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시승] 메르세데스-AMG CLE 53 & GT 63 프로

EPIC OMG

스페인 남부 휴양도시 마르베야에서 AMG의 신무기 한 쌍을 만나고 돌아왔다. 뒤돌아 생각해 보니 출장 내내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Oh, My, God!

이현성 사진 메르세데스-벤츠

오 마이 갓. 이게 정말 맞나? 두 눈 비비고 비행 티켓을 다시 살폈다. 10월 9일 오전 11시에 한국을 떠나 11일 오후 5시에 귀국하는 일정이 맞았다. 스페인으로 1박2일 여행을 떠나는 셈이다. 오히려 좋았다. TV 앞에 앉아 <지구마블 세계여행>을 즐겨 보는 요즘이다. 현실판 부루마블로 유명한데, 출연자들은 주사위를 굴려 지구 반대편을 국내 여행하듯 떠난다. 그들의 여행기를 보면서 내심 부러웠다. ‘오늘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 내일은 에펠탑 바라보며 브런치’와 같은 몽상을 현실에서 누리고 있어서….

차쟁이들은 조금 다른 꿈을 꾼다. 오늘은 컨버터블과 함께 유럽 휴양도시 해안가를 따라 드라이브, 내일은 멋진 스포츠카와 함께 유명 서킷에서 전력 질주를 상상한다. 딱 이번 출장 내용과 일치한다. 유럽 최남단에 자리한 지중해 연안 도시 말라가주(州) 마르베야에서 AMG CLE 53 카브리올레를 만끽한 뒤 아스카리 서킷에서 AMG GT 63 프로의 운동성을 확인할 예정이다. 일정은 단 1박2일로 짧지만, 떠나기 한참 전부터 기분이 들떴던 이유다.

스페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그렇게 좋아하는 맥주도 입에 대지 않았다. 10일 자정에 호텔에 도착해서 동이 트면 운전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살인적인 여정 속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프랑스 파리를 경유하는 중에 비행 노선이 연착된 까닭이다. 결국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고장 난 생체 시계는 기어코 이른 아침부터 나를 깨웠다. 일찍 일어난 김에 시승할 차나 구경할 겸 방문을 나섰다. 그런데 웬걸, 차가 없다. 알고 보니 벤츠는 시승을 위한 베이스 캠프를 따로 마련해 두었다. 고급 풀빌라인데 유럽인도 휴가 때면 찾는 휴양도시에 걸맞게 으리으리한 규모와 화려한 자태를 뽐냈다. 관계자는 이곳에 대한 자랑거리를 늘어놓고 있지만 그의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오늘 호흡을 맞출 파트너에게 시선을 뺏긴 지 이미 오래인 까닭이다. 새빨간 페인트를 뒤집어쓰고, ‘상의 탈의’까지 마친 채 유혹하고 있으니 도저히 배기려야 배길 수 없었다.

원래 이렇게 몸매가 좋았나? CLE-클래스는 벌써 한국에서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다. CLE 200과 450, 쿠페와 카브리올레 등 엔진 형식과 장르 차별 없이 다양한 모델을 고루 만났다. 미려한 곡선으로 완성한 우아한 디자인이 인상적이었다. 스페인에서 마주한 AMG CLE 53 4매틱+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가만히 서 있는데도 아슬아슬한 긴장감과 팽팽한 속도감을 자아낸다.

매일 스쿼트 100개로 단련한 듯 탄탄한 뒤태 역시 눈길을 사로잡았다. AMG CLE 53 개발을 담당한 에르빈 노뮬러의 설명을 듣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핵심은 한층 풍요로운 차체 너비다. 앞뒤 바퀴 트랙 폭을 각각 58mm, 75mm 잡아늘렸다. 주행성능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 크지만, 빵빵하게 부푼 앞뒤 펜더는 역동적인 성격을 불어넣는 데도 효과적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각도에서 AMG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앞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라디에이터 그릴이다. 세로줄이 늘어선 파나메리카나 그릴이 한눈에 봐도 AMG 모델답다. 보닛 위를 가로지르는 두 줄기 파워돔은 여전하다. AMG는 보닛 한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고성능 분위기를 한층 강조했다. 기능도 충실하다. 엔진 열을 빠르게 배출해 성능 저하를 막는다. 앞펜더 옆면은 부메랑 모양 크롬 장식으로 꾸미고, ‘터보 4매틱+’ 배지를 붙여 차별화했다. 뒤쪽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듀얼 트윈 머플러다. 범퍼 밑단을 은빛 페인트로 칠해 머플러 두 쌍이 더욱 도드라진다.

메르세데스-벤츠가 CLE-클래스를 새로 마련한 이유는 명확하다. 쪼그라드는 쿠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C와 E-클래스 쿠페는 수익성을 높여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과감히 자아를 포기했다. 지난 5월, CLE-클래스를 경험하고 ‘하나 되어 더 밝게 빛나는 별’이라는 말을 남겼다. C-클래스 쿠페의 운동성, E-클래스 쿠페의 풍요로운 주행성을 한데 녹여낸 다재다능한 매력이 인상적이었다.

과연 AMG의 특별 레시피를 곁들인 CLE-클래스는 더 밝게 빛날 수 있을까? 부푼 기대감을 안고 운전석에 뛰어들었다. 목적지는 2시간 남짓 떨어진 거리에 있는 아스카리 서킷이다. 2세대로 거듭난 AMG GT 63 쿠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스포츠 주행에 더 날을 세운 GT 63 프로를 경험할 참이다.

마르베야를 달리면서 나중에 다시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중심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손맛 좋은 드라이빙 코스가 펼쳐진다. 숨막히는 풍경은 덤이다. 곧장 주행모드를 스포츠+로 바꿔 굽잇길에 장단을 맞췄다. CLE-클래스는 한국에서 경험할 때도 주행모드 별 성격 변화가 돋보였는데, CLE 53은 한술 더 떠 완전히 다른 차를 타고 있는 기분까지 느낄 수 있다. CLE 450을 탈 때 아쉬움으로 남았던 청각적 자극이 드리운 결과다. CLE 450의 감미로운 목소리는 확실히 편안한 여행에 알맞지만 재미는 다소 부족했다. CLE 53은 목청 높여 흥을 돋운다. 음악 감상을 방해하는 지붕까지 걷어내니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단지 목소리에만 힘이 들어가진 않았다. AMG 배지 앞에 부끄럽지 않은 출력 개선을 거쳤다. 파워트레인 코드네임은 M256M. 기본 바탕은 직렬 6기통 3.0L 터보 엔진으로, CLE 450과 같다. AMG는 달팽이 집 크기부터 손봤다. 몸집을 키운 터보차저를 짝짓고 부스트 압력을 1.1바에서 1.5바로 높였다. 그 결과 최고출력은 449마력으로 CLE 450보다 68마력 높다. 최대토크는 51kg∙m에서 57.1kg∙m로 늘었다.

그런데 보통 터보 크기를 키우면 가속 지연 현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높은 압력을 모으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까닭이다. AMG는 전기 컴프레서로 돌파구를 찾았다. 엔진회전수가 낮아 터빈 날개를 돌릴 배기가스가 충분하지 않으면 전기모터로 바람을 불어넣는다. 터보랙 없는 출력 상승의 비결이다.

가속 성능 차이는 선명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 시간은 4.4초로 CLE 450과 0.3초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후 가속이 훨씬 폭력적이다. 몸을 시트에 때려눕히는 타격감이 생생했다. 출력은 높지만 운전에 부담은 없다. 길들이고자 힘쓰지 않아도 배배 꼬인 산길을 짜릿하게 공략할 수 있다. 내 운전 실력이 이렇게 좋았는지 뿌듯할 정도다. 하지만 모두 CLE 53의 역량이었다.

CLE 53은 주행 상황에 따라 뒷바퀴를 최대 2.5도 비튼다. 여느 자동차의 뒷바퀴 조향과 차이가 있다면, 시속 100km까지도 앞바퀴와 반대 방향으로 꺾는다. 시속 100km를 넘으면 앞바퀴와 같은 방향으로만 최대 0.7도 회전한다. 덕분에 코너 깊이와 주행 속도에 상관없이 앞 코를 날카롭게 찔러 넣었다. 진입 속도가 조금 높아 ‘아차’ 하는 순간에도 무리 없이 돌아나가며 운전자를 다독인다.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라는 표현이 딱이다.

CLE 53과 산길 공략에 집중하다 보니 내비게이션이 처음 안내한 시간보다 30분 일찍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제 와 고백하건대 사실 염불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았다. 이번 출장의 주인공은 CLE 53이지만, GT 63 프로를 타고 서킷을 달리는 시간에 기대가 더 컸다(그래서 발걸음이 급했나…?). 모두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소재인 까닭이다. 아스카리 서킷은 2003년 문을 열었다. 회원제로 운영하는 프라이빗 서킷이며 5.425km 길이에 26개 코너를 품고 있다. 그런데 스파, 데이토나, 세나 S, 라구나 등 각 코너에 붙은 이름이 익숙하다. AMG 관계자에 따르면 전 세계 서킷에서 이름 있는 코너를 쏙 빼서 가져와 완성한 트랙으로 유명하다고.

아스카리 서킷은 입구를 들어가는 경험부터 특별했다. 거대한 대문이 스르륵 열리는데, 마치 피 튀기는 대결을 앞둔 검투사가 된 장엄한 기분이다. 입구를 지나 피트 가까이 다가가자 AMG GT 63 프로 4매틱+가 바짝 웅크린 채 서슬 퍼런 표정을 짓고 있다. 2세대 AMG GT를 실물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23년 8월에 나왔지만 국내 시장 진출은 아직인 까닭이다. 1세대 AMG GT는 2014년 파리모터쇼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타도 911’를 외치며 포르쉐 왕권에 반기를 들었다. 디자인은 과연 911을 압도했다.

비율부터 남다르다. AMG는 실버 애로우라는 별명으로 20세기 초 레이스 무대에서 활약한 경주차의 몸매를 AMG GT에 고스란히 녹였다.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보닛이 특징. 차체 길이 4546mm 중 앞 코끝부터 문이 시작하는 곳까지 길이가 1865mm에 달했다. 그러나 운동 성능에 너무 집중한 모습이 역력했다. GT라는 이름표가 무색할 만큼 달리기에 진심이었다. 일상을 함께하기엔 조금 부담스럽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결국 911 고객의 발걸음을 돌려세우지 못했다.

AMG는 과감히 변화를 택했다. 보다 더 유연하고 친절한 스포츠카를 목표로 2세대를 개발했다. 옵션으로 2+2 시트 구성을 마련한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를 위해 뒷바퀴 축 가까이에 얹던 변속기까지 앞으로 내쫓았다. 심지어 이제 8기통 엔진만 고집하지 않는다. 실린더 개수와 배기량 절반을 뚝 잘라낸 2.0L 직렬 4기통 모델까지 만나볼 수 있다.

현재 판매 중인 라인업을 출력 순으로 줄 세우면 GT 43(421마력), 55(476마력), 63(585마력), 63 프로(612마력), 63 S E 퍼포먼스(816마력)로 정리할 수 있다. 그중 오늘 시승하는 GT 63 프로는 트랙 주행에 가장 알맞은 모델이다. AMG에 따르면 직진 가속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인 63 S E 퍼포먼스가 더 빠르지만, 육중한 무게 탓에 움직임은 GT 63 프로가 훨씬 날카롭다고. 대중적인 스포츠카로 노선을 바꾼 점이 2세대 특징인데, 본의 아니게 가장 매콤한 맛을 경험하게 됐다.

GT 63 프로는 기본 GT 63을 바탕으로 크게 세 가지 부분을 집중적으로 바꿨다. 첫째는 성능이다. ECU(엔진 컨트롤 유닛)를 조정해 4.0L V8 트윈터보 엔진 출력을 27마력 높였다. 최대토크는 86.7kg∙m로 5.1kg∙m 더 세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 시간은 3.2초로 같지만, 시속 200km까지 가속은 10.9초로 0.5초 더 날쌔다. 고속 영역 가속 성능을 보완한 셈이다. 최고시속은 317km로 소폭 늘었다.

둘째는 냉각이다. GT 63에는 디퍼렌셜이 총 3개다. 앞뒤 바퀴 축에 하나씩 들어가고, 차체 중앙에 하나가 더 있다. GT 63은 디퍼렌셜에서 발생하는 열을 바람으로 식히지만 프로는 수랭식이다. 보다 과격한 주행에도 적극적인 열관리로 네바퀴굴림 시스템의 무리를 던다. 앞범퍼 양쪽 흡입구가 더 커다란 이유다. GT 63은 라디에이터가 양쪽에 하나씩 2개인 반면, 프로는 수랭식 디퍼렌셜 쿨러를 위한 라디에이터를 더하면서 양쪽에 2개씩 총 4개다. 이 흡입구를 통해 앞브레이크 냉각을 위한 바람길도 새로 마련했다. 마지막은 공력성능이다. AMG는 GT 63 프로 바닥 면에 날개 4개를 더해 다운포스를 늘렸다. 구체적으로 앞 30kg, 뒤 15kg 더 세게 짓누른다.

오 마이 갓. 제품 설명에 나선 관계자는 하고 싶은 말이 아직 남은 듯했다. 그런데 뒤에 있던 다른 직원이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비가 내릴 듯하니 시승 먼저 하라는 의미였다. 조용히 설명을 듣고 있던 나는 직원을 향해 슬며시 ‘엄지척’을 날렸다. 트랙 주행은 인스트럭터 뒤를 쫓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한 세션 주행 시간은 15분. 인스트럭터는 우리를 위해 서킷을 통으로 빌려두었으니 원한다면 지쳐 쓰러질 때까지 탈 수 있다고 행복한 겁을 줬다.

이날 나는 총 4세션을 끝으로 백기를 들었다. GT 63 프로의 잠재력을 모두 들여다봤다고 말하면 거짓이다. 내 실력으론 한계를 도통 가늠하기 어려웠다. 네바퀴굴림으로 다시 태어난 2세대 AMG GT의 핵심은 뛰어난 균형이다. 과장이나 왜곡 따윈 찾아볼 수 없다. 조금 무리한 속도로 코너에 들어가도 뒷바퀴는 쉽게 미끄러지는 법이 없었다. 그저 언더스티어 한 스푼에 그치며 ‘다음엔 잘 좀 해봐’라고 다독였다. 한마디로 예측이 쉽고 편하다. 뒷바퀴굴림이던 1세대를 타 본 경험을 떠올리면 늘 간담이 서늘했다. 웬만한 운전 실력 없이는 고삐를 쥐고 흔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2세대는 다르다.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아 최고출력을 꺼내 써도 무섭지 않다. GT 63 프로는 운전자 실수를 굳이 들춰내지 않았다. 오히려 실수를 친절하게 감싸 안는다. 비유하자면 1세대는 <수학의 정석>으로 공부하는 기분이다. 홀로 깨우치기 쉽지 않다. 반면 2세대는 해설지 펼쳐 놓고 문제를 푸는 듯하다. 어떻게 하면 코너를 더 빠르게 공략할 수 있는지 정답이 쓰여 있다.

해설집을 펼친 채 수학 문제를 푼다면 실력 향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사실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문제가 술술 풀리니 푸는 맛은 확실히 좋다. 연필을 쥔 손은 굿판이라도 벌인 듯 신이 나 춤을 춘다. 2세대 GT 63 프로를 탈 때가 딱 그랬다. 내 운전 실력이 늘고 있는 지, 실력 향상이 가능한 지는 상관 없다. 그저 내가 이 차의 고삐를 쥐고 흔들고 있는 이 순간이 흥미로울 뿐이다. 불안한 마음 내려 놓고 8기통 사운드를 마음껏 만끽할 수 있는 점도 좋았다. 1세대는 가속 페달 밟기 무서워서 시원하게 목청 높이지 못하는 점이 늘 아쉬웠다.

덕분에 지금까지 어떤 차로도 경험하지 못한 속도로 코너를 돌아나갔다. 어쩌면 4세션 만에 트랙 주행을 포기한 이유가 이 때문일지 모른다. 처음 맛보는 엄청난 중력 가속도에 내 비루한 몸이 버틸 재간이 없었다. 가속 성능 역시 웬만한 맷집이 아니고선 오랜 시간 버티기 쉽지 않다. 코너를 빠져나갈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매서운 펀치를 견디다 못해 결국 백기를 들고 피트로 도망쳤다.

드리프트 모드는 써볼 시도조차 못했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면 분명 아쉬울 터. 인스트럭터에게 양해를 구하고 드리프트 체험을 부탁했다. 그는 호기롭게 승낙했다. 그런데 자신 있던 모습은 이내 사라지고 어떻게든 꽁무니를 미끄러뜨리느라 진땀을 뺐다. 말하지 않았나, 균형이 정말 좋다고. 뒷바퀴로 모든 출력을 토해내도 GT 63 프로는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다. 미쉐린 파일롯 스포츠 컵 2R 타이어 때문도 있다. 아스팔트에 쩍 달라붙는 ‘떡그립’이 현란한 발놀림을 방해했다. 결국 값비싼 타이어 한 세트를 하늘로 올려보내고 나서야 힘겨운 사투가 끝이 났다.

일정을 모두 마치고 숙소로 가는 길. 하늘에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잽싸게 CLE 53의 지붕을 닫았다. 달리면서도 탑을 여닫을 수 있는 기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지붕을 여는 횟수가 눈에 띄게 늘어난다. 날씨, 주변 시선에 따라 언제 어디서든 닫을 수 있다는 생각에 부담이 적어서다. 참고로 CLE 53은 시속 60km에서 20초 만에 지붕을 여닫는다.

숙소에 도착해서 차 키를 반납했다. 행사 관계자는 내일도 비가 오면 큰일이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내비쳤다. 오픈 에어링을 즐기지 못하는 데다 트랙 주행은 전면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안타깝게도 다음날 비가 내렸다. 오늘 시승을 위해 먼 길 찾은 기자들은 완전히 공친 셈이다. 만약 비운의 주인공이 나였다면 어땠을까? 단 하루를 위해 34시간 걸려 찾아왔는데…. 상상하기도 싫다. 무사히 마치고 돌아감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오 마이 갓. 신은 내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