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장인 유재석의 글로벌 도전에 남은 의문부호('코리아 넘버원')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유재석과 넷플릭스의 칠전팔기는 통할까. 지난 25일 넷플릭스는 8부작 새 예능 <코리아 넘버원>를 공개했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채널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제작진과 유재석의 또 한 번의 도전이다. 지금까지 유재석의 OTT 도전을 <런닝맨> 출신 PD들과 주로 해왔다면 이번엔 <효리네 민박>으로 큰 흥행을 경험하고, <슈가맨>, <일로 만난 사이>로 연을 맺은 정효민 PD와 손을 잡았다.
<코리아 넘버원>은 유재석의 2019년 출연작 tvN <일로 만난 사이>를 떠올리게 한다. 게스트를 초대해 함께 육체노동을 체험하는 설정이었는데, 여기서 게스트를 없애고 키워드를 전통노동으로 좁혔다. 화려한 게스트 라인업을 대신해 여러 방송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배구여제 김연경이 고정 멤버로 합류했고, 박명수 이후 유재석의 파트너인 이광수가 역시나 함께하며 또 하나의 캐릭터쇼 라인업을 구축했다. 또한, 국가 중요 유산, 주요 무형문화재들을 찾아다니면서 우리의 전통 문화와 지역 구석구석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요즘 우리 OTT 콘텐츠들이 추구하는 K-콘텐츠의 의미와 가치를 담았다.
여러모로 익숙한 맛이긴 하다. 이광수와 유재석이 투닥거리며 웃음을 담당하고, K-콘텐츠에 흥미를 느끼는 전 세계 시청자들을 상대로 제와장, 쪽염색, 한산모시, 막걸리, 죽방멸치, 세계 자연유산인 신안 갯벌과 낙지 맨손어업, 370년 전통 종갓집의 장 담기, 나전칠기 등등 새로운 한국을 보여주는 포부를 담았다. 다만, 방송을 보기 전에는 전통노동에 대한 의미부여가 강한 콘텐츠인 줄 알았으나 막상 시즌을 정주행하고 나니 진지하진 않다. 장인과의 접점이나 노동에 본격 집중하는 과정은 최소화 하고, 유재석과 이광수 콤비 특유의 쿵짝 만담을 전면에 내세운다. 쉽게 말해 진정성 코드보다는 일일 체험의 성격에 가깝다.
그러다보니 만담과 중량감 있는 세 멤버의 관계망이 주요한 볼거리다. 육체적으로 지치고 고생하는 환경은 이들 콤비가 투닥거릴 수 있는 좋은 꺼리다. 유재석이 이광수를 개구지게 구박하고, 이광수는 촌철살인의 반격과 화법으로 분위기를 띄운다. 고추장 퍼 담다 퍼지고, 갯벌에선 특유의 몸개그를 어김없이 선보인다. 최고의 센스와 얄미우면서도 사랑스런 캐릭터는 최근 <출장 십오야>에서 확인했듯이 전혀 소모되지 않고 그대로다.
체험이 끝나고 나서 셋 중 한 명을 최고의 일꾼으로 선정하다보니 장인의 눈에 들기 위한 유치한 경쟁 및 치열한 견제 등 리얼리티 캐릭터쇼 특유의 관계망도 작동된다. 익히 알려진 카리스마의 김연경도 배구 코트에서 볼 수 없었던 의외의 허술함을 종종 내비치는데 이는 유재석과 이광수와 같은 최고 수준 예능 선수들에겐 좋은 먹잇감인지라 김연경의 활약과 상성도 잘 맞는 편이다. 그래서 유재석과 이광수의 호흡을 기대하는 시청자들이 충분히 충족할 만한 웃음과 수다가 보장된다.
문제는 새로운 플랫폼에서 새로운 시청자들을 위한 도전이란 깃발이다. 현재 예능의 패러다임은 세계관 구축과 극상의 리얼리티를 동시에 추구하는 웹예능으로 넘어갔다. 이런 현상을 대변하는 '부캐' 코미디는 다른 말로 하면 코미디의 '극화'다. 유재석의 유산슬이나, 김신영의 다비이모, 최근 김경욱의 다나카처럼 특정 캐릭터의 활동을 통해 외연을 확장해나가며 세계관을 구축하는 경우도 있고, 한발 더 나아가, 현실에서 발췌한 듯한 캐릭터를 중심으로 높은 수준의 연기력과 스토리텔링으로 한편의 시트콤을 펼친다. '피식대학'이 그 적절한 예다. 다시 말해 스튜디오를 벗어난 콩트가 리얼리티와 결합해 탄생한 것이 캐릭터쇼라면 캐릭터 플레이부터 시작해 모든 면에서 그보다 진화되고 정교하며 자유도가 높아진 버전이 오늘날의 부캐 세계관이다.
과거에 리얼리티가 방송이란 포장을 지우면서 신선한 자극과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냈다면, 지금은 그 리얼리티를 재료삼아 연기력과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가공하는 세공술이 역량인 시대로 넘어왔다. 즉 과거 개그맨이나 예능 선수로 불리던 이들이 이제는 크리에이터의 영역과 맞닿아 있다. 참고로 최근 여러 유튜브 채널에서 세계관 브레이커로 활약하는 박명수 특유의 솔직한 접근이 구독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른바 하위 버전과의 충돌이다.
유재석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코리아 넘버원>이 각 분야 장인들을 소개하는 것처럼 유재석도 한국 예능, 특히 리얼버라이어티식 캐릭터쇼를 대표하는 장인이라 볼 수 있다. '부캐'의 대중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마치고 돌아간 자리가 <놀면 뭐하니?>로 대표되는 캐릭터쇼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가운데 서서 이미 호흡을 맞춰 본 두 명의 플레이어를 조율하고 자극하며 웃음을 지휘한다. 그가 센터 자리를 고수하고 호흡이 맞는 플레이어를 거느리는 것은 일면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럼으로써 신선한 설정, 거대한 스케일, 색다른 조합, 새로운 플랫폼 등등 어떤 환경에서 어떤 도전을 하든 소프트웨어 버전은 그대로다.
이에 대해 <코리아 넘버원>에서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프로그램 홍보가 본격 시작된 이후 촬영한 6화 오프닝에서 유재석은 이광수를 데리고 다니지 말라는 말이 많다는 이야기를 장난삼아 하고, 최근 개설한 유튜브 채널 <핑계고>에서 송은이와의 대화 중 자신도 때로는 플레이어가 되고 싶은데 진행롤을 맡아야만 하는 고충을 언급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잘하던 것을 하는 데 변화를 주진 않았다.
넷플릭스든, 넷플릭스 코리아든 로컬에서 통해야 세계에서도 통한다고 한다. 특히 넷플릭스 코리아는 지난여름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 국내 시청자를 사로잡는 예능을 내겠다고 호언했다. 그런데 이광수와 유재석의 콤비플레이에서 확인할 것이 국내에 아직도 남아 있을까? 재미가 없다거나 이들이 노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로컬 시청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전략적 접근이라기에는 꽤 어색하다. 이 둘의 콤비 플레이를 인정하지 않는 예능 시청자는 거의 없지만, 이 둘이 뭉쳤다는 것만으로 '각 잡고' 시청할 시청자 또한 많지 않다. 거칠게 말하자면 이광수가 날아다니던 시절에도 <런닝맨>은 꽤나 오랫동안 시청률, 화제성 침체를 고민했다.
TV예능을 포함해 오늘날 예능 콘텐츠는 꽤나 정서적이며 서사를 기반으로 하는 콘텐츠다. 신선하거나 매력적인 캐릭터가 펼치는 세계관을 구축해야 시청자들이 관심을 갖는다. 게다가 시청자가 보여주는 관심의 시간은 나날이 짧아지고 충성도는 더욱 귀해지고 있다. 그런데 10여년 가까이 TV에서 봐온 캐릭터 플레이에 대한 반가움과 익숙함이 OTT 환경의 시청자들에게 어떤 매력으로 다가올지 모르겠다. 실제로 8화 내내 유재석은 예능 장인다운 면모를 발휘했지만 글로벌한 도전이란 측면에선 여전히 의문부호가 남는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넷플릭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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