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렛 바이올렛 "스스로 미운 오리새끼가 된 백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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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스터 9세대 '스칼렛 바이올렛'은 완성도가 부족한 작품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리즈 역대 최고의 재미를 선사했다.
세뱃돈으로 부모님 몰래 구매한 포켓몬스터 1세대 리메이크 '파이어레드'가 기자의 첫 입문작이다. 당시가 2006년이다. 추운 겨울 이마트까지 달려가 구매했던 그 추억은 16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파이어레드는 일곱섬의 비밀, 로켓단 해체 후의 이야기 등 1세대 스토리를 완벽하게 풀어내며 극찬받았다. 그 이후 지금까지 포켓몬 게임을 즐기고 있다.
입문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포켓몬에 대한 애정도 여전하다. 하지만 기대는 없다. 현실과 이상, 포켓몬의 해방이란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뤘던 5세대 이후부터는 실망을 거듭한 탓이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지만 11년째 반복하다 보니 버티기 힘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포켓몬 9세대가 출시됐다. 지스타 출장 간 사이에 온갖 혹평이 쏟아졌다. "그럼 그렇지"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서울 도착 후 게임을 시작했지만 주변 평가대로 첫 인상은 꽝이었다. 프레임 드랍이 심했고 그래픽은 5년 전 게임이라고 해도 믿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낮은 퀄리티에 시작부터 마음이 꺾여버렸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게임을 하다 보니 너무 재밌었다. 역대 시리즈 중 최고의 재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켓몬 레전드 아르세우스'의 오픈월드 경험과 본가 시리즈만의 아이텐티티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뤘다.
참 아쉽다. 백조가 스스로 미운 오리새끼로 전락했다. GOTY급 재미를 가진 게임이지만 수준 낮은 퀄리티로 많은 것을 잃었다. 온갖 혹평이 쏟아지는데 "대체 무엇이 이토록 재밌나"라는 의문이 있을 것이다. 못 만들었어도 3일 만에 글로벌 판매량 1000만 장을 돌파하며 역대급 기록을 세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장르 : 오픈월드 RPG
출시일 : 2022년 11월 18일
개발사 : 게임프리크
플랫폼 : 닌텐도 스위치
■ 5세대 이후 가장 완벽한 스토리와 캐릭터
스토리가 가장 뛰어났던 시리즈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대개 5세대를 꼽는 이들이 많다. 기승전결부터 주제, 전달력 그리고 'N'이라는 입체적 캐릭터까지 완벽했다.
"포켓몬을 친구라고 말하면서 몬스터볼에 가두고 서로 싸우게 만든다. 이것이 진정 인간과 포켓몬의 우정인가"라는 주제를 다룬 5세대는 시리즈 최초로 IP 정체성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열린 결말로 끝나며 답변의 주체를 플레이어에게 남기는 흐름까지 꽤 훌륭했다.
눈이 높아져서 그럴까. 이후 세대 스토리는 클리셰 범벅에 평면적이었다. 이전까지는 책을 펼치지마자 줄거리와 결말을 다 알아버린 느낌이라면 9세대는 조금 특별했다.
'레전드, 스타더스트, 챔피언' 총 3가지로 나뉜 루트는 각각 다른 주제를 내포했다. 단순히 스토리가 다양해서 좋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승전결과 전달하는 메세지도 분명했다. 세 명 라이벌의 개성도 뚜렸했다.
챔피언 루트는 매 세대마다 동일한 리그 챔피언 스토리다 보니 감흥 없었지만 나머지는 달랐다. 스타더스트와 레전드 루트는 일상적인 내용을 포켓몬이란 소재를 활용해 맛깔나게 풀어냈다. 5세대 이후 부족했던 서사가 살아났다. 세 가지 루트는 하나의 서사로 자연스럽게 합쳐져진다. 최종 무대로 이동하는 개연성까지 완벽했다.
마지막 절정에 해당하는 '팔데아 대공' 안에서 펼쳐지는 최종장은 그야말로 백미다. 4세대 챔피언 '난천' 이후 14년 만에 느낀 전율의 클라이막스다. 주인공의 사명, 웅장한 BGM, 최종 보스다운 포스가 느껴지는 연출력, 이 삼박자가 모여 최고의 경험을 선사했다.
스토리를 논할 때 '몰입감'을 빼놓을 수 없다. 그동안 포켓몬에서 느끼지 못한 감정이다. 악당이 있길래 막은 것뿐이고, 리그 챔피언이 돼야 하니 상대를 이긴 것뿐이다. 그 이상이 없던 포켓몬 시리즈였지만 9세대에서 꽤 입체적으로 풀어냈다.
■ 비주얼 엉망이지만 섬세한 생태계 만든 오픈월드
포켓몬 IP와 오픈월드 조합은 이미 전작 레전드 아르세우스로 검증됐다. 글로벌 첫 주 650만 장을 기록했고 1분기만에 1264만 장을 판매했다. 메타스코어 83점, 유저스코어도 8.1점으로 평가도 준수했다.
9세대는 레전드 아르세우스가 보여준 오픈월드 경험에 본가 시리즈만의 아이덴티티를 더해 한층 완벽하게 만들었다. 각종 버그와 프레임 드랍, 저열한 그래픽으로 평가가 다소 퇴색되긴 했어도 재미만큼은 분명하다.
심리스 월드로 구현한 팔데아 지방은 다양한 생태계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평야, 사막, 호수, 만년설이 뒤덮인 고산 등 환경에 따라 서식하는 포켓몬도 다르다. '동물의 왕국'을 보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단순히 포켓몬을 잡으러 다니는 것을 넘어섰다. 탐험의 재미를 극대화했다. 준전설인 사흉수를 잡기 위한 말뚝 제거, 모으령 코인 수집, 필드 곳곳에 숨겨진 아이템까지 오픈월드 소재를 포켓몬식 콘텐츠로 구현했다.
아르세우스에서 보여줬던 비행, 암벽 등반, 수영 등을 그대로 가져왔다. 여기저기 뛰어다닌다고 탐험이 아니다. 다양한 상호작용과 이동 방식이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법이다. 버그는 놓친 게임프리크라도 이 점은 간과하지 않았다.
스토리 구간 별 레벨 스케일링이 없는 것은 아쉽다. 각 지역별로 레벨대가 고정이다. 자유로운 오픈월드를 표방했지만 레벨에 따른 정답지가 생긴 셈이다. 노가다를 통해 레벨을 보충하는 것이 아닌 이상 진행 순서는 강제성이 강하다.
공략을 보지 않는 이상 동선이 지저분해 질 수밖에 없다. 기자의 경우 첫 번째 갈림길에서 오른쪽 동선을 선택했다. 진행하다 보니 기자의 포켓몬 대부분은 40레벨인데, 격투 군단 보스는 50레벨이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왼쪽 동선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곳은 10레벨이었다.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라이드 포켓몬의 능력이 해금되는 레전드 루트의 선 진행이 알게 모르게 강제되는 것도 아쉬웠다. 주인 포켓몬을 쓰러트릴 때마다 대시, 비행, 수영 등이 차례대로 해금된다. 보다 편안한 동선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 높은 산, 절벽 등으로 동선이 불편한 지역이 많았던 만큼 어쩔 수 없이 레전드 루트를 먼저 진행했다.
공중날기 편의성이 좋아졌고 길 찾기 기능도 추가된 만큼 불편함은 일부 해소됐다. 하지만 오픈월드 핵심인 '자유로움'이 해결되진 않는다. 좋은 기능은 맞지만 완벽하진 않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다. 차기작에서는 어느 정도 보완하길 기대해 본다.
■ 무지성 다이맥스 안녕, 9세대 고유 시스템 '테라스탈'
메가진화-Z기술-다이맥스에 이은 고유 배틀 시스템 테라스탈이 밸런스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아직 모른다. 속단하긴 이르지만 8세대 다이맥스보다는 잘 만들었다.
다이맥스는 그저 가위 바위 보 싸움이다. 전략적 다양성을 늘리기보단 획일화시켰다. '무지성 다이맥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다이맥스 사용시 고화력 필중기가 된다는 말도 안 되는 효과가 있다. 더불어 '다이제트' 등의 랭크업 효과가 더해지며 쓰는 포켓몬만 쓰는 고착화 환경이 세대 내내 펼쳐졌다.
테라스탈은 포켓몬이 보석처럼 빛나는 현상으로 9세대에 참전하는 모든 포켓몬이 사용할 수 있다. 테라스탈을 사용하여 포켓몬을 일부 포켓몬은 타입이 변경된다. 예시로 이브이는 노말 타입이지만 테라스탈을 사용할 경우 풀, 물, 불 등으로 바뀐다.
테라스탈은 타입을 변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악용의 여지는 다분하다. 하지만 전략의 가짓수를 늘려준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바위 타입 포켓몬 '콜로솔트'가 비행 테라스탈로 약점을 바꾸며 눌러 앉는거나, 망나뇽이 노말 테라스탈을 통해 '신속'을 자속기로 사용하는 등 활용 방법은 셀 수 없다. 비주류 포켓몬도 테라스탈로 허를 찌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레이드 콘텐츠도 훌륭하다. 수면제였던 다이맥스 레이드의 단점을 제대로 보완했다. 가장 훌륭한 개선점은 파티원 개별 진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전작에서는 모든 플레이어가 함께 하지 않으면 턴이 진행되지 않는다. 반면, 테라 레이드는 다른 트레이너의 행동 선택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할 수 있다.
보기와는 다르게 전략이 중요하다. 핵심은 보스의 보호막이 생기기 전 한방 컷을 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디버프, 버프 그리고 응원의 순서를 짜는 택틱이 필요하다. 보스 방어력은 낮추고 아군의 공격력은 최대로 만들어야 한다. 실패하면 택틱을 수정하며 도전하는 맛이 쏠쏠했다.
보상은 꽤 유의미하다. 테라 레이드로 잡은 포켓몬은 고개체로 뚜껑작, 숨특작 등을 거의 할 필요가 없다. 노력치 분배를 마치면 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을 정도다. 육성에 필요한 각종 아이템도 드랍하니 동기부여도 확실하다.
■ 여덟 세대를 거쳐 완성된 극한의 편의성
게임을 시작하면 초반 라이드 및 공중날기 지원 등 원활한 스토리 진행을 위한 편의성 개선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스토리가 전부가 아니다. 편의성 개편의 진가는 엔딩 이후 나온다. 바로 포켓몬 육성 시스템 개편이다.
우선 접근이 용이하다. 포켓몬 센터까지 들어가 박스에서 포켓몬을 꺼내올 필요가 없다. 기본 메뉴에 박스가 추가됐다. 역대 시리즈 중 가장 편리한 포켓몬 관리가 가능하다. 아울러 별도의 NPC 및 아이템 없이도 포켓몬 기술을 잊거나 떠올릴 수 있다.
맡기미 집이 사리지고 기본 메뉴 내 피크닉에서 교배를 할 수 있다는 점도 훌륭하다. 8세대까진 같은 교배군 내 포켓몬을 맡기미 집에 넣고 알 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다. 꽤 번거로운 작업이다. 하지만 유전기 전수도 간소화됐다.
9세대에서는 아이템 '흉내허브' 하나만 있으면 해결된다. 유전기를 배울 포켓몬에게 흉내허브를 맡기고 기술을 배운 포켓몬과 함께 피크닉을 하면 끝난다. 1분이면 유전기를 배운 포켓몬 한 마리를 만들 수 있다.
배틀타워 등 별도의 BP 파밍을 통해 얻을 수 있던 배틀 도구도 간단하게 얻는다. 9세대부터 모두 인게임 골드(용돈)로 구매 가능하다. 레이드 보상인 LP로도 살 수 있다. 테라 레이드를 즐기다보면 자연스레 모든 도구를 마련한다.
다소 호불호가 갈리는 개편도 있다. 편리함과 귀찮음의 잣대, 그 어딘가의 영역이다. 전작까진 기술머신을 BP로 구매했다면 9세대부터 레전드 아르세우스에서 사용했던 포켓몬 부산물을 도입했다.
부산물과 LP를 사용해서 기술머신을 만드는 구조다. 부산물은 포켓몬을 포획 혹은 쓰러트림으로서 얻을 수 있다. 오픈월드를 표방한 만큼 필드 파밍 요소를 만든 것은 분명 필요하지만 귀찮은 시스템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1. 5세대 이후 가장 완벽한 스토리와 캐릭터
2. 탐험의 재미를 극대화한 포켓몬식 오픈월드
3. 각 세대별 장점을 모두 흡수한 편의성
1. 모든 장점을 희석시키는 저열한 그래픽과 버그
2. 레벨 스케일링의 부재로 루트 단일화
3. 플레이어의 개성을 돋보이게 만드는 부티크 시스템의 간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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