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어스골퍼] '가오'를 버리면 '타수'가 보인다: 실속 있는 아마추어의 선택

얼마 전 가까운 지인이 치퍼(Chipper)를 구매했습니다. 그린 주변에서 실수가 잦다 보니 내린 선택이었는데, 라운드 한 번 만에 중고로 팔까 고민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동반자들의 핀잔 때문이었습니다. '가오'의 관점에서 보면 치퍼는 용납하기 어려운 클럽이었던 겁니다.

'가오'라는 껍데기, 그 무게에 대하여

'가오'는 일본어 '카오(顔, 얼굴)'에서 온 말로, 우리 식으로 하면 체면이나 허세 섞인 자존심쯤 됩니다. 일본어에서 유래한 표현인 만큼 달가워하지 않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단어를 꺼내 드는 건, 골프장에서 느껴지는 그 특유의 고집스러운 분위기를 설명하기에 딱 맞는 우리말을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골프 용품 시장에서 전 세계 3위를 차지하는 큰 시장입니다. 흥미로운 건 골프 의류만 놓고 보면 한국이 세계 1위라는 통계가 꽤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입니다. 용품 시장도 크지만, '골프만을 위한 옷'을 따로 갖춰 입는 문화가 그만큼 강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역시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 골프 문화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런 체면 문화가 스코어를 갉아먹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장비 선택 하나에도 타인의 시선이 끼어들고, 그 시선 때문에 정작 실속 있는 선택을 놓치는 건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치퍼(Chipper)는 죄가 없다

대표적인 예가 치퍼입니다. 그린 주변에서 퍼터처럼 굴려 붙이도록 설계된 이 클럽은 R&A와 USGA의 규정을 준수하는 한 일반 클럽과 동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합법적인 클럽입니다. 그런데 라운드 중에 꺼내 들면 "그거 치팅 아니야?", "골프를 너무 쉽게 치려는 거 아냐?" 같은 말이 금방 튀어나옵니다.

선수들이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 비공인 클럽 아니냐는 의심을 쉽게 받는 것이죠. 선수들이 치퍼를 쓰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14개의 클럽만으로 치퍼가 하는 샷을 모두 소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연습량과 기술의 숙련도가 다릅니다.

하지만, 아마추어의 현실은 어떤가요. 숏게임은 '잔디밥'에 비례한다는 믿음으로 그저 경험이 쌓이길 기다리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선수들이 수만 번의 연습으로 쌓은 기술을 흉내만 내면서 같은 결과를 기대하는 건 솔직히 모순입니다.

웨지로 생크를 내거나 뒤땅을 쳐서 냉탕 온탕을 오가는 것과, 치퍼로 홀컵 근처에 차분히 붙여 파를 잡아내는 것. 어느 쪽이 더 멋진 골프일까요. 골프의 가장 큰 기쁨은 스코어를 줄이는 것 아닐까요.

판매되고 있는 치퍼의 모습, 그린 주변에서의 플레이에 익숙하지 않은 골퍼에게 치퍼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출처: 캘러웨이 골프 홈페이지>

롱아이언의 저주

장비 선택에서도 가오는 어김없이 끼어듭니다. 3번, 4번 같은 롱아이언 이야기입니다.

투어 선수들이 롱아이언을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을 보면 나도 저렇게 쳐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그 샷 하나를 위해 선수들이 쏟아부은 연습량과 이를 통해 얻어진 기술 수준을 생각하면, 롱아이언은 일반 골퍼에게 결코 쉬운 클럽이 아닙니다.

3번, 4번 아이언을 백에 꽂아두긴 하지만 나무 아래 볼을 쳐내는 용도로만 쓰는 골퍼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제대로 맞았다 싶은 기억 자체가 드문 클럽을 굳이 백에 넣고 다니는 이유가 무엇인지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는 것이죠.

지금은 유틸리티(하이브리드)라는 훌륭한 대안이 있습니다. 롱아이언보다 무게중심이 낮고 넓어 미스에 훨씬 관대하고, 어느 정도 탄도를 확보해 주기 때문에 충분한 비거리를 확보해 줄 수 있는 클럽입니다. 가방에 롱 아이언을 넣고 다니는 모습이 고수의 느낌을 줄 수는 있지만, 실속이라는 측면에서는 손해를 볼 수도 있는 것이죠.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에 하이브리드와 더불어 주목을 받는 클럽이 있습니다. 바로 7번 우드입니다.

7번 우드, 롱아이언의 새로운 대안

페어웨이 우드는 일반 골퍼들에게 계륵과 같은 존재입니다. 긴 거리를 보내기 위해 필요한 클럽이지만, 생각보다 정타가 쉽지 않고 실수도 많이 유발합니다. 3번 우드나 5번 우드는 비교적 많은 선수들과 골퍼들의 선택을 받아왔지만, 그 이상의 로프트를 가진 우드는 스윙 스피드가 낮은 골퍼나 여성 골퍼들만의 클럽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이런 인식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투어 현장부터 달라졌는데요. 몇 년 전만 해도 PGA 투어에서 7번 우드를 쓰는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백에 넣는 선수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습니다. 정상급 선수들이 7번 우드를 선택하면서 '스윙 스피드가 낮은 골퍼들의 클럽'이라는 편견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잘 맞아서가 아니라, 실수해도 덜 나쁘기 때문입니다. 대략 20~22도의 로프트 덕분에 발사각이 높고 그린에 가파르게 떨어져 롤이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헤드가 크고 무게중심이 낮아 미스가 나도 결과가 크게 나쁘지 않고, 러프에서도 어느 정도 안정적인 샷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이브리드 역시 롱아이언의 훌륭한 대안임은 분명하지만, 일부 선수들과 골퍼들 사이에서는 7번 우드를 더 선호하는 흐름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골퍼들의 샷을 분석하는 아르코스(Arccos)가 다양한 핸디캡과 거리대를 놓고 7번 우드와 3번 하이브리드를 비교한 결과, 측정한 경우의 70% 이상에서 7번 우드의 그린 적중률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7번 우드를 쓴다고?"라는 시선이 신경 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투어에서도 이 클럽을 선택하는 선수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러한 시선쯤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선수들처럼 롱아이언을 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마추어 골퍼들에게는 대안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출처: 게티이미지>

골프는 확률의 게임일 수 있다

결국 가오가 지배하는 골프에서 실속을 찾으려면 확률에 주목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확률은 잘 칠 확률이 아니라 실수하지 않을 확률입니다. 열 번 쳐서 한 번 나오는 완벽한 샷을 노리다 나머지 아홉 번을 망치는 것보다, 열 번 중 여덟 번은 큰 실수 없이 넘어갈 수 있는 선택이 스코어를 지킵니다. 골프는 최고의 샷을 만드는 게임이 아니라, 최악의 샷을 줄이는 게임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클럽 구성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내 스코어를 위한 선택인지, 아니면 남의 시선을 의식한 선택을 한 것은 아닌지.

라운드가 끝나고 나면 기억에 남는 건 멋진 폼이 아니라 스코어카드입니다. 골프에서 진짜 가오는 실속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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