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유학갔던 둘째 딸, 동네 떡집을 글로벌 식품 中企로
지난달 25일 경기 파주의 ‘칠갑농산’ 생산공장. 1981년 이능구(81) 회장이 창업한 이 회사는 떡과 면, 수제비가 주력 상품이다. ‘떡 공장’처럼 보이는 이곳을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매일 이곳과 충남 청양 공장에서 뽑는 떡 길이만 60㎞다. 면과 수제비 생산량은 별도다. 이렇게 만든 제품 450여 가지는 미국·중국·영국·독일·말레이시아·아르헨티나 등 30국에 수출되고 있다. 지난해 수출만 563만달러(약 75억원)를 기록했다.
국내에서 열째로 면 제품을 가장 많이 판 업체이기도 하다. 이 회사 앞에 이름을 올린 곳은 불닭볶음면의 삼양, 신라면의 농심, 진라면의 오뚜기 같은 대기업이다. 더욱 재밌는 점은 이 회사의 CEO다. 올해 49세의 ‘2세 경영인’인 이영주 대표. 미국 회계사 출신인 그는 글로벌 회계법인 KPMG, ‘바비 인형’으로 알려진 장난감 제조업체 마텔을 다니며 9년간 미국에서 직장 생활도 했다. 화려한 이력을 가진 그가 중소기업 ‘칠갑농산’을 이끌게 된 이야기를 들어봤다.
◇美 KPMG·마텔 9년 다니다 귀국
이 대표는 중학생 때는 ‘돈을 벌겠다’며 인문계고 대신에 전문계고(상업고)에 진학하려고도 했다. 아버지 이 회장의 만류로 결국 일반고에 진학한 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1996년 미국으로 떠났고, 미국 사우스이스턴루이지애나대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이 대표는 “처음 미국으로 출국할 때 아버지가 공항에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반대가 심했다”며 “지원 한 푼 없이 대학 때 모아둔 돈과 장학금으로 근근이 생활했다”고 했다.
MBA 과정을 마치고 회계학 석사를 딴 그는 1999년 미국 회계사가 됐고, 영주권까지 받았다. 이를 발판으로 글로벌 회계법인인 KPMG와 마텔에 다니며 내부 감사와 회계 업무를 주로 맡았다.
그러던 중 9년간의 미국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 길에 올랐다. ‘월급쟁이’가 아니라 내 사업을 해보고 싶었다. 창업 아이템을 찾던 중 30년간 아버지가 운영하던 칠갑농산 공장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 중소기업의 열악한 운영 시스템 등이 한눈에 들어왔고, “이를 혁신하면 희망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칠갑농산은 스마트폰 시대에도 이메일도 아닌 종이팩스를 썼고, 컴퓨터에는 십수 년 전에나 쓰던 ‘MS도스’가 깔려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재고와 물류 관리도 엉망이었다. “아버지 공장을 물려받을 생각이 없었지만 지켜보기만 할 상황이 아니었다”며 아버지 회사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답사 또 답사, 발로 뛰며 배웠다
3년간 상무로 일하다가 2012년 대표 자리에 오른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재고’였다. 포장된 떡과 면이 30일씩 쌓여 버려지는 일이 잦았고, 다른 창고에선 재고가 모자라 공급을 못하기도 했다. 어떤 상품이 어느 지점에서 인기가 많은지 전혀 알지 못해 생긴 일이었다. 급기야 대전, 원주, 부산 등 전국에 퍼져 있던 냉동창고와 영업소를 돌아다니며 직접 재고를 확인하기까지 했다.
2년 만에 경기 고양 본사와 이천의 물류센터 두 곳으로 물류 체계를 단순화해 관리 비용을 줄였다. 거래처들의 예상 수요를 취합해 예측한 수량만큼 만들어 어떻게든 소진해내는 체계까지 만들었다. 재고는 열흘 이상 쌓이는 법이 없었고, 2009년 280억원 수준이던 매출액은 지난해 918억원을 기록했다.
재고 상황이 안정되자 ‘자체 브랜드’ 개발에도 나섰다. 지금도 이 대표 부녀는 직접 매년 20~30개씩 신제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 전체 제품 수만 450개가 넘는다. 이 대표는 “면과 떡, 소스 모두 직접 개발하니 이마트나 롯데마트에서도 제품 개발 제의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브랜드 종류만 넓힌 것은 아니다. 제품 품질 향상에도 힘을 쏟았다. 칠갑농산은 경쟁사와 달리 창업 당시부터 제품을 뜨거운 바람에 말리지 않고, 실외에 널어 자연 건조하는 방식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계절·기온 등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는 단점이 있었다. 이 대표는 온·습도를 자동 조절하는 장치를 실내 건조장에 설치하면서, 2016년 국내 최초로 자연 건조 방식으로 해썹(HACCP) 인증을 받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들은 실제 수출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떡국 떡, 들깨칼국수 컵 제품 등을 만들자 미국·중국·영국 등 30국에서 주문이 밀려들었다. 2009년만 해도 10억원 남짓하던 수출액은 2019년 30억원을 넘겼고, 지난해 75억원에 달할 만큼 늘었다. 코로나 기간에도 수출 규모가 꾸준히 늘었다. 그는 “수출도 아직은 한인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앞으로 코스트코나 월마트에 납품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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