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작곡가가 버린 악보 주워 노래 만들었는데…국민가요가 되다

'K-POP 비하인드' 천재 작곡가 선배가 만들다 버린 악보 토대로 완성된 전국민의 가요

때는 1970년 서울대 미대에 재학중인 이 대학생은 자신의 미술작업이 잘 출리지 않자 평소 취미 생활로 하던 노래 작곡을 하고자 기타를 들고 작곡일에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

그의 자취방은 서울 수유리 우이동의 야산 근처로 무덤, 반지하창고가 있었는데, 분위기가 미술과 음악 생활을 하기에 좋다고 생각해 작업실도 함께 있었다. 그는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이 배경을 토대로 노래를 완성했다. 그런데 그는 알았을까? 훗날 이곳에서 만든 노래가 대한민국 전국민의 노래가 될줄은…

이후 그는 자신의 동아리라 할수있는 노래 모임이자 YMCA가 운영중인 청소년 쉼터 '청개구리'에서 이 노래를 선보이게 되었다. 당시 그는 미국으로 떠나는 친구의 환송 음악회에서 자신이 작곡한 이 노래를 발표하게 되는데,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박수를 치며 열광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현장에 있던 가수를 꿈꾸던 한 여성이 이 노래에 반하게 된다. 그녀에게 그 대학생은 1살 연상의 오빠였다.

그러다 그녀는 현장에서 이 대학생이 현장에서 이 노래의 악보를 적고 있었다는 말을 듣고 악보를 얻어볼까 하고 그에게 다가가려고 했는데, 그 악보가 바닥에 찢어진 채로 있는것을 보고는 빨리 악보 조각들을 주워서 귀한 보물처럼 안고 집에 와 조각을 테이프로 일일이 맞췄다. 그리고 그녀는 이 노래를 자기의 1집 앨범에 발표하고 싶어서 대학생에게 허락을 받게 된다.

그리고 1년후 그녀는 1집 앨범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노래는 당시 어두운 시대상에 희망을 주는 노래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게 되었고, 대중적인 인기를 끌기에 이른다. 그리고 1달이 지나서 원곡자였던 대학생도 자기 버전의 이 곡을 발표하게 되는데, 둘다 다른 스타일 이었지만, 아름다운 가사 덕분에 둘다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하지만 당시 검열기관은 이 노래의 가사에 나오는 일부 가사들을 문제 삼아서 불순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선정하게 된다. 그렇게 오랫동안 잊혀지나 싶었으나, 당시 문화를 염원하던 대중에게 이 노래는 민중가요로 불러지게 되었고, 1987년 6월 항쟁 당시에는 신촌 로터리 부근에 운집한 100만 명의 군중들이 이 노래를 함께 부르게 되면서 사실상 국민 가요로 인식되었다. 지금 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민중의 시대상을 반영한 노래로 알려진 이 노래는…

양희은의 '아침이슬'이며, 이를 완성한 당시 대학생이자 작곡가는 바로 한국 문화계의 큰 별인 故 김민기이다.

이 노래가 만들어진 유명한 탄생 비화중 '공동묘지 창작설'이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다. 여러 뉴스 기사에서도 다루고 있는 설인데, 김민기 선생이 어느 날 술을 마시고 공동묘지 근처에서 자다가 아침에 햇빛을 받으면서 깨어났을 때의 경험을 그저 가사로 옮기고 곡을 붙여서 만든게 '아침이슬'이라고 알려졌다.

하지만 김민기 선생이 JTBC 뉴스룸의 손석희와 가진 대담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자신의 작업실인 자취방에서 완성했다고만 언급했으며, 공동묘지와 관련한 이야기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이때의 대담이후 공동묘지 창작설은 그저 호사가들이 만든 이야기로 보고있다.

어쨌든 '아침이슬'은 한 천재 작곡가와 재능있는 가수가 함께 발표해 당시의 시대를 위로하며 희망을 전해준 국민가요로 앞으로도 여러 세대에게도 전해져야 할 우리의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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