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9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 4회까지 단 하나의 안타도 나오지 않던 팽팽한 투수전의 균형을 단번에 무너뜨린 것은 한화 이글스 포수 허인서의 방망이였다. 5회말 최민준의 슬라이더를 받아쳐 좌측 담장 너머로 보낸 투런 홈런은 단순한 선제점이 아니었다. 2015년 조인성 이후 11년간 이어지던 이글스 포수 두 자릿수 홈런 공백을 채운 역사적 한 방이었다. 이글스는 이날 4대 3으로 승리하며 2연승과 함께 5할 승률(25승 25패)을 회복했고, SSG 랜더스는 신세계그룹 구단 인수 이후 최다인 10연패 수렁으로 추락했다.

한화 이글스는 KBO 출범 이래 포수 포지션에서 장거리 포를 겸비한 선수를 찾기가 쉽지 않은 팀으로 분류됐다. 창단 이래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프랜차이즈 포수는 유승안, 이도형, 조인성, 김충민, 신경현, 김상국 등 단 6명에 불과했다. 가장 최근이 2015년 조인성의 11홈런이었으니, 이후 꼭 11년간 이글스 안방에서는 두 자릿수 홈런 포수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허인서는 2022년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 무대에 입성한 4년 차 포수다. 데뷔 초반에는 주로 수비 안정성과 배터리 운영 능력으로 평가받았으나, 2026시즌 들어 타격에서 뚜렷한 도약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5월 한 달간의 행보가 눈에 띈다. 이달에만 8홈런을 쏟아내며 2005년 7월 이도형이 세운 구단 포수 월간 최다 홈런 기록(7개)을 가볍게 넘어섰다. 이 수치는 허인서가 단순히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게 아니라, 구조적으로 타격 기량이 한 단계 올라섰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시즌 전체로 봐도 방향성은 분명하다. 29일 현재 시즌 10홈런은 포수 포지션 기준으로 리그 상위권에 해당하며, 현재 페이스가 유지된다면 1989년 유승안이 세운 이글스 프랜차이즈 포수 시즌 최다 홈런 기록(21홈런)까지 넘볼 수 있는 궤적이다. 단순히 팀 기록을 갈아치우는 수준을 넘어, 리그를 대표하는 공격형 포수로 도약할 가능성을 수치가 뒷받침하고 있다.

한화 팀 전체 흐름도 이 경기와 맞물린다. 29일 이전까지 한화는 24승 25패로 5할 아래에 머물러 있었다. 시즌 초 반짝 상위권에 오르내리다 중반 들어 균형을 잃었고, 5위 자리를 지키면서도 4할대 후반 승률을 벗어나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2연승을 달리며 정확히 5할을 맞춘 이날은 분위기 전환의 분기점이 될 수 있는 경기였다.
경기는 초반부터 긴장감이 흘렀다. 한화 외국인 선발 오웬 화이트와 SSG 우완 최민준이 맞붙으며 4회까지 양 팀 모두 득점판을 비워뒀다. 화이트는 5회 2사까지 무안타 피칭을 이어갔고, 최민준도 4회 1사까지 한화 타선을 꽁꽁 묶었다.
균형이 먼저 깨진 것은 5회말이었다. 선두타자 노시환이 좌중간 안타로 무사 1루 찬스를 만들었고, 타석에 들어선 허인서는 최민준의 4구째 슬라이더를 포착해 비거리 120m의 투런 홈런으로 연결했다. 한화가 2대 0 리드를 잡는 순간이었으며, 허인서에게는 데뷔 첫 두 자릿수 홈런이었다.

SSG는 6회초 박성한의 2루타와 정준재의 중전 적시타로 1점을 만회해 2대 1로 추격했다. 그러나 한화는 같은 이닝 바로 응수했다. 6회말 1사 후 문현빈의 볼넷 출루에 이어 강백호가 구원 등판한 이로운의 체인지업을 잡아 우측 담장을 넘겼다. 시즌 12호 투런 홈런으로 점수 차는 4대 1로 벌어졌다.
SSG는 7회초 2사 후 최지훈의 우중간 3루타와 오태곤의 좌중간 투런 홈런(시즌 6호)으로 4대 3 한 점 차까지 다시 따라붙었다. 9회초에는 에레디아 안타, 채현우 도루, 최지훈 볼넷으로 2사 1·2루 동점 찬스까지 만들었으나 오태곤의 마지막 타구가 유격수 정면 땅볼로 처리되며 경기가 끝났다.
투수 기록에서는 화이트가 7이닝 4피안타 1피홈런 2볼넷 6탈삼진 3실점으로 시즌 2승(1패)을 수확했다. 최고 구속 152km, 총 88구를 소화했다. 8회 박상원이 1이닝 무실점으로 버텼고, 9회 마무리 이민우가 2사 1·2루 위기를 막아내며 시즌 3세이브(2패)를 챙겼다. SSG 선발 최민준은 5이닝 4피안타 1피홈런 5탈삼진 2실점의 내용으로 제 몫을 했으나 타선 지원 부재로 시즌 1승 4패가 됐다. 한화는 25승 25패 리그 5위, SSG는 22승 1무 28패 7위로 경기를 마쳤다.

허인서의 시즌 10호 홈런이 갖는 의미를 기록으로만 읽으면 절반만 보는 것이다. KBO 리그에서 포수는 구조적으로 타격보다 수비와 리드에 가중치가 실리는 포지션이다. 그 때문에 장거리 타격까지 겸비한 포수는 특이치에 가깝고, 팀 타선에서 차지하는 심리적 무게가 다른 포지션과 다르다.
이글스가 11년간 두 자릿수 홈런 포수를 배출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기록 공백이 아니다. 그 기간 한화가 포수 자원에서 공격력보다 수비 안정성을 우선해왔다는 팀 구성의 흐름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허인서는 그 공식을 깨뜨리면서 포수 포지션이 팀 득점 생산에 직접 기여하는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강백호, 노시환과의 중심 타선 시너지 가능성도 이 맥락에서 함께 읽어야 한다.
5월 한 달 8홈런이라는 수치도 예사롭지 않다. 시즌 전체 페이스가 아니라 특정 월에 집중된 폭발력이라는 점에서, 컨디션 정점에서의 생산력이 어느 수준인지를 처음으로 확인한 시즌이 2026년이다. 이 페이스가 6월 이후에도 유지된다면 유승안의 21홈런 기록은 현실적인 목표가 된다.
반대편에 있는 SSG의 상황도 이 경기에서 읽혀야 한다. 신세계그룹 인수 이후 최다 연패를 기록한 것도 모자라, 30일 한 번만 더 지면 전신 SK 와이번스 포함 구단 역대 최다 연패(11연패)와 타이가 된다. 마지막 찬스였던 9회 2사 1·2루에서 오태곤의 타구가 유격수 정면으로 향한 장면은, 연패 중인 팀에서 운까지 빠져나간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투수진이 무너진 게 아니라 타선이 결정적 국면마다 침묵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단기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

30일 한화 선발로는 지난 24일 한미 통산 200승을 달성한 류현진이 등판 예정이다. 한화생명볼파크에는 시즌 24번째 매진이 기록된 1만 7000석이 가득 찬다. 연승 행진, 류현진 선발, 만원 관중이라는 호재가 한꺼번에 겹친 상황에서 한화의 홈 분위기는 올 시즌 들어 가장 달아올라 있다.
허인서의 방망이가 이글스 포수 역사에 새 챕터를 열었다. 11년 전 조인성이 마지막으로 올랐던 두 자릿수 홈런 고지를 밟은 것은 출발점에 불과하다. 유승안의 21홈런 기록까지 남은 홈런은 11개, 시즌은 아직 4개월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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