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연비 15.8 km/L" 자동차 카탈로그에 적힌, 꿈의 연비. 당신은 이 숫자를 믿고 큰마음 먹고 차를 샀습니다. 하지만, 몇 달을 운전해 봐도 내 차의 실제 연비는 10km/L를 겨우 넘길 뿐입니다.

"내가 운전을 험하게 하나?", "내 차가 불량인가?" 수많은 운전자들이 자책하거나, 차에 문제가 있다고 오해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잘못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애초에, 당신이 믿었던 그 '공인 연비'라는 숫자 자체가, '뻥', 즉 실제 도로 위에서는 결코 달성할 수 없는 '가상의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의 정체: '실험실'의 롤러 위

'이곳', 즉 공인 연비를 측정하는 장소는, 우리가 달리는 실제 도로가 아닙니다. 바로, 외부의 모든 변수가 통제된 '실험실'의 '차대동력계(Chassis Dynamometer)'라는 거대한 롤러 위입니다.
측정 방식:
자동차를 이 거대한 '러닝머신' 위에 올리고, 정해진 시나리오(도심 주행 모드, 고속도로 주행 모드 등)에 따라 가속과 감속을 반복합니다.
이 과정에서 배출된 배기가스를 분석하여, 탄소 배출량을 역으로 계산해 연비를 측정하는 방식입니다.
'공인 연비'가 '뻥'일 수밖에 없는 이유

이처럼, 공인 연비는 '이상적인 실험실 환경'에서 측정되기 때문에, 온갖 변수로 가득한 '현실 세계의 도로'와는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1. '운전 습관'의 배제: 측정은, 급가속, 급제동이 전혀 없는, 가장 이상적인 '연비 운전'을 하는 로봇에 의해 진행됩니다. 사람의 예측 불가능한 운전 습관은 전혀 반영되지 않죠.
2. '교통체증'의 배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연비 최악의 '교통 체증' 상황은 시나리오에 거의 포함되지 않습니다.
3. '에어컨'의 배제: 연비의 가장 큰 적인 '에어컨'이나 '히터'를 끈 상태에서 측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여름과 겨울철에 연비가 뚝 떨어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4. 그 외의 변수들: 도로의 경사, 맞바람의 저항, 타이어의 공기압, 불필요한 짐의 무게 등, 현실의 수많은 변수들이 모두 배제된 채 측정됩니다.
그럼, '공인 연비'는 왜 필요할까?

"이렇게 부정확한데, 왜 굳이 측정하는 거야?" 공인 연비의 진짜 목적은, "당신이 이 차를 타면, 무조건 이 연비가 나옵니다"를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진짜 목적은, '모든 자동차를, 동일하고 공정한 조건 하에서 테스트하여, 소비자들이 각 차량의 상대적인 효율성을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도록'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입니다.
즉, A차의 공인 연비가 15km/L이고 B차가 12km/L라면, 실제 도로에서도 A차가 B차보다 연비가 더 좋을 것이라고 '비교'할 수 있는 '잣대'인 셈이죠.
'공인 연비'는 당신의 차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단지 참고해야 할 '숫자'일 뿐입니다. 실제 연비는, 당신의 운전 습관과 도로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불필요한 배신감과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는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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