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산업재해, 그리고 사망…한국 일터는 왜 이렇게 위험한가

김석희 기자 2026. 6. 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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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고가 붕괴·공장 폭발 잇따라
5인 미만 영세 사업장 산재 사망 집중
“합의금이 더 싸다” 왜곡된 현장 인식
"비용 만능주의 타파, 실효적 보호망"
1일 폭발사고가 발생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 정문. 연합뉴스

지난달 26일 서울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사고를 시작으로, 31일 김해 종이박스 공장 사망 사고, 1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공장 폭발 사고까지 안전·산업재해 사고가 잇따르면서 한국 사회의 허술한 '안전망'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산업재해 예방 대책을 강화하고 처벌 수위를 높여왔음에도 비극이 반복되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문제의 본질은 현장에 고착된 구조적 위험에 있다"고 지적한다. 보여주기식 대책이나 사후 처벌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한 만큼, 원청 중심의 비용 절감 구조와 안전보다 생산성을 우선하는 현장 문화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유사 사고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1일 통계개발원의 'KOSTAT 통계플러스' 2024년 겨울호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우리나라의 '외인사(질병이 아닌 길거리, 일터 등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나 자살 등으로 사망하는 경우)'는 2만7812명으로 전체 사망의 7.9%를 차지했다.

산업재해 사망자수 매년 증가…안전 취약 계층에 집중
한국의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지속적인 증가 추세에 놓여 있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산재 적용 대상 근로자 수는 2023년 2만637명, 2024년 2만1421명, 2025년 2만2754명으로 집계됐으며, 이에 비례해 사망자 수 역시 2024년 2098명에서 2025년 2248명으로 늘어났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산업재해를 근절하기 위해 지난해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건설산업기본법' 개정 절차를 밟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지난 5월29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6년 1분기 산업재해 현황'을 살펴보면 상황의 심각성이 개선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1분기 전체 산재 사망자는 514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5.2% 감소했고 사망만인율(근로자 1만명당 사망자 수를 나타내는 지표)은 0.22%(전년 대비 0.02%p 감소)로 소폭 개선됐지만, 전체 재해자 수는 3만7069명으로 오히려 전년 동기 대비 10.1%나 급증했다. 특히 사망 사고는 60세 이상 고령자(56.1%)와 5인 미만 영세 사업장(42.0%), 건설업(35.8%) 등 안전 취약계층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OECD 국가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 불명예
OECD 주요 국가들과 비교하면 한국 일터의 위험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OECD 10대 경제국의 산업재해 사망률 평균은 근로자 1만 명당 0.24명(10만 명당 약 2.4명) 수준인 반면, 한국의 전체 산업재해 사망률은 2023년 기준 근로자 1만 명당 0.39명(10만 명당 약 3.9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캐나다(0.50명)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으로, 미국(0.37명), 프랑스(0.35명), 영국(0.04명)보다도 높은 수치다.

특히 한국의 산업재해 사망률은 OECD 주요 10개국 평균보다 약 1.6배 높고,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한 영국과 비교하면 최대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선진국 가운데서도 한국 노동 현장의 위험도가 여전히 심각하다는 의미다.

이에 정부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등을 통해 2030년까지 사고사망만인율을 OECD 평균 수준인 0.29명까지 낮추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실질적인 안전 투자와 구조 개선 없이는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산업별로 상황은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 지난해 8월 한국건설경제연구원에서 출간된 건설동향 브리핑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국내 건설산업 사고사망만인율은 1.59%로 OECD 경제 10대국 건설산업 중 가장 높았으며 10개국 평균인 0.78%보다 약 2.04배 높은 수준이었다. 건설산업 사고사망만인율이 가장 낮은 국가는 영국(0.24%)이며, 독일(0.29%), 호주(0.34%) 순이다. 국내 건설산업 사고 사망만인율은 영국의 6.6배, 독일의 5.5배, 호주의 4.7배에 달한다.

촘촘한 법망 비웃는 '비용 만능주의'…구조적 쇄신 시급
앞선 통계에서도 나타났듯 산업재해 사망 사고의 약 42%는 5인 미만 영세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특히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위험한 업무가 안전 설비에 투자할 여력이 부족한 하청·소규모 업체로 반복적으로 전가되면서 사고 위험 역시 현장 말단으로 집중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는 공사 기간 단축과 비용 절감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산업 현장의 구조 역시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분석했다. 촘촘한 안전 수칙조차 현장에서는 종종 '작업을 늦추는 장애물'로 취급되고, 일부 사업장에서는 "안전 시스템 구축 비용보다 사고 뒤 합의금이나 벌금이 더 싸다"는 왜곡된 인식이 여전히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은 법률이 생겼음에도 실효성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결국 서류, 형식상의 안전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며 "안전보다 이윤을 추구하는 경영자의 마인드, 속도와 비용을 추구하는 현장에서의 안전 불감증 등의 문제로 인해 사고비율이 감소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처벌주의를 넘어선 하도급 구조 개선, 영세 사업장 안전 투자 지원, 생명을 비용과 맞바꾸는 사회 전반의 인식 쇄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