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그룹이 미래 모빌리티의 핵심 축으로 낙점한 보스턴다이내믹스(BD)는 언제쯤 산업용 로봇시장을 활짝 열어 젖힐까.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두고 산업 현장에 즉시 투입 가능한 실용적 진보가 더디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막대한 인수대금과 유지비용에도 불구하고 산업용으로 진화가 정채돼 있다는 분석이다.
향후 기업공개(IPO)를 기점으로 현대차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동행이 갈림길에 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가족으로 남을지, 기술 확보 및 투자용 자산에 그칠지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기술 진전 부족 왜?
24일 업계와 현대차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현대차가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산업 현장에 투입 가능한 실질적인 기술 업그레이드는 더딘 상태다.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6에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주목을 받으며 대중의 기대감을 높였지만 업계 시각은 다소 냉정하다. 업계 관계자는 "5년 전 유튜브 영상에서 이미 구현됐던 기능들을 지금도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다"며 "산업용으로 의미 있는 업그레이드가 이뤄졌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외부 매출은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현재 매출 구조는 현대차 내부 거래에 기대고 있는 형태로 상업적 자립도가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글, 소프트뱅크 등 쟁쟁한 빅테크와 투자 거물들이 보스턴다이내믹스를 품었다가 손을 뗀 것도 결국 산업용 로봇으로 전환이 더디고 실질적인 수익화가 불투명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 역시 인수 5년이 지난 지금 유사한 고민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기술 개발의 방향성이다. 현대차 내부에서는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술적 행보가 대주주인 현대차의 실용적 니즈와는 거리가 먼 미국 군사 및 전략적 로드맵에 맞춰져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국 정부는 현대차가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하기 이전부터 고급 로봇 기술을 군사적으로 활용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현대차는 과거 협약에 따라 이와 같은 군사용 로봇 개발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상황은 과거 체결된 협약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현대차는 2021년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 당시 펜타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한국 국방부를 통해 "범용 로봇을 무기화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제출해야 했다. 그러나 이 서약은 역설적으로 현대차의 기술 주권을 제한하는 안보적 족쇄가 됐다. 아틀라스를 비롯한 핵심 로봇 기술이 미국 국가 안보 기술로 분류되면서 미국 외 지역에서의 생산이 계약상 원천 봉쇄된 것이다. 대주주이면서도 기술을 자유롭게 이전하거나 생산 거점을 선택할 수 없는, '자금을 투입했지만 통제 권한은 없는' 구조가 고착화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美 국방정책에 밀착한 '로비' 강화
보스턴다이내믹스가 미국 국방 정책과 밀착하는 행보도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한다. 미국 연방상원 공개자료에 따르면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대미 로비 자금으로 24만달러(약 3억3000만원)를 지출했다. 지난해 3분기 지출액인 17만달러 대비 40% 넘게 급증한 수치다.
로비 활동 목적도 '로봇 산업 지원'이라는 포괄적인 분야에 그치지 않는다. 특히 올해 1분기에는 △국방권한법(NDAA) 내 무인 지상 시스템 △휴머노이드 로봇법 △미국 보안 로보틱스법 등 미국의 국방 정책과 밀접하게 연관된 법안들에 대한 로비를 새로 시작했다. 로비 활동 대상 기관도 기존의 국방부(DOD)와 상무부(DOC)를 넘어 국무부(DOS)·국가정보국(ODNI)·연방통신위원회(FCC) 등으로 확대됐다.

이처럼 보스턴다이내믹스는 국방 및 안보 관련 주요 법안과 기관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로비를 전개하며 자사의 기술이 미국 국방력 강화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가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회사가 향후 미국의 국방 및 안보 정책과 긴밀히 결합해 군사적 목적을 포함한 고급 로봇 기술 개발에 집중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산업용 로봇 개발과 상업화 한계
현대차가 이미 독자적인 출구를 준비하고 있다는 정황도 포착된다. 현대차는 최근 아틀라스 생산·양산을 전담할 미국 법인 '로보틱스 아메리카' 신설 계획을 발표했다. 이 법인이 보스턴다이내믹스 아래에 배치될지, 독자법인으로 갈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자회사의 몸집을 키워 IPO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것이 대주주에게 유리한 선택이지만 앞서 언급한 여러 현실적인 장애물이 길을 막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를 현대차가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정리하더라도 생산 인프라와 로봇사업은 자사 품 안에 남길 수 있는 구조를 미리 짜두는 포석으로 읽는다. 실제로 현대차는 그룹 내 로보틱스 랩을 중심으로 공장 물류·조립에 최적화된 실용 로봇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 기술 없이도 자체 플랫폼으로 로보틱스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안전판을 두려는 취지로 해석된댜.
과거 구글과 소프트뱅크가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손에서 놓은 이유도 결국 상업화의 한계였다. 두 회사 모두 기술력에는 탄복했지만 산업용 전환이 더디고 수익화 경로가 보이지 않자 결국 매각을 택했다.
재계 관계자는 "산업용과 개발과 양산이 가시화되지 않는 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업 가치는 시장의 기대를 밑돌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엑시트 타이밍을 잡는 것 자체가 현대차의 새로운 숙제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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