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기후위기] 인류가 만든 '인류세 풍경' 보다

정종오 2024. 9. 16.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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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프레데터’ 인류가 만든 지구 변화와 미래

[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

“기후변화 시대이다.”

“생물종 다양성 실종 시대이다.”

“플라스틱 오염 시대이다.”

“빙하 소실 시대이다.”

“극심하고 심각하고 강도 높은 기후재난 시대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이다.”

“화석연료 시대이다.”

“열대우림 벌채 시대이다.”

다른 정의도 있을 수 있겠는데 ‘기후변화’ ‘다양성 실종’ ‘오염’ ‘대량소비’ ‘화석연료’ ‘벌채’ 등 이 시대를 정의하는 관련 키워드를 만든 주인공은 인류이다.

지금은 지질 시대로 보면 홀로세이다. 홀로세는 여러 지질 시대 중 하나로 이른바 인류에게는 ‘골디락스(goldilocks)’였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춥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가 내리쬐는, 인류에게는 최적의 시대를 말한다.

파키스탄에 대홍수가 발생했을 때 피해 어린이들이 피난처에서 거친 음식을 먹고 있다. 기후위기는 앞으로 미래 세대들에 치명적 상황을 만들 것이란 경고가 나오고 있다. [사진=AP/ 뉴시스]

46억년 지구 역사 동안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치면서 혹독한 날씨 속에 인류는 계속 이동하고 움직였다. 마침내 홀로세 시대의 ‘골디락스’를 만나면서 한곳에 정착한다. 이후 과학기술을 등에 업은 경제개발 등이 합쳐지면서 세상은 급격하게 변한다.

이 지질 시대가 이젠 변하고 있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지구의 주인공이 된 인류는 거침이 없었다. 자연은 인류를 위해 존재한다는 집념에 사로잡혔다. 그들만의 야생 터전에서 생존해 오던 생물종을 사로잡아 사육하기에 이른다.

홀로세 시대에 더는 인류에게 도전하는 생명체도, 위협하는 존재도 없었다. 인류는 프레데터(Predator, 포식자)가 됐다. 지금 인류는 위기에 처해 있다. 자연은 파괴되고, 기후는 변하고, 생명체는 다양성을 잃어가고, 얼음은 사라지고, 산림은 벌채되고 있다.

플라스틱 오염으로 전 세계 바다가 고통받고 있다. 미세 플라스틱은 먹이사슬을 통해 인류에게 다시 돌아오고 있다. [사진=세계자연기금(WWF)]

날씨도 ‘적당한 온도(온탕)’가 아닌 너무 뜨겁거나(열탕), 너무 추운(냉탕) 상태로 변했다. 기후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무엇보다 이 변화는 수천~수만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 게 아니란 점에서 충격은 더 크다. 200여년에 걸친 짧은 시간에 급격한 변화를 맞았다.

미국 항공우주청(NASA) 기후변화 관련 자료를 보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인간 활동으로 인해 200년이 채 안 되는 기간 50%나 증가했다. 이 같은 가파른 속도는 지구 46억년 역사상 찾아볼 수 없는 사례이다.

지금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홀로세가 아닌 ‘인류세’에 진입했다고 주장한다.

박범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류세연구센터장은 “인류는 지구 역사 중 홀로세에 번성하기 시작해 지배 생물종으로 떠올랐고 이제 인류가 지구의 미래에 직접적 영향을 주고 있다”며 “‘인류세’는 현재 인류가 스스로 초래한 기후와 환경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음을 강조하는 시대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남극의 '켐벨빙하 최전선'. 남북극을 비롯해 그린란드 빙상, 빙하, 바다얼음이 지구 가열화로 급격히 줄고 있다. [사진=극지연구소(이승준)]

인류세 도입 결정 여부는 2024년 3월 초 최종 부결됐다. 인류세실무단이 최종 제안서(제안된 표준층서: 캐나다 크로퍼드 호수의 1950년 지층)를 제출했고 국제지질과학연맹 산하 제4기층서위원회는 올해 2월 초부터 약 6주 동안 인류세 관련 논의와 표결을 진행했다.

지난 3월 초 제4기층서위원회 위원 66퍼센트의 반대로 인류세 도입을 부결했다. 인류세 도입에 반대한 일부 위원들은 부결했음에도 인류의 지질학적 영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애써 강조했다.

인류세실무단은 캐나다 크로퍼드 호수의 지층을 인류세를 대표하는 것으로 선정한 것은 물론 플루토늄을 주요 표지(마커)로 사용하고 그 시작점을 1950년으로 정했다. 1950년은 이산화탄소 농도 급증 등 변화가 ‘대가속’되던 시대였다.

1985~2018년까지 NASA 인공위성으로 파악한 아마존의 벌채 규모. 초록의 산림지역이 빠르게 파괴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진=NASA]

박 센터장은 “인류세 도입에 대한 국제 전문조직의 인정 여부와 상관없이 인류세라는 개념을 통한 문화사적, 과학사적 고찰은 필요하다”며 “지구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한 현명한 대응책 마련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 센터장은 “지질학계에서도 인류세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며 “지질학적 시대로 고민하기 어렵다는 입장인데 이는 지질학의 경우 지질 시대를 암석에 박혀 있는 변화를 증거로 제시해야 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박 센터장은 “인류는 언제부터 어떤 근거로 자연을 마음껏 쓰고 착취하고 파괴해도 된다고 생각했을까”라는 의문을 던진 뒤 “인간 활동으로 지구가 바뀌었고 그 변화가 매우 커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경까지 왔다는 인식이 인류세라는 용어에 축약돼 있다”고 설명했다.

수천년 동안 이산화탄소 농도는 300ppm을 넘지 않았다. 1911년부터 급증했고 현대 관측이 시작된 1958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24년 7월 현재 426ppm을 기록했다. [사진=NOAA]

KAIST 인류세연구센터는 지난 7년 동안 한국연구재단 지원 등을 받아 관련 연구를 진행해 왔다. 지난 2일 KAIST 대전 본원에서 ‘인류세를 투사하기: 다문학적 접근’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인류세 도입을 위한 여러 노력, 인류세 도입의 근거 등을 담은 ‘인류세 풍경: 우리 곁의 파국들과 희망들’이란 책자 발간 등 여러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가 한국연구재단 지원 7년의 마지막인 인류세연구센터는 앞으로 연구를 계속한다. 글로벌 인문사회 융합 연구로 새로운 지원을 받을 예정이다. 또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연구를 이어갈 예정이다.

박범순 인류세연구센터장은 "‘인류세’는 현재 인류가 스스로 초래한 기후와 환경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음을 강조하는 시대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정종오 기자]

박 센터장은 “국제 네트워크를 통해 안정적 지원을 받고 있으며, 연구는 지속할 것”이라고 전했다. 인류세 도입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인류가 지구 시스템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고,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 자세히 살펴보겠다는 거다.

인류세라는 개념보다 직감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기후변화’ 키워드인 게 사실이라고 박 센터장은 말했다. 올해만 하더라도 불볕더위, 열대야, 9월 무더위 등이 시민 머릿속에 깊이 각인됐다.

얼마 전 헌법재판소는 정부가 2030년까지만 탄소 감축 목표를 세우고 이후 계획이 없는 것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는 미래세대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책임감이 부족하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박 센터장은 “인류세라는 개념은 비단 기후변화에만 국한하지 않는다”며 “기후변화뿐 아니라 생물 다양성 손실, 토양 소실 등 다양한 문제를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를 포함한 생물 다양성, 토양 문제 등 폭넓은 인류세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면 현재의 문제를 탄소중립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기술 낙관론’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센터장은 “생물 다양성 손실과 토양 소실 등은 인간 생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며 “기후변화에 대한 접근도 이젠 ‘강도’에 주목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기후변화로 재난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최근에는 그 강도가 더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폭풍, 폭우, 폭염이 더 강하고 심각하게 우리 인류를 위협할 것이란 분석이다.

박 센터장은 “인류세는 지질 시대의 정의를 넘어선 개념이고 지구 시스템이 변했음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인류세연구센터는 ‘대가속 연구’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류세 ‘대가속’ 그래프를 통해 이 변화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얼마나 급격한 변화가 이어졌는지를 연구하겠다는 것이다. 박 센터장은 “불평등 문제를 포함해 다양한 측면을 고려할 예정”이라며 “글로벌 네트워크와 협력한 관련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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