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략 vs 정치…윤 대통령-이재명 29일 첫 '양자 회담'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29일 양자 회담 결과에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윤 정부 이후 첫 회담인데다 여소야대 국회를 극복하지 못한 수세 정국이 재연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 후 총선까지 1년 11개월간 국회 소수파 여당으로 제대로 된 국정 운영을 하지 못하며 싸움으로 날을 지샌 대치 정국이 앞으로 계속되느냐, 아니면 협치 정국으로 전환되느냐 갈림길에 섰다.
국민은 만남 자체보다는 회동에서 뭘 논의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합의를 이루어 내느냐에 기대가 쏠려 있다.
따라서 이번 양자 회담은 동상이몽을 품고 형식상 만나는척하는 '정략회담'이 아닌 정책 의제를 합의하는 '정치회담'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입법권을 장악한 다수파 야당인 민주당은 '윤이 회담'을 앞두고 윤 대통령 대국민 사과, 채 상병·이태원·김건희 특검, 방송 3법,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 지급, 대통령 거부권 자제 등등을 의제로 삼자고 여론을 몰아갔다. 사안에 따라 윤 대통령에게 타격을 입히기 위한 압박 의제도 있고 공정사회를 위해 필요한 의제도 있다.
1인당 25만원 지급 같은 의제의 경우 국민 여론 흐름이 관건이다.보기에 따라서는 영수 회담용 의제가 아니라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야당 의원과 보건복지부 국장 간에 논쟁할 사안인데,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은 부정적인 포퓰리즘 정치라는 지적도 있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1인당 25만원 지급을 서민 계층에게 한해 50만 원을 주자거나 채 상병·김건희 특검은 공수처 수사 종결 뒤에 야당이 미진했다고 지적하면 특검을 수용하겠다는 역제안인 조건부 수용도 할 수도 있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이번 회담이 진짜 '협치'의제로 시급하고 중요한 내용을 의제로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급한 의제로는 고물가로 인한 서민 고통, 의정 갈등으로 인한 의료서비스 불안, 중동전쟁으로 경제위기, 전세방 육아 부담으로 결혼을 미루는 청년, 국회 인준을 거쳐야 하는 총리 인선, 연금·노동 개혁 등 등이 꼽힌다.
중요한 의제로는 북한 리스크, 미중 갈등, 22대 총선에서 드러난 폐단인 소선거구제로 인한 양당 독식 국회, 최악의 비례정당제도, 부패한 지방자치 구조, 결선 투표로 국민이 한 번 더 통치자 선택을 숙고해볼 수 있는 결선 투표 등 정치개혁방안이다. 총리 국회 추천 같은 과감한 협치도 시도할 수가 있다.
이번 회동 일정이 갑자기 타결된 것은 윤 대통령이 25일 의제 없는 자유 회담을 하자는 제안에 이 대표가 수락하면서 성사됐다. 만나야 할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동상이몽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민의에 나타난 소통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야당과 만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야만 한다. 이 대표의 거듭된 영수 회담 요청을 형사피의자 피고인을 만날 수 없다고 거부해오다 총선 패배로 어쩔 수 없는 분위기에서 수용한 배경이다.
이 대표에게도 다수당이자 제1야당의 당수로서 대통령과 회동은 정치적 위상을 확인해준다. 진중권 시사평론가는 "이 대표가 그동안 영수 회담을 계속 요청한 것은 이재명 사법리스크를 방탄 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했다. 실제로 한 법조인은 "영수 회담 이후 법원은 이 대표 재판 지연 행위를 모르는 척하고 용인해줄 수 있고 판결이 관대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성과 없이 만남에 그치고 회동 이후에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형식회담에 그칠 수도 있다.
국가를 위해 긍정 효과를 가져온 과거 영수 회담 사례를 교훈 삼아 성과를 이루는 실질적인 정치회담을 민심은 주문하고 있다. 때로는 수장, 최고 지도자를 의미하는 영수(領袖)가 만나면 합의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이 진솔하게 야당의 협조를 요청한 여 주도의 영수 회담으로 국리민복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해 야당이 이를 수용한 사례도 있었다.
1988년 노태우 대통령(민정당 총재)이 김대중 평민당 총재를 만나 남북대화에 대한 협조를 요청해, 김 총재가 수용함으로써 이후 문재인 정권까지 역대 정부의 남북관계 정책의 골격이 된 '남북합의서'가 만들어졌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국회 다수당인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를 만나 의약분업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자 이 총재는 의약분업을 6개월 이후 실시하자는 기존 주장을 접고 즉각 실시에 동의했고, 김 대통령은 야당의 약사법 개정안을 수용했다. '정책 거래'인 것이다. 이 두 사례는 의회민주주의 정치회담의 전형을 보여줬다.
박정희 대통령도 국회 다수당인 민주공화당 총재로서 1965년 제1야당인 민중당 박순천 대표최고위원을 만나 한일협정 비준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 만남 자체가 유의미한 첫 영수회담 '박박 회담'이다.
민주화 이행기에 여권이 현격하게 불리한 정치 지형하에서 야 주도의 영수회담으로 야 의제를 여권이 수용한 대타협 회담도 있다.
1980년 유신 체제 최규하 대통령은 김영삼 신민당 총재를 만나 대통령 직선제 부활 및 김대중씨등 긴급조치 관련자의 사면복권 요구를 수용했다.
1987년 5공 체제 제1야당인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는 대통령 간선제인 호헌을 선언한 전두환 대통령(민정당 총재)과 회동에서 직선제 개헌을 요구했다. 전 대통령은 며칠 후 '노태우 민정당 대표'에게 전권을 위임, '노태우 6·29선언'이 탄생했다.
세 번째 영수회담 유형으로 여야 세력균형 상태에서 이뤄진 회동이다.
여대야소이지만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시점에서 2005년 6월 노무현 대통령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대연정을 제안했다. 중·대선거제로 바뀌는 걸 야당이 동의해 준다면 국무총리와 장관 임명권을 넘기겠다는 것. 박 대표가 거절했고, 열린우리당 지도부도 반대했다. 노 대통령의 이 제안은 지금까지 정치발전을 위한 선거제도로 요구되는 미완의 정치개혁방안이라는 중평이다.
이번 윤이 회담은 세 번째 유형과 유사하다. 여당의 의석이 비록 과반수에 실패했지만 행정부 권력을 잡지 못한 야당이 총선득표율도 5.4%밖에 우세하지 않은 상태다.
전문가들은 이번 '윤이 영수회담'에서 협치의 물꼬가 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정치학회장을 역임한 김영래 동덕여대 총장은 "극단적인 진영정치의 해소 없이는 국가발전과 민복(民福)의 정치가 어렵다"며 "민주정은 서로 다른 주장들을 어느 정도 관용해야 좋은 통치가 이뤄진다"고 충고했다.
김보리 정치평론가는 "민주주의란 각 권한(권력)체 간의 '연합정치'란 점을 제대로 인식해야 정치리더십을 발휘한다"며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가장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는 분별력을 발휘하는 회담을 기대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회동 배석자는,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민주당 측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대변인이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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