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고 돌아서면 또 쌓이는 '전단'.."혼자서 이걸 어떻게 다 치우나요"
성매매·대부업 등 홍보 전단
역사 주변 1시간에 1번꼴 살포
많으면 하루에 50ℓ봉투 10장
과중한 업무에 인력 부족 호소
구청에서 배포자 단속 나서도
현장서 잡기도, 추적도 어려워
지난 23일 오후 7시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접한 골목에서 오토바이에 2인1조로 탑승한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뒤에 탄 사람은 유흥업소를 홍보하는 불법 전단을 거리에 투척했다.
번호판이 없는 오토바이를 혼자 몰면서 전대에 담긴 전단을 공중에 뿌리는 이도 있었다. 클럽과 포장마차가 밀집한 이 골목에 한 시간에 한 번꼴로 전단 배포자들이 나타났다.
임무를 완수한 오토바이는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10m 간격으로 한 움큼씩 전단이 쌓였다. 주변 빌딩에서 번번이 관리자가 뛰어나와 빗자루로 종이를 쓸어 담았다.
한 관리자는 “그때그때 수거하는 게 빠르다”며 “치우고 돌아서면 또 뿌리고 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다른 관리자도 “일주일이면 75ℓ 종량제 봉투 10장을 쓸 때도 있다”며 “청소 봉투값을 (지자체에서) 지원해주지도 않는다”고 했다.
대한민국 ‘유흥 1번지’인 강남구 일대에선 인파가 북적이는 요충지마다 전단이 살포된다. 2호선 강남역, 3호선 신사역, 7호선 논현역, 9호선 신논현역 등 역사 인근이 전단 살포의 주타깃이다.
전단 살포자들은 매일 오후 7시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유흥은 물론 성매매, 대부업, 도박장을 홍보하는 전단을 뿌린다. 이 때문에 강남 일대에서 청소를 담당하는 환경공무관들은 하나같이 과중한 업무를 호소했다.
26일 오전 5시 유흥업소가 밀집한 한 거리에서 만난 환경공무관 A씨는 “하루에 많을 땐 50ℓ 공공용 종량제 봉투 10장이 가득 찬다”고 했다. 그가 빠르게 쓸어 담고 있던 쓰레기는 유흥업소를 홍보하는 종이 뭉치였다.
A씨는 기자와 대화하면서도 청소 카트를 끌고 바쁘게 다른 블록으로 이동하며 비질을 계속했다. 제시간에 담당 구역 청소를 마치기 위해 오전 3시30분에 나왔다는 그의 손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닷새 전 다른 거리에서 마주친 환경공무관 B씨의 처지도 매한가지였다. B씨가 청소를 하며 지나온 길은 깨끗했지만 아직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골목에는 전단이 널려 있었다. 그는 “하루에 4시간30분 동안 꼬박 치워야 맡은 구역을 다 치울 수 있다”며 “혼자서 이걸 어떻게 다 치우나. 구청에 누가 얘기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환경공무관들은 인력난도 호소했다. C씨는 “청소 인원이 부족하다”며 “구역마다 다른 특이사항을 반영해 일의 강도를 조정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불법 전단은 구청의 오랜 골칫거리이지만 뚜렷한 해법은 없다. 서초구청과 강남구청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이들 구청은 특별사법경찰관을 두고 야간 단속을 하고 있다. 그러나 번호판도 달지 않은 오토바이를 타고 도망가기 때문에 검거하기 어렵고, 전단에 적힌 전화번호 대부분이 대포폰이라 추적도 쉽지 않다고 했다.
환경공무관 A씨는 “예전에 다른 구청장이 있을 때는 단속을 계속 했다. 전단을 주워서 동사무소나 구청에 갖다 주면 어떻게든 단속을 했는데 요즘은 (단속이) 많이 줄었다”며 “요즘 (단속이 뜸하다 보니) 어마어마하게 뿌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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