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마일 슬라이더?' 또 다른 괴물 투수 등장

바야흐로 구속 상승 시대다. 투구 추적이 가능해진 2008년 이후 투수들의 포심 패스트볼 구속은 계속 빨라지고 있다. 2008년 91.9마일이, 올해 94.4마일까지 올라왔다.

구속은 피칭의 전부가 아니다. 100마일이 찍혀도 제구가 동반되지 않으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구속만 앞세우다 사라진 투수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구속이 안겨주는 짜릿함이 있다. 힘의 승부가 중심인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는 타자를 힘으로 압도하길 원한다. 힘으로 제압하기 위해선 구속은 포기할 수 없는 무기다.

올해 메이저리그는 구속에서 충격적인 투수가 나타났다. 밀워키 브루어스 신인 제이콥 미즈로우스키(Misiorowski)다. 미즈로우스키는 구속 하나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심지어 전반기 '5경기'를 뛰고 올스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제이콥 미즈로우스키 (밀워키 SNS)

밀워키
고교 투수는 구속이 정상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체격이 다 발달되기 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천적으로 타고난 힘을 내다본다.

고교 시절 미즈로우스키도 포심 구속이 80마일 후반대였다. 하지만 미즈로우스키에게 흥미를 가진 팀들이 있었다. 탬파베이와 콜로라도, 밀워키가 미즈로우스키의 피칭을 보려고 스카우트를 파견했다.

가장 관심을 보인 팀은 밀워키였다. 담당 스카우트가 상급자에게 미즈로우스키를 상세히 보고했다. 해당 지역을 총괄한 스카우트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변수는 전 세계적으로 창궐한 역병이었다. 2020년 코로나가 퍼지면서 모든 아마추어 리그가 취소됐다. 메이저리그도 단축 시즌으로 진행됐다. 아마추어 선수들은 드래프트 직전에 열리는 시즌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미즈로우스키를 비롯한 드래프트 후보들이 시즌을 치르지 못했다. 각 구단들은 제한된 정보 속에 도박을 걸어야 했다.

밀워키는 여전히 미즈로우스키를 뽑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2020년 드래프트는 5라운드로 축소됐고, 구단들도 수입이 줄면서 자금이 넉넉지 않았다. 이에 미즈로우스키는 프로 진출 대신 주니어 칼리지(2년제)에 진학했다. 그리고, 대학에서 100마일을 찍었다.

밀워키는 대학에 간 미즈로우스키를 계속 지켜봤다. 100마일 투수로 거듭난 미즈로우스키에 대한 확신은 더 강해졌다. 밀워키는 2022년 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권을 미즈로우스키에게 썼다. 계약금 235만 달러는 1라운드에서 뽑은 대학 유격수 에릭 브라운(205만)보다 많았다. 밀워키가 2022년 드래프트에서 가장 정성을 쏟은 선수였다.

한편, 미즈로우스키는 지명 순위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편입할 계획이었다. 미즈로우스키에게 장학금을 약속한 곳은 루이지애나주립대(LSU)였다. 당시 루이지애나주립대 에이스는 폴 스킨스였다. 어쩌면 스킨스와 미즈로우스키의 원투펀치를 접할 수도 있었다.

LSU 원투펀치가 될 수 있었던 (MLB SNS)

데뷔
미즈로우스키에게 거는 밀워키의 기대는 남달랐다. 드래프트에 지명된 2022년, 미즈로우스키는 곧바로 싱글A 경기에 등판했다. 아무리 대학 투수라고 해도 20살이었다. 루키레벨 혹은 하위싱글A부터 겪고 오는 게 일반적이다.

미즈로우스키는 싱글A 두 경기에서 1.2이닝 1실점했다. 피안타는 1개였지만, 사사구가 무려 8개였다. 장단점이 뚜렷했다.

미즈로우스키는 2023년에도 싱글A에서 출발했다. 타자를 몰아붙이는 힘은 대단했다. 포심 최고 구속이 102마일이었다. 슬라이더 역시 좌우타자 가리지 않고 헛스윙을 이끌어냈다. 마이너리그 타자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공이 아니었다.

문제는 제구였다. 불안한 제구가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다. 타자와 싸우기 앞서 자신과의 싸움에 종종 부딪쳤다. 2023-24년 미즈로우스키는 9이닝 당 탈삼진 부문 마이너 통합 선발 1위였다. 피안타율도 1위였다. 그런데 9이닝 당 볼넷 수가 10번째로 많았다. 미즈로우스키가 넘어야 될 적은 자기 자신이었다.

2023-24 마이너 최다 K/9 (40선발)

12.65 - 제이콥 미즈로우스키 (밀워키)
12.23 - 요니엘 쿠렛 (탬파베이)
12.17 - 일버 디아스 (애리조나)

2023-24 마이너 피안타율

.166 - 제이콥 미즈로우스키 (밀워키)
.173 - 요니엘 쿠렛 (탬파베이)
.179 - 이안 시모어 (탬파베이)

*미즈로우스키 9이닝 당 5.44볼넷


비록 마이너에서 제구 난조는 겪었지만, 미즈로우스키의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2024년 트리플A까지 올라온 미즈로우스키는, 지난해 밀워키 마이너 최고 투수로 선정됐다.

올해 미즈로우스키는 트리플A에서 13경기(12선발) 4승2패 평균자책점 2.13을 기록했다. 5월16일 경기에선 최고 구속 103마일을 선보였다. 9이닝 당 볼넷 수도 조금 줄였다(4.4개). 그러자 밀워키는 미즈로우스키의 메이저리그 승격을 결정했다.

미즈로우스키의 유니폼 (밀워키 SNS)

데뷔전 상대는 세인트루이스였다. 미즈로우스키는 5이닝 동안 볼넷 4개를 내줬다. 그러나 안타는 하나도 맞지 않았다.

미즈로우스키는 메이저리그 첫 공을 100.5마일 포심으로 던졌다. 이 공을 필두로, 100마일 공을 14개나 던졌다. 한 경기에서 100마일 공을 미즈로우스키보다 더 많이 던진 밀워키 투수는 2023년 트레버 메길이 유일했다. 2023년 메길은 8월28일 100마일 공 19개, 9월23일 100마일 공 15개를 던졌다(이 기록은 6월21일 미즈로우스키가 29개로 경신한다).

데뷔전 5이닝 노히트 승리를 거둔 미즈로우스키는, 다음 미네소타 원정도 6이닝 2실점 승리를 따냈다. 심지어 미네소타전도 6회까지 노히트였다. 7회 내준 홈런이 미즈로우스키의 메이저리그 첫 피안타였다.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11이닝 노히트'로 출발한 선발 투수는 현대야구 역사상 미즈로우스키가 처음이었다.

올스타
강력한 구위를 갖춘 신인 투수의 등장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다. 처음에 읽기조차 어려웠던 그의 성 미즈로우스키(Misiorowski)는, 그를 상징하는 키워드가 됐다. 별명도 성에 맞춰 '더 미즈(The Miz)'로 지어졌다.

미즈로우스키는 구속적으로 다른 차원에 있다. 100마일 포심뿐만 아니라, 슬라이더 구속도 웬만한 투수들의 포심보다 빨랐다. 데뷔전 슬라이더 32구의 평균 구속은 94.7마일이었다. 7월9일 경기에선 슬라이더 최고 구속이 '97.4마일'까지 나왔다.

100마일 공도 누구보다 쉽게 던졌다. 전반기 미즈로우스키는 5경기 만에 100마일 공 89구를 던졌다. 표본은 적었지만, 이미 선발 투수 중 두 번째로 많았다. 가장 많은 투수는 헌터 그린(신시내티)으로, 그린은 100마일 공의 비중이 전체 13.7%였다. 미즈로우스키의 100마일 공 비중은 16.2%였다.

전반기 선발 100마일 최다 투구 (비중)

134 - 헌터 그린 (13.7%)
89 - 제이콥 미즈로우스키 (16.2%)
11 - 타릭 스쿠벌 (0.6%)
6 - 폴 스킨스 (0.3%)


미즈로우스키는 특화된 구속을 바탕으로 빼어난 피칭을 펼쳤다. 7월 첫 등판 뉴욕 메츠에게 3.2이닝 5실점으로 흔들렸지만, 바로 다음 다저스전에서 6이닝 12K 1실점 승리를 쟁취했다. 미즈로우스키의 투구를 본 투수는 "어떻게 저런 피칭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놀라워했다. 선발 맞대결을 했던 클레이튼 커쇼였다.

미즈로우스키는 상대 투수들로 체급을 키웠다. 데뷔전에서 소니 그레이와 마주한 뒤, 조 라이언과 폴 스킨스, 클레이튼 커쇼 같은 엄청난 투수들과 맞붙었다. 그들에게 밀리지 않고 승리까지 올리면서 단숨에 유명세를 탔다.

미즈로우스키를 향한 찬사들 (밀워키 SNS)

초고속 출세는 뜻밖의 논란도 불러왔다. 미즈로우스키의 피칭을 지켜본 다저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내셔널리그 올스타 투수 명단에 결원이 생기자 대체자로 미즈로우스키를 지목한 것이다. 5경기밖에 나오지 않은 투수가 올스타로 뽑힌 건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반발도 심했다. 특히 필라델피아 선수들이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전반기 꾸준했던 동료들, 크리스토퍼 산체스(8승5패 2.50)와 레인저 수아레스(7승3패 1.94)가 외면받았기 때문이다. 트레이 터너는 비속어까지 쓰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버츠 감독은 "쉬운 결정이었다"고 논란을 일축했다. 애틀랜타 스니커 감독도 "보여주는 경기(It’s an exhibition game)"라고 말하며 미즈로우스키의 올스타 발탁을 옹호했다.

미래
미즈로우스키는 올스타전에 등판했다. 안타 하나를 맞았지만, 실점 없이 이닝을 끝냈다. 올스타전에서도 포심 최고 102.3마일, 슬라이더 최고 98.1마일이 찍혔다. 무시무시한 구속으로 올스타전에 뽑힌 이유를 보여줬다.

미즈로우스키는 올스타 기간에 쉬지 못했다. 소중한 경험을 했지만, 휴식 없이 후반기를 달려야 한다. 그 여파가 후반기 첫 두 경기에선 보였다. 시애틀 원정 3.2이닝, 어제 시카고 컵스전도 4이닝만 소화했다. 두 경기 모두 5이닝을 넘기지 못했다.

투구하는 미즈로우스키 (밀워키 SNS)

미즈로우스키의 포심은 한동안 경쟁력을 가질 것이다. 평균 99.3마일의 포심은 체감 구속이 더 빠르다. 미즈로우스키는 공을 던질 때 최대한 앞으로 끌고 나온다. 평균 익스텐션이 7.5인치다. 가뜩이나 빠른 공을 던지는데, 공이 홈플레이트를 통과하는 거리도 짧다. 그러면서 포심 체감 구속 '101.4마일'이 찍히고 있다.

포심 체감 구속 순위 (250구)

101.6마일 - 메이슨 밀러 (불펜)
101.4마일 - 제이콥 미즈로우스키
101.3마일 - 세스 할보슨 (불펜)
100.1마일 - 아롤디스 채프먼 (불펜)
100.0마일 - 다니엘 팔렌시아 (불펜)


미즈로우스키는 커브와 체인지업도 던진다. 현재까지 성적도 준수하다. 커브 19타수 4안타(.211) 체인지업 10타수 1안타(.100)다. 포심과 슬라이더만큼 의존도가 높진 않았지만, 플러스 구종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미즈로우스키의 과제는 마이너리그 시절과 변함없다. 제구와 건강이다. 이 두 가지가 뒷받침되면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로 도약할 수 있다.

데뷔 첫 7경기 4승1패 평균자책점 2.70.

이 성적은 미즈로우스키가 더 높은 곳을 가기 위한 발판일지도 모른다. 밀워키의 한결같은 믿음이 본격적으로 꽃피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창섭
현 <SPOTV> MLB 해설위원
전 <네이버> MLB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