
티켓 구매뿐 아니다. 대학 수강 신청이나 명절 열차표 예매 등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는 사이트에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대학의 인기 강좌는 수강생이 몰리다 보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수강 신청을 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돈을 주고 전문 집단에 의뢰해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에스티씨랩 등 매크로 프로그램 방지 솔루션을 개발한 전문 업체에 따르면, 매크로 프로그램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곳 가운데 하나로 대학을 꼽는다. 김하동 에스티씨랩 기술총괄(CTO)은 “수강 신청의 70~90%가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다”며 “매크로 프로그램이 없으면 수강 신청을 못 할 정도”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봇, 즉 특정 행위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로봇 소프트웨어로 본다. 김하동 CTO는 “매크로 프로그램은 봇이라고 부르는 반복적 업무를 자동화한 소프트웨어로 출발했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이 하기 힘든 일을 대신 처리해 주는 자동화 프로그램으로 발전했는데, 이를 입장권 예매 등에 악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연히 사람이 정상적 행위로는 로봇을 이길 수 없다. 매크로 프로그램이 차고 넘치면서 인기 행사의 입장권을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그러면서 매크로 프로그램 사용률도 점점 올라가고 있다. 보안업계에 따르면 전체 인터넷 트래픽에서 매크로 프로그램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25%에서 올해 상반기 30%까지 증가했다. 그만큼 사용 비중이 매년 급격히 커지고 있다. 한마디로 매크로 프로그램 시장 또한 몸집을 키우고 있다는 뜻이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암표값
매크로 프로그램 시장이 커지는 것은 인기 있는 일부 공연의 경우 암표 가격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올해 1월, 인기 가수 장범준은 2년 만에 개최하는 공연을 갑자기 취소했다. 암표가 너무 극성을 부린 것이 그 이유다. 그의 공연 티켓은 인터넷에서 예매를 시작한 지 10분 만에 완전 매진됐다. 그러면서 표를 구하지 못한 팬들을 겨냥한 암표 가격이 원래 티켓 가격인 5만5000원보다 3배 이상 뛰었다. 이를 보다 못한 가수와 주최 측이 팬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공연 취소라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지난해 내한한 가수 브루노 마스의 공연도 정가보다 90배 비싼 1억8000만원짜리 암표가 등장했다. 인기 트로트 가수 임영웅의 공연도 암표가 정가보다 30배 비싼 500만원까지 뛰었다. 또 e-스포츠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도 사람이 몰리면서 암표가 정가인 24만5000원보다 10배 이상 비싼 300만 원에 팔렸다.
오죽했으면 가수 아이유는 공연에 암표 거래를 찾아내기 위한 일종의 ‘암행어사’까지 동원했다. 이를 통해 암표 거래를 발견하고 신고하면 제보자에게 포상으로 공연 입장권을 제공했다. 만약 팬클럽 회원이 암표를 팔면 팬클럽에서 영구 제명하고, 앞으로 공연 입장권을 살 수 없는 제재를 받는다. 이와 함께 1인당 한 장 이상 공연 입장권을 사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그 바람에 어머니가 입장권을 구하지 못하면서 어린 초등학생 자녀 혼자 공연장에 입장하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가수들의 공연을 관람한 사람 3명 중 1명꼴로 암표를 구매한 경험이 있다. 이들이 구매한 암표의 가격은 정가의 2배에서 5배 이르는 비싼 값에 거래됐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온라인 암표 거래 신고 건수도 2020년 359건에서 2022년 4224건으로 증가했고, 프로스포츠 온라인 암표신고센터에서 접수받은 암표 의심 신고 또한 2021년 1만8422건에서 지난해 2만8243건으로 크게 늘었다. 이처럼 암표가 기승을 부리면서 매크로 프로그램을 다루는 업체끼리 경쟁도 치열하다. 포털사이트에 접속해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검색하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광고가 나온다.
매크로 프로그램도 진화하고 있다. 요즘 주목받는 것은 ‘셀레니움’이라는 자동화 프로그램이다. 셀레니움은 인공지능(AI)처럼 매크로 내용을 미리 학습시킬 수 있다. 특정 예매 사이트에 익숙하도록 미리 프로그램을 학습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특정 예매 사이트에 접속해 어느 위치에 있는 어떤 버튼을 몇 시에 누르라고 사전 지정이 가능하다. 접속 신호도 한 번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1초에 100번 이상 보낼 수 있어 아무리 빨라야 1초에 서너 번 누르기도 힘든 사람으로서는 당해 낼 수 없다. 이런 매크로 프로그램이 예매 사이트에 여러 개 달라붙어 접속 신호를 대량으로 보내면 트래픽 폭주로 과부하를 견디지 못한 예매 사이트가 멈춰 버릴 수 있다. 예매 사이트를 운영하는 업체에도 시스템 정지라는 피해를 주는 것이다.
당연히 예매 사이트도 적극 대응한다. 셀레니움처럼 사전 학습한 매크로 프로그램의 이용을 막기 위해 홈페이지 내용을 자주 바꾼다. 예를 들어 메뉴와 버튼 위치 등을 수시로 바꾸는 것이다. 여기에 맞춰 매크로 프로그램 역시 바뀐 예매 사이트의 환경을 새로 학습하거나 우회한다. 매크로 개발자들이 변경된 홈페이지를 우회하는 방법을 새로 개발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매크로 프로그램과 예매 사이트의 대립은 끝나지 않는 창과 방패의 싸움이다.
자동 학습에 우회 기능까지 갖춘 최신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구한 암표는 부르는 게 값이다. 구하기 힘든 표일수록 나중에 매크로 프로그램 사업자가 성공 보수를 따로 받아 챙긴다. 성공 보수 역시 제각각이어서 암표 가격 상승에 일조한다.
중요한 것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암표 거래는 '불법’이라는 사실이다. 지난 3월 21일 「공연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티켓을 구매해 암표로 판매할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매크로 프로그램 규제가 시행되면서 개인이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경우보다 전문 업체에 의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개인이 직접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티켓 취소나 환불을 받을 수 없고, 적발되면 해당 계정으로 다시는 티켓을 예매할 수 없기 때문이다.
뒤통수의 왕? 빈번하게 발생하는 매크로 사기 행위
매크로 프로그램의 부작용 중 하나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기 행위다. 암표 거래 자체가 불법이어서 피해자가 신고하기 힘든 점을 악용한 사기 행위가 곧잘 일어난다. 아옮, 즉 아이디 옮기기도 사기 행위에 자주 이용된다.
원래 아옮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구입한 암표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못하도록 막으면서 등장했다. 요즘 행사업체들은 전문 암표업자들이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구매한 티켓을 다른 사람에게 비싸게 팔지 못하도록 행사장에 입장할 때 표를 구입한 구매자와 입장하는 사람이 같은지 신분증을 통해 확인한다. 만약 구매자와 입장자가 다르면 들어갈 수 없다. 여기에 지난 3월 21일 「공연법」이 개정되면서 티켓을 제3자에게 넘기는 행위 자체가 불법이 됐다.
이처럼 구매자와 입장하는 사람을 대조하는 방법을 피하기 위해 등장한 아옮은 일단 매크로 프로그램 업자가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표를 구매한다. 이후 사전 약속을 통해 이미 구매한 티켓을 취소한 뒤 표를 넘겨 받는 다른 사람이 취소된 시점에 바로 티켓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어긋나면 취소된 티켓을 다른 사람이 가져갈 수 있으니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일부 암표상들은 아옮의 허점을 역이용해 사기 행각을 벌이기도 한다. 원래 약속한 사람이 아닌 제3자에게 티켓을 비싸게 넘기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양쪽에서 돈을 받아 챙긴다. 아옮으로 티켓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 사람은 고스란히 돈만 날리게 된다.
이때 잘못하면 개인정보까지 털려 아옮에 이용당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매크로 프로그램 업자가 구매 대행을 해주겠다며 구매자에게 티켓 예매 사이트의 아이디, 비밀번호, 이름, 생년월일, 전화번호까지 물어본 뒤 이를 다른 사람의 티켓을 구매해 줄 때 대신 입력해 마치 구매자가 암표를 산 것처럼 이용한다. 이런 방식으로 제3자 아이디를 여러 개 활용하며 추적을 피한다. 또 가격이 올랐다며 추가로 돈을 요구하거나 아예 돈만 받고 잠적하기도 한다. 이런 수법으로 아옮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개설한 단체 채팅방의 회원이 5000명을 넘어섰다. 업계에서는 이들의 피해액이 40억 원 이상일 것으로 판단한다.
이런 사기를 당하지 않으려면 각자 알아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암표상들이 매크로 프로그램 사용을 위해 동원한 제3자 명의의 아이디를 추적하는 것은 사실상 힘들다. 따라서 범죄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워 피해를 당해도 구제받기 힘들다. 경찰에서도 암표 구입이라는 부정행위를 저지르다가 피해를 당한 경우여서 다른 범죄 피해자들과 다르게 볼 수 있다.
매크로 막는 방패
창이 있으면 방패도 있는 법.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불법 티켓 거래가 기승을 부리면서 이를 찾아내 차단하는 소프트웨어도 속속 나왔다. 매크로 차단 프로그램은 보통 두 가지 방식을 병행한다. 우선 정적 방식은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수십만 개의 악성 인터넷주소(IP)와 접속 IP를 비교해 차단하는 것으로 일종의 블랙리스트 방식이다.
이와 함께 쓰이는 동적 방법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이상 행동을 찾아내 잡아낸다. 예를 들어 초당 수백 번 접속 신호를 보내거나 동일한 행동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경우다. 사람이 하기 힘든 일을 초당 수십 번 되풀이하는 식으로 이상 행동이 일어나면 차단에 나선다.
보안업체 에스티씨랩은 여러 가지 차단 솔루션을 운영한다. ‘넷퍼넬’은 열차 예매 사이트나 입장권 예매 사이트, 대학 수강 신청에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을 탐지한다. 넷퍼넬로 이상 징후를 찾아내면 지난 3월 출시한 ‘앰버스터’라는 차단 솔루션을 이용해 매크로 프로그램이 접속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앰버스터는 정적 방식만 사용하는 다른 차단 솔루션과 달리 동적 방식을 함께 사용한다.
신생기업(스타트업) 바요도 8월 26일 암표 거래를 차단하는 ‘티켓프렌즈’를 출시했다. 이 서비스는 아옮을 원천 차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 서비스를 통해 사전 대기 등록을 하면 취소 표가 발생할 경우 대기 순서에 따라 예약이 된다. 업체에 따르면 원터치 방식을 통해 복잡한 절차를 여러 번 거칠 필요없이 한 번에 예매할 수 있다. 이 업체 관계자는 “10억 분의 1초까지 정확하게 순서를 구분하는 초정밀 시스템을 자체 기술로 개발해 초당 2만 명이 몰리는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라고 설명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인식 전환이다. 전문가들은 탐지 솔루션과 함께 암표를 구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보안업체 관계자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암표를 구하려다 피해를 입어도 일반인이 피해 사실을 문서나 자료를 확보해 증명하기 어렵다”며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구입한 티켓을 찾아내 무효화하는 조치와 함께 공정한 문화를 도입하기 위한 사회적 캠페인 등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ㅣ 덴 매거진 2024년 10월호
글 최연진(한국일보 IT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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