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 때문에 황제가 미술관까지 지었다?! 러시아 최고 명작의 숨겨진 이야기!-(2)

[김희은의 울림 깊은 러시아 예술이야기]

①편에 이어서 계속됩니다.

이제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내용으로 들어가보자.

이 작품은「요한복음」 1장 29절 "보라,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는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그림 중앙에서 십자가를 들고 있는 세례 요한이 저 멀리 보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키며 이렇게 외친다. ”저기 우리 앞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도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요르단 강변에 모여 그들 앞에 나타난 예수를 바라본다. 바리새인들, 로마 병사, 죄인들, 젊은이, 늙은이 등 그림 중앙에 십자가를 들고 서 있는 세례 요한을 중심으로 믿는 자는 왼쪽에, 믿지 않는 자는 오른쪽에 위치해 그리스도의 도래(到來)를 바라보고 있다.

믿지 않는 자

믿지 않는 자들.

현세는 구세주의 등장이 필연적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계층별로 다르다. 당연히 기득권을 쥐고 있는 오른쪽에 위치한 자들은 현실의 달콤한 안락이 즐거울 것이니, 구원이니 해방이니 따위는 필요 없다는 눈빛이다. 세례 요한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에 그들의 안락을 뒤집어놓는 훼방꾼이 있으니 적의(敵意)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볼 뿐이다. 마치 예수가 서 있는 저 곳이 세상 부조리와 거짓의 표상이지 않을까 하는 의심마저 들게 하는 그런 분위기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예수를, 구원자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지가 역력하다.

믿는 자

믿는 자들.

십자가를 들고 있는 세례 요한 뒤로 성자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 그리고 붉은 머리 젊은 요한이 있다. 그리고 지금 막 세례를 받은 하느님의 어린 양들이 선구자의 도래를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예수의 출현에 기뻐한다. 그들의 웅성거림이 생생하게 들리듯 그림이 사실적이다. 현실의 비참함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기대에 모두 부풀어 있는 듯하다.

작가는 황제의 압제 하에 숨도 못 쉬며 고통받는 참담한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간절히 원하는 민중의 염원을 예수의 모습을 빌려 표현한다. 예수라는 구원자가 나타나, 이 말도 안 되는 세상을 변혁시켜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현실을 외면하는 자

예수를 외면하는 고골

그림 속 수많은 인물들 중 주목해야 할 한 사람은 붉은 가운을 입고 예수를 향해 등을 돌리고 서있는 사람이다. 바로 <코>, <외투>, <감찰관>등을 쓴 러시아 대문호 고골이다. 이바노프와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는데, 둘은 '현실 구원'이란 주제로 고민하고 각자의 작품을 통해 세상을 변혁시키고자 약속했다. 하지만 예술에서 해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고골은 <죽은 혼>을 집필하는 와중에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이바노프는 그런 그를 그림 속에 그려 넣는다. 조국 러시아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고골이지만 어떤 구원책도 내놓치 못하고 자신의 무능을 한탄하며 삶을 놓아버린 친구! 러시아 민중 중에 실천하지 못하고 현실 외면만을 선택한 수많은 사람들을 대표해 뒤돌아서 구세주를 부정하는 고골의 모습을 믿지 않는 무리 속에 그려 넣는다. 그를 통해 참혹한 현실 앞에 그냥 주저앉아 침묵하는 자들에게, 왜 가만히 있는지, 그리고 조국 러시아를 위해 진정 무엇을 할 것인지 날카롭게 질문한다.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와 습작이 걸려있는 모습.

600 점의 습작, 인물 표정 묘사 '생생'

특히 이바노프의 작품《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그려진 600점이 넘는 습작이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휴대폰 화면 확대해서 보기처럼 부분 별로 포커싱해 그려진 습작들이 그림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습작을 원본과 함께 감상하기는 세계 다른 미술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러시아 미술관 만의 독특한 재미다.

어떤 습작은 원작의 표현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예수의 도래에 감격의 눈물을 글썽이는 세례자의 얼굴, 예수의 도래를 의심에 찬 눈으로 쳐다보는 바리새인의 표정을 들 수 있다. 그 표현이 너무도 생생하고 실감나게 그려져 지금도 인물 표정 묘사의 표본 같은 작품이다.

습작1. 예수의 도래에 눈물까지 글썽이며 기뻐하는 세례자 얼굴
습작2. 예수의 도래를 의심의 눈으로 쳐다보는 바리새인

600점이 넘는다는 습작의 수에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 연습화들이 주는 의의는 또 다른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많은 화가들이 이 습작들을 보면서 새로운 예술품 창작이란 자극을 받는다.

한마디로 고전적 화풍만을 답습하는 것이 전부였던 19세기 초반 러시아 화가들에겐 이바노프의 그림은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생생한 교과서로서 스승보다 더 스승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그가 그려낸 빛의 색채, 구도, 인물의 표정, 자연의 묘사 등은 당시 러시아 그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가장 세련된 표현법으로, 많은 작가들에게 살아있는 자극제가 되었다.

나뭇가지 습작.
성 밑에 있는 돌과 물.

프랑스보다 앞선 러시아 '인상주의'

이바노프의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는 세계 미술사에도 주목할 만한 의의를 갖고 있다.

세례 요한 뒤에 서 있는 나무를 보자. 나뭇잎의 색깔이 빛을 받는 양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서유럽 화가들이 빛을 표현해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시기는 19세기 중반, 1860년 즈음이다. 이 그림은 1837~1857년 그려진 작품인데 나뭇잎이 빛을 받아 색깔이 다르게 표현된 점이나, 바람에 살랑거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표현이라든가, 물표면이 아른거리는 것 등은 프랑스 화단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인상주의적' 표현과 통한다. 오히려 그 표현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다.

이런 사실들은 <나뭇가지 습작>이나 <성 밑에 있는 돌과 물> 등의 습작을 보면 더욱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데, 세계 미술계를 뒤흔든 프랑스 '인상주의'가 러시아에서는 이미 앞서 시도되었다는 점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나라가 앞섰는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이바노프의 천재성이 대단했다는 것이고, 러시아 미술의 우수성을 가늠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만약 러시아 미술이 서양 미술사에 포함되어 다시 쓰여진다면, 이바노프의 빛 표현은 분명히 재조명될 것이다.

19세기 중엽 러시아를 대표하는 사상가 게르첸은 화가 이바노프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이바노프 당신은 미술가들에게 위대한 모범을 보여주고 있으며, 러시아적 본성을 아주 잘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당신의 그 깊은 감성을 가슴 깊이 느끼며 당신과 함께 러시아 현실에 대항하며 러시아를 열애하고 또 밝은 러시아 미래를 강하게 기대할 것이다”

이렇게 각 분야에서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입을 모아 이바노프의 작품을 극찬했다. 비록 살아 생전 불우한 삶을 산 이바노프는 뜨겁게 길이 길이 러시아인들의 가슴에 남아있다.


※ 김희은은 20년 가까이 아트 딜러, 전시기획자, 큐레이터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과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그림 전문 '갤러리 까르찌나'를 운영중이다. 일반인들에게 그림 이야기를 전하는 도슨트 활동도 열심이다. 러시아 트레챠코프 국립 미술관과 푸쉬킨 박물관 전문 도슨트다. 저서로 <소곤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 <미술관보다 풍부한 러시아 그림 이야기>가 있다. 유튜브 채널 <갤러리 까르찌나>를 운영하며, 러시아 예술의 한국 대중화를 위해서도 애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