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썰전] 선수들의 감정 표현

한때 ‘야구팬들이 항상 화나 있는 이유’라는 제목의 유머 영상이 화제를 모은 적이 있었다. 이기든 지든 야구를 보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분노로 가득 찰 수밖에 없다는 게 영상의 요지. 그래서인지 우리는 야구를 보면서 평소보다 상당히 높은 수위(?)의 감정을 표출해 내곤 한다. 하지만 이런 표현을, 직접 야구장에서 뛰는 선수들이 하는 걸 보면 여러분들은 무슨 생각이 드는가? 보는 사람만큼이나 하는 사람도 화가 나는 건 자연스러운 것일 텐데, 유독 자신의 희로애락을 분출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사람들은 참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듯싶다. 이에 이번 ‘더그아웃 썰전’에서는, 야구장에서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자신의 감정을 보여 주는 선수들을 향한 에디터들의 의견을 들어 보기로 했다. (6월 10일 작성)

에디터 김민규 사진 삼성 라이온즈

슬픔 오늘 다뤄 볼 내용은 경기장 속 선수들의 감정 표현에 관한 거예요. 경기가 잘 안 풀렸을 때 욕을 한다거나 장비를 집어 던지는 등 격하게 감정을 표출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에디터분들의 의견을 들어 보고 싶어요.

까칠 전 꼭 야구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자신의 본능이나 감정을 다스릴 줄 알고, 자발적으로 선을 알고 지키는 사회가 성숙하고 이상적이라고 느껴져요. 아마야구나 독립 리그도 아니고 프로야구인데, 어른들이 모인 만큼 남부끄럽지 않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봐요. 사람마다 기준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순간의 감정을 참지 못하고 분출해 버리는 모습이 미성숙해 보이는 건 사실이에요.

소심 고함을 지른다거나 소리 없이 욕설이 나오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겠죠. 근데 간혹 배트를 던지는 등의 행위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으니 자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선수들이 그 순간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관중들도 기분 좋게 경기를 보러 간 건데 괜히 보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장면이잖아요. 백번 양보해서 더그아웃에 들어가서 그런 표현을 하는 건 카메라가 그걸 잡은 게 문제라고 해도, 모두가 볼 수 있는 장소에서 배트로 땅바닥을 내리친다거나 하는 건 지양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까칠 또 우리가 회사 생활을 할 때 짜증이 날 때가 있어도 대놓고 그걸 드러내진 않잖아요. 그렇게 참는 이유는 나로 인해서 주변 사람들이 눈치 볼 수도 있고, 단체 생활인 만큼 분위기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이고요. 회사에서 제 퍼포먼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책상을 막 뒤집어엎을 순 없듯이, 너무 격한 분노는 규제할 순 없어도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불안 격한 감정 표현이 보는 사람에 따라 눈살이 찌푸려질 수도 있지만, 그게 해서는 안 된다거나 나쁘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 행동조차 경기의 일부고, 사실 스포츠라는 게 모든 순간이 이성적일 수는 없는 거잖아요. 희로애락을 비롯해 인간만의 주관적인 영역이 포함됨으로써 스포츠가 완성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대신 타인의 경기력이나 경기 환경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줄 정도라면 막아야겠죠. 이를테면 화가 나서 배트를 쪼갰다면, 그 현장을 직접 치우는 후속 조치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쁨 제 기준에서는 KBO리그가 타 스포츠 리그보다는 경기 중에 발생할 수 있는 행위를 꽤 절제하고 있는 편이라고 보거든요? 당장 사구를 맞히면 타자한테 사과하는 문화가 있을 정도니까요. 근데 이 이상의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까지 지양하자고 하는 건 스포츠 본연의 매력을 반감시킨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아이스하키는 ‘하키 파이트’라는 게 따로 있잖아요. 암묵적으로 선수들의 공격성을 발산할 시간을 공식적으로 주는 판국에, 지금 KBO리그에서 더 세게 행동을 제약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엔 다소 회의적이에요.

부럽 과거 로봇 심판 도입을 두고 설왕설래가 오갔던 게, 스포츠는 결국 인간의 영역이라 거부감이 생겼던 게 제일 큰 원인이었잖아요. 전 그 ‘인간의 영역’에서 가장 주된 요소가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선수들의 희로애락 또한 스포츠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인데, 긍정적인 감정이 담겨 있는 세리머니에 열광하는 것처럼 부정적인 감정이 반영된 표현들도 자연스러운 경기의 일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봐요.

추억 전 표현의 자유는 보장해 줘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이런 식으로 특정 행동이 불편하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자칫 배트 플립 같은 세리머니도 상대가 불편하니까 자제하라는 의견도 수용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어요. 너무 보수적으로만 접근하면 스포츠만의 매력이 점점 없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슬픔 그럼 화내는 게 아니라 우는 건 어때요? 과거보다는 확실히 중계 화면에 선수가 더그아웃에서 우는 장면이 잡히는 빈도가 늘었다는 느낌을 받고 하는데, 야구팬의 시선에서 이런 장면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부럽 욕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요? 혼자 풀이 죽어 있다거나 눈물을 보이는 선수가 화면에 잡히면 미성숙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랬던 선수들이 나중에는 담담하게 플레이하는 선수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야구를 즐기는 방법이라고 보거든요. 또 최근에 임창민 전 선수가 인터뷰한 걸 봤는데, 요즘 선수들이 감정 표현을 풍부하게 하는 게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인 변화 같다고 얘기하더라고요. 모든 감정을 참기엔 1년 동안 경기가 너무 많고, 해소되지 않은 스트레스가 다음 플레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요. 그래서 주변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면 너무 뭐라고 하기보단 다독여 주는 추세고요.

슬픔 실제로 울고 난 다음에 잘하는 선수가 있어서 팬분들은 일종의 ‘반등 시그널’로 보기도 하죠. 근데 우는 모습이 유독 자주 카메라에 잡히는 선수가 몇몇 있잖아요.

불안 아까는 감정 표현을 나쁘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한 터라 이렇게 말하는 게 아이러니한데, 프로선수로서 상습적으로 우는 건 그렇게 보고 싶진 않아요. 한두 번이면 몰라도 본인이 실수할 때마다 운다면 그게 진심으로 분해서 우는 건지, 그냥 우는 게 습관인 건지 분간이 안 돼요. 특히 그 사람들은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로서 연차를 쌓아 가는 거잖아요. 궁극적으로는 프로선수로서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거라고 봐요.

추억 전 오히려 화내는 건 그럴 수 있다고 보이는데, 우는 건 숨기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요. 운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요. 게다가 울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주눅이 들 수 있잖아요. 그러면 될 플레이도 안 되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르고요.

까칠 우는 행위 자체가 문제라기보단 우는 타이밍이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 경기가 끝나고 우는 건 자기 자신에게 분해서 나오는 감정이니까 스스로 추스르면 해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불안 님이 얘기하신 것처럼 경기 도중에 실책하고 눈물을 흘리는 건 팀 분위기 전반을 다운시킬 위험이 있잖아요. 아쉬움을 표현해도 경기가 끝나고 자책하는 선에서 이뤄져야지, 승부가 끝나지 않았는데 눈물부터 흘리는 건 별로예요.

소심 저는 살짝 다른 게, 과거 암흑기를 거친 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선배들이 무서워서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분위기라 괜히 눈치를 보고 움츠러들게 됐대요. 그런 면에서 울기라도 하면서 자신 안에 있는 감정을 쏟아내는 건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봐요. 적정선만 유지한다면 그런 솔직한 표현이 좋은 쪽으로 연결될 여지도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기쁨 개인적으로 경기장에서 눈물이 허락되는 건 팀이 우승하거나, 아쉽게 우승을 못 하거나, 혹은 은퇴할 때뿐이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MLB 같은 리그를 떠올려봤을 때 KBO리그는 확실히 그런 슬픈 감정을 드러내는 빈도가 꽤 잦은 환경이잖아요. 하지만 한평생 운동만 하고 프로까지 온 선수들이 눈물을 흘리는 게 과연 본인들에게 도움이 될까…? 곱씹어 보면 차마 ‘Yes’라고 답할 수가 없어요.

슬픔 마지막으로, 감정 표현을 자제해야 한다는 대표적인 근거인 ‘애들도 보니까’라는 논지는 다들 어떻게 느끼는지도 궁금하네요.

부럽 이건 대체로 욕설 때문에 나오는 얘기겠죠? 근데 야구는 결국 관찰자적인 시점에서 보는 거니까, 내가 잡힐지도 모르는 순간까지 의식해서 욕을 하지 말라는 건 가혹하다고 느껴져요. 사실 요즘 초등학생들이 욕을 더 잘하잖아요. 어린이날처럼 상징적인 날에는 자제하자고 할 수 있겠지만, 통상적으로 144경기 내내 ‘애들도 보니까 욕하지 말자’라고 주장하는 건 무리 같아요.

소심 지금 시대라서 설득력이 떨어지는 얘기가 아닐까 싶어요. 솔직히 미성년자들도 다 ‘오징어게임’을 보고, 콘텐츠 대홍수 시대에 필터링이 사실상 안 되고 있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수위 높은 장면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주느냐로 판단하면 야구는 양호한 거죠. 선수들의 거친 모습이 어린이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승부의 세계에서 선수들이 어떻게 그런 감정을 갖게 됐는지 가르쳐 주는 게 교육상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그런 모습을 아예 안 보여 주기보다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올바르게 감정에 대처하는 법을 지도해 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슬픔 확실히 보는 사람도 화가 나는 게 야구인 만큼, 야구장에서 나오는 원초적인 감정 표현을 둘러싸고 다양한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오늘만큼은 여러분이 보는 야구에서 분노나 슬픔보다 기쁨과 즐거움이 많은 하루가 되길 바라면서, 이번 ‘더그아웃 썰전’도 마칠게요!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6년 183호 (7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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