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채용해줄게” 임금 중간착취 문제 삼자 업체가 회유했다
<59>지자체 하수처리장 노동자가 노조 탈퇴한 이유
편집자주
간접고용 노동자는 346만 명(2019년). 계속 늘어나고 있죠. 원청이 정한 직접노무비를 용역업체나 파견업체가 노동자에게 다 주지 않고 착복해도 제재할 수 없어서, 이들은 노동시장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받습니다. 국회에 발의된 '중간착취 방지 법안들'은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단 한 번도 논의되지 못한 채 잠자고 있는 상황. 한국일보는 중간착취 문제를 꾸준히 고발합니다.
3년 전쯤, 후배 기자가 남부지역의 한 공공하수처리장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위탁을 받은 업체가 운영하는 곳이죠. 인건비도 모두 세금에서 나옵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가 “업체가 월 125만 원 정도를 착복하고, 월급은 25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던 곳입니다. 노동자들은 시간 외 수당, 야간·휴무일 근무비만 합쳐도 한 달 평균 1인당 95만 원 정도, 1년으로 환산하면 대략 1,100만 원을 넘게 중간착취당한다고 했습니다.
지자체와 계약한 용역 단가에서 별도 책정된 이윤과 관리비를 모두 챙기고도 임금 몫까지 손을 댄다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이 플래카드도 붙이고, 1인 시위도 하면서 원청인 지자체를 압박했지요. 노동자들이 항의도 하고 뉴스 보도도 됐으니 ‘지자체가 감독을 강화해서 이제 좀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다시 연락을 해봤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월 125만 원 임금 중간착취 문제제기 이후
당시 “월 125만 원을 착복당한다”고 호소하던 분의 사정을 수소문했습니다. 그곳 노동자들의 노조 관계자 표인석(가명)씨는 “그분은 아들 채용을 대가로 노조를 탈퇴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수탁업체가 개별적으로 접촉해서 회유했고, 아들도 함께 하수처리장에서 일하는 조건으로 노조를 탈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해당 하수처리장의 용역 노동자는 50명가량이고 그중 13명이 노조원이었는데, 이제 고작 5명 남았다고 하네요. “이전 소장이 조합원들에게 ‘재계약할 때 너 안 쓴다’는 식으로 협박하거나, 금전적으로 회유를 하거나 그랬다고 합니다.”
중간착취를 문제 삼는 목소리도 그렇게 힘을 잃었고 바뀐 것은 없었습니다. 50명이 서로 임금을 얼마를 받는지도 모르고 집계도 안 되니 중간착취를 얼마나 당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업체의 회유에 넘어간 노동자들을 탓할 이유는 없습니다. 꿈쩍 않고 바뀌지 않는 현실 속에서 그나마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택하는 것이니까요.
한 달 4만 원 오른 월급
표씨는 2009년부터 해당 공공하수처리장에서 일했는데, 현재 월급은 세후 310만 원 정도랍니다. 작년에 노조 임금 타결금으로 50만 원(일시금)을 받고, 별도로 연봉은 150만 원 올랐다고 하죠. 한 달에 겨우 10만 원 남짓입니다.
“그나마 노조원이라서 그 정도고요. 노조원이 아닌 친구에게 물어보니 1년에 50만 원 올려줬대요. 한 달에 4만 원 정도 되잖아요.”
지자체가 산정한 원가 산정표를 보면 하수처리장 노동자 임금에 해당하는 직접노무비는 2022년 26억7,500만 원, 2023년 27억6,600만 원, 2024년 28억5,900만 원가량입니다.
“물가 인상을 반영해서 원청(지자체)에서 몇 % 정도씩을 원가에 올려줬어요. 그러면은 업체에서도 그만큼 올려줘야 하잖아요. 전혀 아니에요. 어떤 기준으로 누구를 더 올려주고 누구를 덜 올려주고 이것도 파악이 불가능해요.”
“민간위탁 노동자 임금 확인하라” 가이드라인 무시하는 지자체
표씨는 “2009년부터 일했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지자체에서 내가 제대로 임금을 받고 있는지 확인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지자체가 정부 가이드라인을 어긴 것입니다.
고용노동부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임금 중간착취를 당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통해 권고하고 있습니다. ‘민간위탁 노동자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엔 노무비 전용계좌를 만들고 제대로 지급하는지 파악하도록 돼 있습니다. 하지만 법이 아닌 가이드라인이라 무시하는 지자체가 대부분인 게 현실입니다.
표씨는 말했습니다. “3, 4년 전에 한창 집회하고 그럴 때 (지자체와) 면담 들어가면, ‘우리가 왜 그런 것(지자체 하청 노동자들이 월급을 제대로 받는지)까지 신경 써야 하냐’는 이야기까지 들었어요.”
업체가 ‘연차’로 장난하자 만든 노조인데···
“한 해 기본적으로 연차가 15개 발생하잖아요. 그런데 업체가 ‘연차를 원래 6개 주는데, 일을 잘하고 열심히 하니까 3개 더 줘서 9개 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노무사까지 데리고 와서요.”
노조를 만든 계기를 물었더니 이런 설명이 돌아왔습니다. 연차를 다 쓰지 않으면 수당으로 줘야 하는데, 노동자들을 이런 식으로 속이면 원청에서 주는 수당을 안 주고 착복할 수 있지요. 이 말을 듣고 화가 나서 노조를 만든 게 2017년이었답니다.
처음에 노조원이 3, 4명에 불과하다가 13명까지 늘었지만 지금은 다시 5명으로 줄어든 현실을 보면,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노조 활동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습니다.
“제 이름 보도하지 말아주십시오” 이유는?
취재를 다 마쳤는데, 표씨는 자신의 이름 등을 보도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이전 (용역업체 소속) 소장에 비해서 지금 소장은 괜찮은 편이라고 봐야 돼요. 이전 소장은 고장 나거나 오래돼서 바꾸는 펌프 같은 고철을 팔아서 직원들에게 5만 원씩 주고 나머지는 자기가 챙겼어요. 얼마인지는 정확히 몰라요. 지자체 불용자재를 마음대로 팔아 치운 거죠. 이게 알려져서, 원래 해고될 거였는데 빌다시피 해서 다른 지역으로 갔어요.”
과거 소장에 비해 그나마 지금의 소장은 합리적인 편이라서 지금 문제 제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뜻입니다. 자신들을 보호해줄 법은 존재하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더 나은 관리자가 소중한 것이죠. 중간착취 문제가 보도돼도 지자체와 업체도 꿈쩍 않고, 노조원에 대한 회유·협박만 발생한 상황을 겪었으니까요.
그래서 지역도 감추고 이름도 가명으로 보도하기로 약속했습니다. 특수한 사례도 아니며, 전국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삶입니다.
‘중간착취 방지법’ 입법에 관심 없는 국회,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 착취를 모른 척하는 지자체들 때문에 낙담과 체념을 체득하게 되는 노동자들. 슬프지만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간착취의 지옥도’ 바로가기: 수많은 중간착취 사례와 법 개정 필요성을 보도한 기사들을 볼 수 있습니다. 클릭이 되지 않으면 이 주소 www.hankookilbo.com/Collect/2244 로 검색해 주세요.
이진희 논설위원 ri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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