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진시황릉을 발굴하지 못하는 걸까, 안하는 걸까?

1. 고고학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

전 세계 4대 문명이라고 보통 우리가 이야기한다. 물론 문명은 더 많이 있었지만, 중국이 차지하는 이 문명에서의 특징은 정말 대단하다. 메소포타미아는 설형문자가 나중에 알파벳이 되었지만, 중국이라고 하는 나라는 지금도 거의 끊이지 않고 연속성 있게 계속 문명이 이어져왔다. 중국도 그걸 되게 자랑스러워해서 자기들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데 고고학을 이용한다.

중국은 면적으로 보나, 사람의 수로 보나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고대 문명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현대의 중국을 만들어 놓은 것은 진시황이라는 사람이다. 진시황은 왜 중요할까? 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보면 현대 중국이 지향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고고학이라는 것의 또 다른 매력은 가장 현대사라는 것이다. 즉, 그 당대에 가장 강조하는 인물 거기에는 그 사람들이 지향하는 모습이 있다.

2. 진시황이 사후에도 주목받는 이유

진시황이 진나라라고 하는 나라를 만들어서 중국을 통일했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정말로 주의해야 할 게 있다. 중국은 하나로 통일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중국의 의미는 사실 다양하다. 현대의 거대한 영토로서의 중국은 20세기가 되어서야 형성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을 하나로 만들려는 생각을 했던 게 바로 이 진시황이었다.

법부터 시작해서 엄청나게 많은 충돌과 알력이 있었을 것이다. 모든 그러한 그 오욕을 진시황이 떠안았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평가가 오고 가는 사람인데, 문제는 진시황이 남긴 고고학적인 유산이 아주 많기 때문에 지금도 계속 알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3. 압도적인 진시황릉의 거대함

진시황릉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죽은 사람을 위한 하나의 도시를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성벽의 길이가 6.3km, 여산릉 자체 길이가 350m에 높이가 75m, 웬만한 야산보다 큰 거다. 그곳이 바로 진시황이 묻혀 있었던 곳이다. 이렇게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동원해서 만들었던 가장 대표적인 중국의 황릉이다.

모든 걸 다 가진 왕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죽음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죽음 후에도 똑같이 이 사람의 살아 생전의 궁궐과 자연 현상들을 다 그 안에 묘사해서 넣었을 것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계속 전해지고 있다.

4. 경이로운 유적지 병마용갱

대부분의 고고학적인 위대한 발견들은 우연히 발견된다. '그럼 고고학자가 그것도 안 찾고 뭐해?' 라고 이야기하는데 그 지역이 파괴가 될 경우에는 땅을 파보겠지만 일 없이 땅을 파는 일은 없기 때문에 우연하게 현지 사람들이 발견한 것이 신고가 되는 때에만 알 수 있다.

사실 지금도 보면 중국 전역에서 밭 갈다가 유물 나오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이 발견된 당시가 '문화혁명'이라고 하는 아주 혹독한 시절이었다. 그러니까 괜히 발굴된 유적이 나왔다고 하면, 봉건시대의 유물을 왜 너희가 발굴하냐면서 고고학자들도 자칫하면 큰 처벌을 받을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진시황릉이 가장 경이로운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1호 갱, 2호 갱, 3호 갱까지 팠는데 다들 공통적으로 진시황릉의 반대편인 동쪽을 바라보고 있게 도열해 있다. 그리고 진시황릉 사람들의 얼굴 형태가 다 다르고 군사 조직을 똑같이 옮겨 온 것이다.

5. 중국이 진시황릉 발굴을 하지 않는 이유

진시황릉 발굴을 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고고학의 원칙 중에 하나는 당장 파괴되지 않는 것은 지금 발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안 파는 게 맞다. 고고학자의 1차 원칙은 최대한 보존해서 후대로 전달해 주는 것이다. 

발굴을 하지 않는 이유는 인간의 기술은 지금 매년 발달하고 있다. 50년 전에 발굴했었던 천마총을 지금 발굴한다고 하면 어떨까? 훨씬 더 좋은 기술로 발굴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로 갈수록 더 좋은 기술들이 나올 것이다.

6. 진시황릉 내부의 미스터리

고대 왕들, 왕족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죽음일 것이다. '나는 죽어도 저 저승의 세계에서 똑같이 호화롭게 살 것이야'라고 하면서 각종 수많은 금은보화를 다 넣는다. 그러면 그것은 도굴꾼들의 표적이 될 것이다. 진시황도 도굴꾼의 표적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걸 진시황이 모를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다양한 장치를 두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발굴한다면 밖에서 나오는 이야기하고 좀 다르게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사마천의 '사기'에 그 이야기가 나와있다. '진시황의 무덤이 어떻고 자동으로 쏘는 활이 있고 수은의 강이 있고 해서 절대로 침범할 수 없게 만들어 놨다'. 그만큼 진나라에 대한 무덤에 대한 정보는 은폐되어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사마천이, 정말로 진시황에 대한 정보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면, 병마용을 비롯해서 더 많은 무덤에 대한 이야기를 할 텐데 진시황도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고
역사 기록에 나오는 그런 정도의 정교한 현대 문명을 능가하는 것이 나왔을까?

7. 수은을 사랑한 진시황

엄밀히 말하면 진나라의 진시황은, 순수한 한족이 아니라 서쪽에서 온 유목민들의 후예가 많이 섞여 있다. 서융이라고 하는 실크로드에서 왔었던 유목민들이 진나라의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수은에 대한 풍습이 있다.

수은이 왜 중요하냐면, 수은을 바르면 그 순간 미백 효과가 있다. 그래서 갑자기 순간적으로 젊게 보이는 특징, 미백 효과가 있었다고 이야기해서 수은 성분을 발랐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수은은 기본적으로 고대에 어딘가에 색칠할 때 아주 좋은 용도가 되었다.

8. 진시황릉은 이미 도굴 됐다?

아마 도굴을 시도를 많이 했을 것이다. 항우부터 시작해서, 한나라 때도 그러고 도굴이 많다는 소문이 있기 때문에 시도는 많이 했는데 대부분 다 실패로 끝났다.

'이미 도굴됐기 때문에 안 판다?' 이는 그냥 하나의 억측일 뿐이다. 이것이 도굴되려면 현대 기술로도 수천 명이 적어도 몇십 년을 파야지만 그 안에까지 갈 수 있는 분량이다.

9. 진시황릉의 아름답지 않은 뒷편

사실 전반적으로 모든 황제의 능을 만들 때는 '관련된 사람들은 다 죽여 없애서 넣어버렸다.' 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예컨대 징기스칸도 그렇다. 징기스칸의 무덤을 본 사람, 내지는 황제의 관을 운구할 때 지나가던 보던 사람들은 다 죽였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바로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서 만든 이야기다. 아직은 그것도 고고학적으로 증명되지는 않았다.

그냥 방치하고, 아예 은폐한다고 했었으면 다 죽여서 묻어버렸겠지만, 핵심 기술을 가진 사람들 내지는 문의 위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서 그런 식으로 몰살된 흔적들은 없다.

10. 여전히 발굴중인 진시황릉

지금도 발굴하고 있다. 핵심을 발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 지역들을 발굴하기 때문이다. 고고학도 발굴을 해보면서 자료를 얻어야만 발굴 기술이 발전한다.

진시황릉 내부는 아마 보존이 온전하게 되어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의문점은 진시황릉이 실제로 그렇게까지 완벽하게 사마천의 '사기'에서처럼 화려했을까 싶지는 않다. 규모가 자체가 거대하기 때문에 어떠한 추정도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