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프로렌이 가슴팍 로고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

  • 디자이너 개인에 집중한 패션계
  • 꿈을 디자인한 랄프 로렌
  • 개인적 아픔을 반영한 바잘리아
패션쇼는 디자이너나 브랜드 창업자의 철학을 담아내는 그릇 역할을 수행한다. /랄프로렌 공식 유튜브

화려한 조명과 의상, 모델들의 당당한 워킹에 감각적인 음악까지. ‘패션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다. 통상 패션쇼는 한 브랜드의 새 트렌드를 보여주는 자리로 꼽힌다. 패션업계 종사자뿐만 아니라 일반 소비자들도 패션쇼에 주목하는 이유다.

브랜드 전략가나 마케터도 패션쇼를 눈여겨봐야 한다. 패션쇼는 디자이너나 브랜드 창업자의 철학을 담아내는 그릇 역할도 수행하기 때문이다. 요즘 패션 브랜드가 디자이너의 생각을 담아내는 법에 대해 알아봤다.

◇랄프 로렌이 상류 사회를 지향하게 된 이유

지난 23일 MoMA(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랄프 로렌 F/W 패션쇼. /랄프로렌 공식 유튜브

지난 23일 맨해튼 중심가에 있는 MoMA(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랄프 로렌 F/W 패션쇼가 열렸다. 자신의 이름을 전면에 내건 브랜드 창시자 랄프 로렌은 50년 넘게 미국 패션의 선봉에 선 인물로 꼽힌다. “나는 옷이 아닌 꿈을 디자인한다”는 그의 말은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통한다.

이날 랄프 로렌은 블랙과 화이트 계열의 스타일링으로 쇼를 장식했다. 사람들이 동경하는 상류사회의 스타일을 보편화하기 위해 화려함보단 절제된 우아함을 내세운 것이다. 문화예술에 관심 많은 미국 엘리트층이 즐겨 찾는 공간인 MoMA를 쇼 무대로 삼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랄프 로렌(오른쪽)은 50년 넘게 미국 패션의 선봉에 선 인물로 꼽힌다. /랄프로렌 공식홈페이지

상류 사회를 지향하는 랄프 로렌의 취향은 그의 성장 배경과 밀접하게 닿아 있다. 그는 가난한 유대인 이민자 가정 출신이다. 어린 시절부터 동경하던 미국 상류사회의 모습을 옷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그는 의류를 통해 누구나 특권층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소비자에게 선물했다.

◇쇼 취소는 ‘항복’을 의미합니다

큰 화제를 모은 발렌시아가 패션쇼. /발렌시아가 공식 유튜브

랄프 로렌처럼 개인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디자이너가 있는가 하면 국제 정세에 대한 생각을 담은 디자이너도 있다. 큰 화제를 모은 발렌시아가 패션쇼가 대표적이다.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이 쇼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극한의 상황을 연출한 공간에서 모델이 캣워크를 했다. 얇은 옷에 옷깃을 여미는 모델이 있는가 하면 검은 자루를 들고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이도 있었다. 패션을 위한 자리라고 보기 어려웠던 이 쇼의 구성은 발렌시아가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 바잘리아의 메시지를 담은 것이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극한의 상황을 연출한 공간에서 모델이 캣워크를 했다. /발렌시아가 공식 유튜브

조지아 출신인 바잘리아는 1993년 압하지야와 조지아 분쟁으로 난민이 된 경험이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최근 일어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인적 아픔을 이번 패션쇼에서 표현했다. 500석이 넘는 행사장 좌석 위에는 우크라이나 국기를 표현한 티셔츠와 그의 메시지가 적힌 메모가 놓여있었다. 메모에는 “지금 상황에서 패션위크를 하는 것이 어처구니없지만, 쇼 취소는 ‘항복’을 의미하기에 강행한다”고 적혀 있었다.

조지아 출신인 바잘리아는 1993년 압하지야와 조지아 분쟁으로 난민이 된 경험이 있다. /플리커

이처럼 요즘 패션쇼는 단순히 앞으로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디자이너의 색깔, 정신, 가치관을 드러내는 데 적극적인 모습이다. 집단보다는 ‘개인’에 집중하는 사회적 흐름이 전 세계 패션계에도 예외 없이 드러나는 모습이다.

/임수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