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에 기름 낀…” 원로 야구인의 질책 잊지 않았나

요코하마의 씁쓸한 기억

그날 요코하마였다.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이다. 상대는 도미니카공화국이었다. (2021년 8월 7일)

4점을 먼저 잃었다. 처절한 추격이 시작된다. 2-5로 뒤진 5회 말이다. 기회가 왔다. 안타를 집중시키며 주자를 모았다. 상대가 흔들린다. 실책, 폭투가 속출한다. 허점을 놓치지 않았다. 일거에 4점을 뽑았다. 전세가 뒤집혔다.

이후는 몸부림이다. 6-5를 지켜야 한다. 조상우가 6, 7회를 막아냈다. 그리고 8회. 달 감독이 오승환을 올렸다. 그러나 이게 화를 불렀다. 돌부처가 무너졌다. 2점 홈런을 포함해 5점을 한꺼번에 잃었다. 순식간에 6-10이 됐다. 치명적인 스코어다.

이 때였다. 중계 화면에 덕아웃이 클로즈업 된다. 심드렁한 강백호의 모습이다. 껌을 질겅질겅 씹고 있다. 이를 본 해설자가 개탄한다. 박찬호의 멘트다. “강백호의 모습이 잠깐 보였는데요. 안됩니다. 지더라도 보여줘서는 안 되는 모습입니다. 계속해서 미친 듯이 파이팅 해야 합니다. 끝까지 가야 합니다.”

여론의 질타가 쏟아졌다. 실망, 원망, 꾸짖음이 빗발친다. 며칠 뒤 본인의 사과다. “충분히 지적 받을 행동이었다. 신중하지 못했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허탈하고 아쉬워서 멍한 모습이 나왔다. 나로 인해 (대표팀의) 이미지가 안 좋아졌다. 너무 죄송스럽다. 한 사람으로서 팬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KBS 중계화면 캡처

전국을 뒤덮은 “대쓰요”

프로야구 인기는 부침을 거듭했다. 1990년대 중반이 첫번째 전성기다. ‘신바람’ LG가 중심에 있었다. 300만(1990년), 400만(1993년), 500만(1995년)을 거푸 돌파했다. 트윈스는 사상 최초로 평균 관중 2만명(1993년)을 넘어섰다. LG-해태 전 때는 잠실 일대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빠르게 식었다. IMF를 기점으로 내리막이 뚜렷했다. 2000~2004년까지 5년 연속 200만대에서 맴돌았다. 2002 월드컵, 엘롯기의 부진 등이 겹쳤다.

어렵게 재도약을 이뤘다. 국제대회의 성과 덕분이다. 2006년과 2009년. 두 차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선전했다. 종주국 미국을 이겼다. ML 올스타나 다름없는 라인업을 거뜬히 압도했다. 사무라이 재팬을 몇 번이나 무너트렸다. 분을 삭이는 이치로의 표정이 화면 가득히 잡혔다. 마운드에 태극기가 꽂혔다.

베이징올림픽으로 열기는 폭발했다. “돼쓰요”가 전국에 메아리쳤다. “우익수 뒤로 갑니다. 뒤로, 뒤로, 뒤로. 이나바, 이나바…. 넘어갔습니다. 이승엽 결국 해냅니다.” MBC 한광섭 캐스터의 절규가 모두를 깨웠다.

이후는 가파른 상승세다. KBO리그는 곧바로 500만을 회복했다(2008년). 내친 김에 700만(2012년)도 넘어섰다. 2016~2018년까지 3년 연속 800만을 기록했다.

하지만 또다시 고비를 맞았다. 이후 감소세가 확연하다. 관중은 줄고, 시청률은 떨어졌다. 여자배구에 밀려 생중계가 취소되기도 한다. 방송사들이 KBO에 손해 배상을 요구하기도 했다(2021년).

직접 원인은 성적이다. 주요 국제대회에서 부진했다. WBC 예선 탈락, 올림픽 메달 실패가 이어졌다. 병역 특례를 놓고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잦은 스캔들이 불거진다. 도박, 음주운전, 방역 위반, 학교폭력 등등. 도덕성의 해이가 실망감을 안겨줬다.

오프시즌 FA금액만 1000억 육박

와중에도 파이는 커졌다. 자유계약 시장은 점점 뜨거워졌다. 다년 계약에 수십억은 당연하다. 100억원이 넘는 거래도 심심치 않다. 한 해에 몇 건 씩이다. 이번 겨울 또 신기록이 나왔다. 152억원짜리 계약서다.

요즘은 비FA 계약이 대세다. 미리 장기간을 찜하는 방식이다. 8년짜리도 등장했다. 시장 크기도 어마어마하다. FA, 비FA, 퓨처스 FA. 투입된 금액만 1000억원에 육박한다(991억 6900만원). FA 재벌이라는 말도 생겼다.

물론 뭐랄 수 없다. 시장은 유기체다. 스스로 돌아간다. 규제 안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수요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잘 해서 많이 준다는데. 열심히 해서 보상받는데.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살펴야 할 지점이 있다. 공감과 납득의 영역이다.

리그는 팬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들은 곧 소비자다. 시장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런 관점이다. 과연 만족할 품질이냐는 문제가 남는다. 안에서야 비교 대상이 애매하다. 그런데 집 밖에만 나가면 움츠러든다. 힘 한 번 못 쓰고 넘어진다. 그런 리그에 매력을 느낄 리 없다. 경쟁력이 유지될 리 없다.

잊지 말아야 할 원로의 개탄

그 무렵이다. 2021년 여름 말이다. 그러니까 대표팀 막내가 껌 때문에 질타의 대상이 된 즈음이다. 올림픽 메달이 좌절됐다. 6개국 중에 3등도 못했다. 보다 못한 원로 야구인이 이렇게 꾸짖었다. 김응룡 전 감독의 말이다.

“도쿄올림픽 경기를 보다가 가슴이 매우 아팠다. 팬들이 많이 실망했을 것이다. 우리가 미국이나 일본과 실력 차이가 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동안은 정신력으로 이를 악물면서 했다. 그런데 이젠 그런 모습이 사라진 것 같다. 선수들과 지도자,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많은 반성을 해야 한다. (중략) 선수들이 제대로 뛰었겠나. 배에 기름이 찬 상태에서 뛴 것이나 다름없다.”

다시 도쿄로 간다. 결전을 위한 30명을 추렸다. 그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준엄한 질책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그리고 그걸 입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