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유경준 전 통계청장 |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통합이 개혁의 필수 요건
22대 국회 들어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 이번에는 반드시 결실을 보았으면 하는 기대감이 크다. 8월 말에 발표된 윤석열 대통령의 담화문과 뒤를 이어 구체적으로 언급된 정부의 연금 개혁안은 방향성과 내용이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진일보한 것이다. 보험 요율과 소득대체율(평생 평균소득 대비 은퇴 후 받게 될 연금의 비율)만 조정하는 모수개혁뿐만 아니라, 재정 안정에 기여하고 세대 간 형평성을 제고할 수 있는 여러 조치가 병행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해 출산과 군대 크레디트의 확대, 기초연금의 제도 개선 및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활성화를 통한 다층 연금제도가 제시되어 있다.
이 개혁안을 진일보하다 평하는 이유는 지난 36년간 우리나라 연금 개혁의 역사와 연금 개혁에 성공한 선진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확인할 수 있다.
‘폰지사기’ 같은 모습으로 출범한 국민연금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1988년 보험 요율 3%와 소득대체율 70%로 시작해 지금까지 단 두 차례의 개혁만 있었다. 소득대체율의 경우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 때 60%로, 2007년 노무현 대통령 때 2028년까지 40%로, 단계적으로 하향하는 개혁이 단행된 바 있다. 한편, 보험 요율은 초기 입법으로 시차를 두고 9%까지는 인상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난 36년간 아무런 개혁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월 20만원 지급하는 기초연금은 박근혜 대통령 때 도입되었다.
1988년 연금제도 도입 당시 소득대체율 70%를 재정 수지 적자 없이 만족시키는 보험 요율은 3%가 아니라 그 열 배 이상인 30% 이상이었음을 감안할 때 국민연금의 시작은 일종의 폰지사기로 볼 수 있다. 즉 국민연금의 시작은 높은 수익률을 미끼로 미리 빌린 돈을 돌려막다가 결국엔 파산하고 마는 폰지사기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의미다. 다만 국가가 지급을 보장한 것이기 때문에 파산을 면하는 다양한 후속 조치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파산, 즉 연금 고갈을 막기 위해 보험 요율을 인상하는 방안은 국민에게 인기가 없고 국회에서 수정 법안의 통과가 필요하다. 따라서 제대로 된 연금 개혁은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후세대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보험 요율을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하향하거나, 아예 그 구조를 바꾸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성공적인 연금 개혁으로 평가받는 국가들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보험 요율 인상과 소득대체율 하향 그리고 고령화와 경제 상황에 따른 연금 수급 연령 상향과 재정의 자동 안정화 장치를 도입했다. 1998년의 스웨덴, 2000년대 초반의 독일, 2004년의 일본, 2000년대 후반 영국의 개혁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모수개혁뿐만 아니라 구조 개혁으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통합 그리고 기업연금과 개인연금의 활성화를 통한 노후 생활 보장을 병행했다. 개혁 후 이들 4개국 공적연금의 평균 보험 요율은 19.6%이고 실효소득대체율은 36.7%를 기록했다. 같은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각각 9%와 31.2%로 보험 요율 수치가 상대적으로 더 낮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40년 가입 기준으로 소득대체율이 40%이고 보험 요율은 9%이지만, 이마저도 수지 균형을 위해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처럼, 보험 요율이 두 배 이상인 19% 정도로 높아져야 한다는 것이 연금 개혁에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사실이다.
연금 고갈 해결 못 하면 후세대 부담 눈덩이처럼 늘어
그럼 야당의 개혁안은 어떠한가. 지난 문재인 정부 때 논의한 네 가지 개혁안은 구조 개혁안은 아예 없는 안이었고, 현재의 민주당도 유사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다음과 같다.
①1안은 현행 유지: 보험 요율 9%와 소득대체율 40%, ② 2안은 현행 제도를 유지하되 기초연금을 25만원에서 40만원으로 인상, ③ 3안은 보험 요율 12%와 소득대체율 45%, ④ 4안은 보험 요율 13%와 소득대체율 50%.
문재인 정부는 위 네 가지 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1안을 견지했다. 2안인 기초연금을 40만원으로 올리는 안은 윤석열 정부에서 이미 시행 중이며, 금번의 연금 개혁안에서 다시 천명한 내용이기도 하다. 또한 3안과 4안의 보험 요율과 소득대체율을 동시에 올리는 안은 21대 국회에서 당시 야당이 유일하게 주장하던 안이기도 하다. 즉 노후 소득 보장에만 집착하여 3안과 4안의 합성인 보험 요율 13%와 소득대체율 45%를 주장하면서 소위 ‘더 내고 더 받은 안’이라 포장한 바 있다. 이는 국내외 연금 개혁의 역사로 보면 적절하지 못한 포장술이다. 이런 식의 안은 ‘덜 내고 더 많이 받는 안’이라 칭하는 것이 바른 표현일 것이다. 또한 현재 야당이 집권했던 문재인 정부 시절에 하지 못한 안을 현 정부에 떠넘기려는 의도가 있다고 의심되기도 한다.
아무튼 민주당 안처럼 재정 수지 적자를 면치 못하는 안으로 연금 개혁이 이뤄지면 결과는 어떠할까. 후세대가 기금 고갈 후 30% 이상 높은 보험료를 지불하거나 국민연금에 세금을 투여하여 노인 세대를 부양하는 두 가지의 시나리오를 예상할 수 있다. 둘 다 후세대가 부담한다는 면에서는 동일하다.
분명한 것은 노후 소득 보장이 현행 국민연금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는 것이다. 선진국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기초연금과 개인연금, 퇴직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 내지는 통합하는 연금의 중층 구조화를 통해 노후 소득 보장이 달성될 수 있다. 따라서 구조 개혁은 뒷전에 두고 모수개혁만을 주장하면서 노후 소득 보장을 강조하는 지금 야당의 입장은 그 자체가 모순이다.
기초연금, 국민연금과 통합하면 소득대체율 7.4%포인트 상향 가능
돌이켜 보면, 21대 국회에서 여야의 연금 개혁 합의가 무산된 것은 알려진 것처럼 소득대체율 1~2%포인트 차이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의 비협조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통합 등 구조 개혁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진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22대 국회에서 연금 개혁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느냐 여부는 민주당이 집착하는 것처럼 후세대에 독박을 씌우는 안, 즉 전 정부 시절에도 실천하지 못한 안에서 벗어나 실현 가능한 연금 개혁안을 제시하는 것에 달려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선제적으로 국민연금에 세금을 미리 투여하여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여 주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도 세금 투입의 용처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노인 빈곤이나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해 세금이 사용되어야 할 곳은 수익자 부담 원칙이 기본인 현재의 국민연금이 아니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나 기초연금 같은 공적부조제도다. 향후 구조 개혁을 통해 기초연금이 국민연금과 통합되거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내의 생계급여와 구획 정리가 된다면 개혁된 국민연금으로 세금 투입이 당연히 증가하게 될 것이다.
일례로 현재 우리나라 기초연금에는 연간 24조4000억원의 세금이 투입되고 있다. 향후 연금 구조 개혁으로 기초연금이 국민연금과 통합한다면 지금이라도 소득대체율을 당장 7.4%포인트 정도는 높일 수 있다. 그리고 가난한 노인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한다면 세금을 그리 많이 투입하지 않더라도 소득대체율 10%포인트 정도는 쉽게 높일 수 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한국의 국민연금 실효 소득대체율은 40%를 넘게 되어 노인 빈곤은 그만큼 줄고 노후 소득 보장을 가장 효과적으로 향상할 방안이 될 것이다. 따라서 향후 연금 개혁에 있어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하는 최소한의 구조 개혁은 필수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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