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체불에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 눈앞…효과 있을까
재직자도 체불 임금 지연이자 받고, 체불 반복되면 반의사불벌죄 적용 제외키로
정부, 현실적 어려움 탓에 반대해왔지만 여야 합의로 환노위 문턱 넘어
"하루라도 늦게, 한 푼이라도 적게 지급하면 더 큰 부담을 져야 한다는 인식 가져야"
사상 첫 임금 체불 2조 원의 위기를 앞두고, 임금체불 사업주에 대한 처벌 수위를 대폭 높이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 통과될 전망이다.
개정안에는 최대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고, 고의·상습체불한 경우 피해 노동자의 합의 의사에 관계없이 처벌하도록 하는 방안이 담겼다.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이러한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이달 안에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될 것으로 보인다. 해당 개정안은 지난 12일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된 바 있다
개정안 주요 내용은 △체불사업주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체불 임금의 지연이자 지급 적용범위를 재직자로 확대 △명단공개사업주가 공개기간 동안 다시 체불하면 반의사불벌죄 적용 제외 △명단공개사업주에 대한 출국금지 허용 △상습체불사업주에 대한 신용제재 등이 담겼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때 실제 피해액보다 많은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제도다. 앞서 지난 대선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사업주가 명백히 고의로 임금을 체불하거나, 1년 중 3개월 이상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경우 사업주가 지급해야 하는 임금의 최대 3배에 달하는 금액을 지급하라고 노동자가 법원에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그동안 정부는 임금 체불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데 회의적이었다.
우선 노동자가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하며 민사소송을 제기하기도 쉽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체불 임금보다 소송 비용이 더 커질 수도 있다는 이유다.
또 임금을 상습 체불할 정도로 경영이 어렵다면 사용자의 재산 상태가 좋지 않거나 사업장이 영세한 경우가 많고, 고의로 체불한 악덕 사용자라면 자신의 재산을 은닉하는 경우가 잦아 현실적으로 손해배상은커녕 체불임금조차 받아내기 쉽지 않은 현실도 지적되고는 했다.
그럼에도 이처럼 여야와 정부 모두 임금 체불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이겠다고 나선 이유는 우리나라의 체불 문제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달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체불임금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2204억 원(26.8%)이나 증가한 1조 436억 원에 달했다. 체불 피해노동자도 15만 503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만 8636명(14.1%) 증가했는데, 체불 금액은 더 빠르게 늘어난 셈이다.
이처럼 체불 임금이 상반기에만 사상 처음으로 1조 원을 넘어서면서, 올해 임금체불 규모는 역대 최대를 기록했던 지난해 체불임금 액수(1조 7846억 원)를 훌쩍 넘어 2조 원대에 육박할 위기다.
가뜩이나 코로나19 사태 후폭풍에 더해 최근 내수까지 위축된데다, 티몬 위메프 미정산 사태 등 e-커머스 미정산 사태 등으로 임금 체불 사례는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심지어 정부 임금 체불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 프리랜서나 단시간 노동을 하는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플랫폼 종사자 등이 급증한 점을 감안하면, 현장에서 체감하는 임금 체불의 피해 규모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예컨데 지난 10일 한국노총이 주최한 임금체불 근절대책·제도개선 토론회에서 이주인권 셋 임선영(전 국가인권위원회 이주인권팀장)이 고용노동청에 신고된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현황을 발표한 바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 중 임금체불 경험 노동자는 2022년 기준 1.11%였지만, 이주노동자는 3.53%로 세배 이상 더 많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5월 민생토론회에서 임금 체불의 해법을 묻는 노동자의 질문에 악질 체불 사업주를 "반국가 사범"이라고 비난하면서 "체불 임금이나 노동자들의 피해, 또 더 큰 이슈들을 종합적으로 다루도록 노동법원의 설치를 적극 검토할 단계가 됐다"며 노동법원 설치까지 주문했다.
김문수 노동부 장관도 취임 후 첫 업무지시와 첫 기관장회의에서 연거푸 '임금체불 피해근로자의 신속한 권리구제와 체불 사업주 엄단'을 강조하면서, 임금 체불 해소를 노동부의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개정안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물론 피해 노동자 개인이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면서도 "악성 체불 사업주에게 강도 높은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겼으니 사용자들에게 임금 체불에 대한 경각심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100명 중 한 명의 노동자라도, 혹은 노조를 통해서라도 징벌적 손해배상이 실제로 청구된다면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 나아가 한국노총 유정엽 정책본부장은 "징벌적 손해배상은 고의·상습 체불에 한해서 적용되기 때문에 경영계 등에서 우려하는 만큼 남용될 소지는 없을 것"이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체불 액수가 크지 않아 약식 재판 등을 적극 활용할 수도 있고, 노동법원 논의가 진전되면 재판 절차가 더 간소해질 여지도 있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다만 "반의사불벌죄 적용 제외가 전면적으로 적용되지 않고, 임금 채권의 소멸시효가 여전히 3년으로 고정된 점 등은 아쉬움이 크다"고 지적했다.
직장갑질119 박성우 운영위원(민주노총 서울본부 법률센터장)도 "핵심은 사용자가 하루라도 늦게, 한 푼이라도 적게 지급하면 부담이 가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징벌적 손해배상이든, 부과금 제도든 지연 이자를 전면 확대 적용하든, 사용자가 절대로 체불하면 안된다는 인식을 갖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연이자의 경우 퇴직자들은 소송하기 어려워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노동부가 적극 나서서 다뤄야 한다"며 "반의사불벌죄가 완전히 제한되지 못했는데, 근로감독관이 합의를 종용하는 핑계로 악용되는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미흡한 개정안"이라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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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민재 기자 ten@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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