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돌보겠다는 사람들, 왜 막는 거죠 [열한 가지 결혼이야기 ⑦]
‘주여! 동성 커플들에게도 우리와 같은 지옥을 맛보게 하소서.’ 2013년 9월7일 동성 부부인 김조광수·김승환씨가 결혼식을 올리자 ‘한국기혼자협회’에서 재치 있는 문구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하지만 하늘은 이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다. 이들의 혼인신고서는 수리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2014년 5월21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 혼인신고 불수리 불복 신청을 했으나 기각됐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2024년 10월10일, 혼인신고 불수리증을 받은 동성 부부 열한 쌍, 총 스물두 명이 모여 법원에 불복 신청을 하겠다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번 소송에서 승소하면, 앞으로 한국에서도 동성 부부의 법적 지위가 인정받게 된다. 2024년 10월 현재, 동성결혼이 가능한 나라는 전 세계 39개국이다.
〈시사IN〉은 혼인평등소송에 참여하는 원고 열한 쌍 부부의 집을 방문했다. 나이도 직업도 사는 모습도 모두 다른 이들의 집안 풍경은 다채로우면서도 비슷했다. 서로를 돌보고, 일상을 나누고, 때로 다투기도 하지만 결국은 마주 보고 웃고 마는, 지극히 평범한 부부의 모습이었다. 세상의 모든 커플들과 다를 바 없는 이야기들이어서, 이게 기사가 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창구에 앉은 직원이 서류를 건네며 말했다. “결혼 축하드려요.” 혼인신고 불수리통지서를 받아든 김찬영씨(38)와 정규환씨(34)는 눈물을 참았다. “당연히 거부당할 걸 알고 간 거였지만 그 한마디가 참 따뜻했어요. 제도도 제도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결국 이런 게 아닐까···.” 하트 모양에 ‘우리 사랑 영원히’라고 쓰인 촌스러운 조형물도 그냥 지나칠 순 없었다. 지나가던 공무원에게 기념사진을 부탁하고 서로에게 뽀뽀를 했다. 공무원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휴대전화를 돌려주며 당부했다. “SNS에 사진 올리시면 서대문구청 계정도 태그해주세요!”
두 사람은 안도했다. 10년 동안 살아온 정든 동네는 변함없이 두 사람을 환영하고 있었다. 한 시간 전 규환이 찬영에게 장미꽃 열 송이와 편지를 주며 프러포즈를 했던 카페를 지나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맞잡은 손에는 며칠 전 매장 직원들의 환대 속에 산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10주년 이벤트는 성공적이었다.
2014년 인권단체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나이 많은 강아지 흰둥이(17)와 함께 산다. 귀도 들리지 않고 걷는 것도 힘겨워 ‘개모차’를 타고 산책하는 노견을 돌보는 일은 쉽지 않지만, 흰둥이를 통해서 가족의 의미를 자주 곱씹는다. “흰둥이를 돌보느라 집안일에 더 집중하고 밖에서 에너지를 쓰는 일이 줄어드니까 삶은 훨씬 더 만족스러워요(규환).” “저희끼리 ‘한국에서 결혼에 미친 사람은 동성애자밖에 없다’는 농담을 해요. 국가는 그렇게 돌봄을 강조하면서 왜 정작 서로를 돌보겠다는 사람들을 막아서는 걸까요(찬영).”
아직 젊지만, 두 사람은 종종 마지막 순간을 상상하곤 한다. 실제로 주위 친구들 중에 이미 세상을 떠난 이도 있다. “그 친구의 동성 동반자가 장례를 치렀는데, 원가족과 분리된 별개의 추모 자리였어요. 그때 서로 영구적인 보호자가 될 수 있다는 약속 서류 한 장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정말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만드는 게 제도잖아요. 선의가 아니라 제도를 통해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하는 거고요.” 규환이 말했다.
찬영은 이번 혼인평등소송에 참여하면서 오히려 자기 안의 보수성을 발견했다. “나이가 들수록 나의 뿌리를 부정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유교적인 집안에서 자라서 그런지 근본적으로 보수적이고, 가족의 인정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새삼 느꼈어요.” 그는 소장에 이름을 올림으로써 대국민 상대 커밍아웃을 하기 전 다시 한번 가족들에게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알렸다. 10여 년 전 부모님에게 말씀드렸을 때는 “우리 둘만 알고 있겠다”라는 말을 끝으로 두 번 다시 언급된 적 없는 주제였다. 이번에는 곧 결혼을 앞두고 있는 여동생과 매부에게도 솔직히 이야기했다. “사실 아직도 마음이 흔들리기는 해요. 하지만 시간은 빨리 지나가고, 변화는 머지않았으니까 더는 미루면 안 될 것 같아요.”
무엇보다 열한 쌍이 함께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모든 원고인단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두 사람은 또 한번 눈물을 참았다. 규환이 말했다. “결혼은 행복한 일이고, 행복을 막을 이유는 없잖아요.” 그 자리에는 저마다 서로 다른 색의 행복만이 있었다.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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