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배민영(예술평론가)
오늘날 어느 지역의 대표성을 찾아 그리는 김주희의 작업은 오히려 이 ‘표상’이 중립적인 차원에 다다랐음을 의미하거나, 적어도 그렇게 기능하게 된다. 이는 역설적으로 개인적 차원의 추억에 머무르지도, 어떤 대단한 자산이 되지도 못한다. 다만 희미해지는 기억을 재확인하거나 박제하듯 ‘현재’에 계속 ‘재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 존재의 의미를 지속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상기(presentment)’라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사진이나 그래픽이 아닌, 전통적 회화적 속성을 극대화하는 유화로 그려진 것과 자신의 색감 또는 중첩된 묘사를 통해 표상적 대상(representative object)임을 강조해온 것을 고려해볼 때, 작가가 추구하는 시간과 감상 주체의 보편성(universality)은 최근 우리에게 부족한 중립성(neutrality)을 하나의 미덕으로 환기한다.
여기서 중립이란 무색무취의 무책임함과는 다른 개념이다. 그것은 마치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누리는 것과 같은 자유로움, 여행을 다녀온 다음엔 그 경험을 앞다투어 말하지 않아도 되는 비경합성을 의미한다. 심지어 랜드마크는 이제 그곳을 직접적으로 가지 않아도 다녀온 사람과 유사한 수준의 감각적 점유가 인정되는 ‘미디어적 공유지’가 되었다. 유튜브만 틀어도 랜드마크를 찍은 4k 영상을 경쾌한 재즈 음악으로 만나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미디어적 첨단화가 일찍이 소설 <유토피아(Utopia)>에서 예견된 것처럼 우리에게 진정한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마크 오제(Marc Augé)와 같은 급진적 인류학자는 무심코 지나치는 ‘비장소(non-places)’에 세계 유명 랜드마크들을 이름 모를 경로들과 함께 묶어 버리기도 했을 정도다. 이렇게 볼 때, 비장소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제시된 ‘인류학적 장소(anthropological places)’라 할 수 있는 랜드마크의 ‘그림’들은 새로운 가치와 친근함을 준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 시대에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대중적 구호가 더욱 설득력을 얻어가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더 이상 관광은 그 자체로 산업화하지 않고, 미디어적으로 재소비되는 과정에서 그 의미를 찾기에, 지구촌 사람들에게는 ‘중립적 표상’이 감각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과거에는 랜드마크가 그 지역을 감각하는 관문 역할을 했다면, 최근에는 오히려 그 감각에 최후의 보루로서 기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주희의 작업들은 그 장소에 대해 직관적이면서도 중첩적인 터치를 통해 현실에 언제나 존재하나 익명적인 환상의 풍경으로서 감정의 개입을 폭 넓게 열어둔다. 즉, 우수에 차 있으면서도 경쾌하고, 회상을 하는 듯하면서도 지금 목도하고 있는 것처럼 그 땅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김주희는 표현의 중첩을 통해 그림이 담아낸 시간의 중첩이 중립적 표상으로 나타나게 하는 의식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김주희가 그려온 풍경은 기존의 장소가 가진 정보의 기능이나 기억의 미화를 넘어 어느덧 '미술'이라는 영역이 갖는 자기 존재 증명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숭례문
거미
꽃과 귤이 있는 풍경
라스베가스
스페인
트램
한강
카파도키아
노트르담 성당
타임스퀘어
타지마할
터미널
트램
김주희 작가
성신여자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과 졸업
<개인전> 갤러리 11회 등 총 31회
아트스페이스H, 갤러리두, 스페이스엄, 갤러리탐, 대안공간눈, 그림손갤러리 등
<단체전> 165회
서울옥션, 화랑미술제, 국회의사당, 63빌딩 스카이 아트뮤지엄, 세종문화회관 등
<아트페어> 화랑미술제, 서울아트쇼, 부산국제아트페어, 아트아시아, 뱅크아트페어, 얼반브레이크, 대구아트페어, 아시아프, 국제공예아트페어, 롯데호텔아트페어 등
<기타>
국립현대미술관 작품소장, 서울시립미술관 SeMA 선정작가, 키미아트 선정작가, 카니발피자 아트상품 콜라보레이션, 마을미술 프로젝트-마음으로 보는 미술 선정작가, 네이버 프로젝트 꽃 createrday4 선정작가
청년타임스 정수연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