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진스키 선언문을 ‘지금 다시 한번 더 읽을 때’

산업 기술 문명에서 노예처럼 사는 것보다는 가치가 있는 삶... 한 미친 테러리스트의 이야기.

시어도어 “테드” 카진스키(Theodore “Ted” Kaczynski; 1942. 5. 22. – 2023. 6. 10.) 혹은 유나바머(A.K.A. the Unabomber) FBI 제공.
27. 현대 좌파 중에서 대단히 중요하고 큰 영향력을 지닌 한 분파가 지나치게 사회화되어 있으며, 그들의 지나친 사회화에 의해 현대 좌파주의의 방향이 결정된다고 우리는 주장한다. 지나치게 사회화된 좌파들은 흔히 지식인이거나 아니면 중상 계층 출신들이다. 대학 지식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고도로 사회화된 분파를 구성함과 아울러 대부분의 좌익세력을 이루고 있음을 주목하라.

29. 지나치게 사회화한 좌파가 사회에 저항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거기에 집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를 하나 들어보자. (중략) 그들은 흑인 아버지를 ‘책임감 있는 아버지’로 만들고 싶어하며, 흑인 갱단을 비폭력주의자로 만들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바로 산업-테크놀로지 체제의 가치들이다. 체제는 사람이 어떤 음악을 듣는지, 어떤 옷을 입는지, 어떤 종교를 믿는지에 관해서는 일체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 사람이 학교를 다니고, 존경할 만한 직업을 갖고 있으며,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오르고, ‘책임감있는’ 부모이며, 비폭력주의자인 한에 있어서는 말이다. 지나치게 사회화된 좌파는, 그 자신은 격렬히 부인하겠지만, 흑인 남성을 체제에 통합시키고 싶어하며, 흑인 남성으로 하여금 체제의 가치를 수용하도록 만들고 싶어한다.

시어도어 카진스키, [산업사회와 그 미래], ‘과잉 사회화’, 워싱턴포스트: 1995. 9. 19.

임명묵: 카진스키가 말한 좌파는 19세기 노동운동 전통의 좌파가 아니라 대학가 백인 중산층의 어떤 정체성 운동의 의미로서 좌파라는 말을 썼다라고 언급합니다.

임명묵: 좌파는 패배의식과 열등감 그리고 과잉 사회화의 산물인데 산업기술 시대의 모든 인간은 모두 이런 심리 상태를 내포하고 있다는 게 카진스키의 진단이죠.

민노: 그렇다고 카진스키가 보수주의를 옹호한 거는 아니잖아요.

임명묵: 그렇죠. “보수주의자는 바보들이다”라는 문장이 있을 정도니까요.

민노: 카진스키는 보수주의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 봤다?

50. 보수주의자는 바보들이다. 그들은 이미 썩어 가는 전통적 가치관에 묶여 있으면서도 여전히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경제 성장을 열광적으로 지지한다. 한 사회의 테크놀로지와 경제의 급격한 변화는 사회의 다른 부문의 급격한 변화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그런 급속한 변화는 필연적으로 전통적 가치들을 붕괴시킨다는 자명한 사실을 보수주의자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시어도어 카진스키, [산업사회와 그 미래], ‘사회 문제의 근원’, 워싱턴포스트: 1995. 9. 19.

민노: 공산당 선언으로 상징되는 마르크스주의는 어쨌든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하면서 현실 소비에트의 어떤 이념적인 교조이나 정치 철학으로 작동했잖아요. 그런데 카진스키의 선언문은 이게 너무 계란으로 바위치기도 아니고, 진짜 계란으로 무슨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치기 같은 그런 느낌이 살짝 드는데요.

임명묵: 실제로 그렇죠. 사실은 말도 안 되는 얘기죠. 그런데 제가 카진스키 선언문을 ‘지금 다시 한번 더 읽을 때’라고 말하고 싶은 건, 산업문명을 테러로 일거에 무너뜨리자는 그런 황당한 게 아니라 다만, 현대 문명에 대한 카진스키의 진단은 분명히 우리에게 시사한 바가 크다는 겁니다. 이에 관해선 이어서 이야기하시죠.

테드 카진스키로 밝혀지기 전, 테러리스트 유나바머를 상징하는 FBI 몽타주 이미지.
이 글은 슬로우뉴스 인터뷰 'K(카진스키)를 생각한다'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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