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기록 격차 29초에서 7분으로… 한국 마라톤 ‘잃어버린 25년’

일본의 베테랑 마라토너 오사코 스구루(34)가 지난 7일 스페인 발렌시아 국제마라톤에서 42.195㎞를 2시간4분55초에 주파해 일본 신기록을 세웠다. 2021년 스즈키 겐고(30)의 종전 기록(2시간4분56초)을 1초 앞당겼다. 일본 마라톤은 2018년 처음 2시간 5분대에 들어왔고, 3년 뒤엔 2시간 4분대에 진입하는 등 최근 7년 사이 최고 기록을 4번이나 갈아치웠다. 올해 세계 마라톤 랭킹 톱 100에 일본은 남자와 여자 각각 7명이 이름을 올렸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황영조)과 2001년 보스턴 마라톤(이봉주)을 제패했던 한국 마라톤의 현주소는 참담한 지경이다. 한국 마라톤의 ‘기록 시계’는 고장 난 것처럼 2000년에 그대로 멈춰 있다. 그해 2월 이봉주가 도쿄 국제마라톤에서 세운 한국 기록(2시간7분20초)은 25년째 ‘난공불락’으로 남아 있다. 2019년 귀화 선수 오주한(2시간8분42초) 이후로는 2시간10분 벽을 허문 선수가 한 명도 없다. 올해 한국 최고 기록은 박민호(26)가 지난달 인천 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11분58초다. 일본 오사코의 기록과 비교하면 7분 3초 늦다.
남녀노소 구분 없는 ‘러닝 열풍’으로 마라톤 동호인이 1000만명에 육박하고, 해마다 전국에서 수백 개의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이런 가운데 국제 무대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엘리트 마라톤’의 현실이 더욱 초라하게 보인다. 왜 한국 마라톤 선수들의 기량은 갈수록 퇴보하는 것일까.

◇현실에 안주하는 선수들
전문가들은 국내 선수들이 세계 무대가 아닌 ‘국내용 성적’에 매몰된 점을 문제로 꼽는다. 한국 마라톤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은 “마라톤은 단순한 운동”이라며 “선수들의 훈련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전국체전 입상만 하는 수준이어도 높은 계약금과 연봉이 보장되니 힘든 기록 경신에 도전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30년 전엔 국내 실업팀이 10개 안팎이었는데 지금은 91개”라며 “예전엔 기록이 안 나오면 도태됐는데, 지금은 선수는 적고 팀은 너무 많아 진작 그만뒀어야 할 선수도 계속 뛴다”고 했다.
윤여춘 대한육상연맹 특별보좌역은 “선수가 귀하다 보니 고교 시절 적당한 성적만 내도 고액 연봉을 받고 실업팀에 들어가는 기형적인 구조가 고착됐다”고 했다. 기록 경쟁 없이도 고액의 보수가 보장되니 고령 선수들은 은퇴를 미루고, 유망주의 진입이 차단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현장 지도자들은 기록 단축을 유인할 ‘당근’이나 페이스 메이커의 도입을 제안했다. 2010년 아시안게임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지영준 코오롱 코치는 “마라톤은 ‘라이벌’이 있어야 기록이 좋아지는데, 국내에선 그런 경쟁 구도가 실종됐다”며 “기록 경신에 파격적인 보너스를 걸어서라도 선수들의 경쟁심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했다. 양재성 전 대한육상연맹 고문은 “2시간 10분 전후로 뛰는 아프리카 2진급 선수들을 페이스 메이커로 기용해 선수들의 한계를 깨뜨려줘야 한다”고 했다.
◇‘러닝 열풍’을 발전 동력으로
선수들을 지도하는 감독·코치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국가대표 출신 김원식 마라톤 해설위원은 과거 황영조·이봉주를 키워낸 고(故) 정봉수 감독을 언급하며 ‘연구하는 지도자’의 부재를 지적했다. 그는 “정봉수 감독은 혹독한 훈련으로 유명했지만, 동시에 해외 서적과 비디오테이프를 공수해 최신 지도법을 끊임없이 연구한 학구파였다”며 “지금 국내 지도자들을 보면 선수보다 더 고민하고, 헌신하겠다는 자세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양재성 전 고문은 “선수 출신 지도자들이 자신의 현역 시절 노하우만 믿고 후배들을 가르친다”며 “선수와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지식은 180도 다른데, 그런 공부를 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한 러닝 열풍을 마라톤 재도약의 새로운 동력으로 주목했다. 마라톤의 매력을 아는 동호인들이 잠재적인 엘리트 선수의 ‘부모’이자 ‘후원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윤여춘 보좌역은 “2030세대의 러닝 열풍이 후에 자녀 세대에도 전파된다면 황금기를 뛰어넘는 인재가 배출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일본과 같은 유소년 스포츠 활동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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