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하는 걸크러시… ‘마지막 해녀’의 삶 담다

이정우 기자 2024. 10. 7. 09:2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OTT ‘마지막 해녀들’ 부산영화제서 조명
한국계 미국인 수 킴 감독 다큐
“어릴적 만난 해녀 집단에 매료
‘亞 최초 일하는 여성’ 상징도”
73세 해녀 “바다는 천국이에요”
‘해양 오염 더이상 안돼’ 투쟁도
기쁨·슬픔·불안 그대로 보여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애플TV+ ‘마지막 해녀들’은 사라져 가는 제주 해녀의 숭고함을 기록한다. 애플TV+ 제공
작품은 해녀들의 눈으로 황폐해진 바다를 보여준다. 애플TV+ 제공

“옛날엔 해녀란 직업이 너무 천해서 고생했는데 유네스코(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도 되고 너무 반갑습니다.”(해녀 강주화) / “바다는 천국이에요. 에어로빅도 하죠. 돈도 벌죠. 다시 태어나도 물질할 거예요.”(해녀 현인홍)

먹고 살길이 막막해 여성들이 숨을 참고 바다에 뛰어들었던 게 시작이었다. 땀을 아무리 뻘뻘 흘리며 고생해도 제자리걸음이었던 밭일에 비해 소라, 전복이 곳곳에 파묻혀 있고, 문어가 둥둥 떠다니는 바다는 자연이 준 축복이었다. 그런데 기후 위기로 바다는 척박해지고, 젊은 사람들은 더 이상 바다로 뛰어들지 않는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다큐멘터리 영화 ‘마지막 해녀들’(오는 11일 애플TV+ 공개)은 마지막 제주 해녀들의 경이로운 삶의 순간을 담담하게 기록한다.

작품을 연출한 한국계 미국인 수 킴(한국명 김수경) 감독은 8살 때 제주도 여행에서 해녀들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수 킴 감독은 지난 3일 부산 영상산업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해녀는 시끌벅적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걸크러시 집단”이라며 “두려움 없고 우아한 한국의 여성성을 만난 것 같았고, 곧바로 매료됐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은 나이 드신 분들이 힘든 일을 하니까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미디어에서도 그런 서사를 정해두고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며 “내가 본 해녀들은 그들의 일을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한다. 그들이 하는 일의 즐거움과 경이로움을 보여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수 킴 감독이 제주도 해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은 계기는 그로부터 10년 후, 다시 해녀마을을 방문했을 때 만난 84세 해녀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젊은 해녀가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여쭤보니 ‘이게 끝인 것 같아. 우리가 아마도 마지막 세대인 것 같아’라고 답하셨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누군가는 이들을 기록하고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작품은 제주도에서 마지막 명맥을 이어가는 해녀들의 삶을 담았다. 해녀 공동체를 가감 없이 드러내 그들의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불안, 그리고 숨 하나만 참고 바다를 누비는 경이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간담회에 참석한 해녀 현인홍(73) 씨는 “밭에는 뱀도 득실거리고, 땀만 나고 돈도 잘 못 벌었는데, ‘물질’(해녀들의 수중 활동)하면 돈을 벌 수 있었다”며 “밤에 자려고 누우면 소라와 전복이 머릿속에 아른대서 바다에 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물질만 56년 했다는 박인숙(70) 씨도 “어릴 적엔 어머니가 ‘보이는 걸 한 번에 다 캐면 안 된다.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네 숨에 맞게 다녀라’라고 늘 말씀하셨다”며 “바다에 나가는 게 참 신이 났다”고 회상했다.

그렇지만 기후 변화로 황폐해진 바다는 그들에게 위기감을 던진다. 이 과정에서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 해녀들이 단체로 모여 항의하는 투쟁기도 담겼다. 발에 차이던 전복과 소라가 죽어있고, 껍데기만 굴러다닌다.

수 킴 감독

수 킴 감독은 “해녀들이 직접 목도하는 기후 문제와 해양의 변화를 담고 싶었다”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선 강하게 싸워나가야 한다는 해녀들의 의지가 강렬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수 킴 감독은 해녀들이 투쟁하는 이유를 그들의 연대 의식 덕분이라고 짚었다. 수 킴 감독은 “이들은 물속에서 서로를 돌봐주고, 수익도 공평하게 나눈다”며 “해녀들이 환경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는 것도 깨끗한 바다를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이 확대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해녀란 무엇일까. 수 킴 감독은 “사전적 정의로는 자신의 숨만을 가지고 바다 밑으로 내려가서 해양 생물을 채취하는 직업”이라며 “상징적으론 아시아에서 일하는 여성의 첫 세대이자 제주도를 세미 모계 사회로 만드는 데 공헌했다”고 말했다. “여성들의 힘, 권위 신장, 경제적 독립성 등 모든 것을 함의하는 존재입니다.”

올해 부산영화제엔 ‘마지막 해녀들’ 외에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작품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개막작인 넷플릭스 영화 ‘전, 란’은 상업성 짙은 OTT 영화로 늘 독립·예술영화로 막을 열었던 부산영화제로선 이례적 시도란 평가를 받았다. 그밖에 연상호 감독의 ‘지옥 시즌 2’와 사카구치 켄타로 주연 ‘이별, 그 뒤에도’ 등 OTT 작품은 지난해보다 3편 늘어난 9편이 공식 초청됐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