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P(옛 태평양물산)가 처음으로 100억원대의 신종자본증권을 내놓는다. 부채비율이 좀처럼 200%대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 와중, 빚임에도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특수 회사채인 신종자본증권의 특성을 활용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다만 감당해야 할 금리가 기존 회사채들보다 높은 6%대인 점은 부담을 안길 것으로 보인다.
2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TP는 이번달 사모채로 130억원짜리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30년 만기에 연 6.20% 금리 조건이다. TP가 신종자본증권을 찍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TP는 이렇게 조달한 자금을 모두 다른 채무 상환에 쓸 계획이다.
이처럼 TP가 신종자본증권으로 기존에 있던 빚을 갚게 되면 부채가 줄어드는 건 물론이고, 도리어 자본이 그만큼 확대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아예 없거나 수십년 이상으로 길어 채권과 주식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상품이라서다. 이런 구조 덕에 회계상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분류돼 발행사는 재무 구조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안 그래도 TP의 부채비율은 계속 200%를 웃돌고 있는 실정이다. 몇 년째 꾸준히 하강 곡선을 그리다 올해 들어 다시 상승으로 돌아섰다. 부채비율은 기업의 재무안정성을 판단하는 데 사용되는 대표적 지표로, 부채를 자기자본으로 나눠 백분율로 표시한 값을 뜻한다. 부채비율이 200%를 넘는다는 건 부채가 자본의 두 배를 초과한다는 얘기다.
TP의 부채비율은 2021년 말까지만 해도 363.9%에 달했다. 그래도 이후 △2022년 말 258.1% △2023년 말 230.5% △2024년 말 211.0% 등으로 떨어져 왔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 말 222.6%로 다시 높아졌다.
발행하는 신종자본증권의 규모를 고려하면 TP는 부채비율을 200% 안팎까지 떨어뜨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상반기 말 부채와 자본에 신종자본증권 금액을 적용해 단순 계산하면 TP의 부채비율은 206.5%까지 낮아진다.
문제는 신종자본증권이 아무리 회계상 자본이라고는 해도, 그 본질이 부채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은 언젠가 갚아야 할 빚이란 얘기다.
오히려 재무상 이점 때문에 신종자본증권은 일반적인 회사채보다 상대적으로 비싼 이자를 물어야 하는 채권이다. TP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올해 상반기 말 기준으로 아직 상환 기일이 돌아오지 않은 사모채들의 금리는 최저 3.81%에서 최고 5.69%다. 이번 신종자본증권처럼 이자율이 6%를 넘는 건은 하나도 없다.
해당 신종자본증권에 최초로 콜옵션이 발동될 수 있는 기한은 2년 뒤로 설정됐다. 시장에서 사실상 이때를 채권 만기로 인식하는 만큼, TP 입장에서는 조만간 상환 압박에 직면할 수 있다.
신종자본증권은 형식상 만기가 한참 남았더라도, 관례상 원금을 조기상환할 수 있도록 정해둔 콜옵션 시기에 발행사가 이를 행사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은 회사채 콜옵션 첫 행사일을 투자금 회수의 날로 인식한다. 이따금 불거지는 대기업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가 채권 시장의 유동성 불안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콜옵션을 미루면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금리가 오르는 이른바 스텝업 조항 때문이다. 실제로 TP의 신종자본증권에는 최초 콜옵션 예정일에 조기상환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스텝업 금리 3.80%가 가산되는 조건이 붙었다. 이렇게 되면 이자율은 10.00%로 두 자릿수 대가 된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신종자본증권은 주로 부채비율 등 재무 건전성 지표 관리를 위해 발행된다"며 "다만 발행사가 콜옵션 등 조건을 시장의 기대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회사 전반에 대한 신용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적정 규모를 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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