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호 23

이른 더위가 찾아온 2020년 6월. 북한강변을 따라 평온한 풍경에 감탄하며 도착한 곳에 강 너머 고래산의 원경이 겹쳐 근사한 경치가 펼쳐졌다. 북쪽 푯대봉이 만드는 단아한 근경도 주의를 끌었다. 종일 햇빛을 받아 밝고 선명한 모습이 무척 생기 있어 보였다는 건축가. 부담스럽지 않은 높이의 산은 대지와의 거리도 적절해 안정감을 주었다.

땅을 마주하고 그곳에 머물며 느끼는 동안 어렴풋이 설계의 방향을 잡은 건축가는 주어진 맥락이 충분히 매력적이어서 자연스럽게 서향의 원경과 북향의 근경을 중심에 두고 배치를 시작했다. 그 결과, 집은 대지 동남쪽 경계에 기대어 ‘ㄴ’자 홑집 형태로 놓였다. 덕분에 동쪽의 도로 소음을 차단하고 남쪽으로 높이 솟은 옆 대지의 시선에 대응하는 동시에 고요하고 편안한 마당이 만들어졌다.

주거 공간에서 중요한 요소인 프라이버시. 그 정도를 세심하게 조율하기 위해 접이식 슬라이딩 도어를 사용했다. 30mm 간격의 목재로 마감한 슬라이딩 도어는 잔잔한 바람길을 만들고, 개폐 정도에 따라 공간의 확장을 경험하게 한다.

동쪽 도로에서 5m 남짓 물러난 집, 그리고 낮은 담벼락과 어우러진 조경이 마을 가로의 풍경을 만들어 준다. 이와 함께 건축물 안팎은 때에 따라 주차 공간으로 쓸 수 있다. 차를 밖에 세우면 마당과 연결된 기존 주차장은 넓은 유니버설 스페이스Universal Spcae*로 변모한다. 좁고 단단한 콘크리트 입구의 낮은 금속살 대문을 열면 중첩된 고래산의 원경이 넓게 펼쳐진다.

*다목적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

1층에는 주차 공간을 사이에 두고 집의 공용 공간인 거실, 다이닝과 독립된 사랑방이 위치한다. 사랑방은 2층 매스를 받치는 너른 기둥이자 가장 독립된 장소로, 건축주의 다실 및 손님방으로 사용된다. 저녁 무렵 툇마루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는 고요한 휴식 시간은 집에서 누릴 수 있는 작지만 큰 사치다.

통합된 거실과 다이닝은 마당과 함께 푯대봉을 마주한 채 너른 공용 공간으로 기능한다. 강한 서향 빛을 거르는 외부 서쪽 벽체는 단란한 바비큐장의 경계를 만든다.

이와 대조적으로 2층은 자녀방과 욕실, 드레스룸, 부부 침실이 순서대로 나열되어 프라이빗한 성격이 강하다. 옥상 데크와 각 실에 면한 베란다는 채광과 환기,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계획했다. 또한 공적인 1층과 사적인 2층을 연결하는 계단은 재료와 형태를 구분해 오브제처럼 디자인했는데, 이로써 사용자가 성격이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는 전이의 과정을 즐기기를 바랐다.

건축개요

위치: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용도: 단독주택
규모: 지상 2층
대지면적: 711㎡
건축면적: 154.62㎡
연면적: 192.41㎡
건폐율: 21.75%
용적률: 27.06%
구조: 철근콘크리트
주차대수: 2대
사진: 조엘 모리츠(Joel Moritz)
시공: 정담건설
설계: 건축사사무소 오롯 / 010-2011-0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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