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천년고찰을 지킨 천년의 숲

동백나무 꽃 피는 시기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크다. 제주도, 부산을 비롯한 남해안 지역에서는 12월이면 피어나지만, 이제 겨우 꽃봉오리를 꿈틀거리며 피어날 채비를 마친 곳이 많다. 아무래도 우거진 동백나무숲에 들어 동백꽃의 진수를 느끼려면 삼월 중순이 지나야 한다.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백나무숲으로는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숲(사진)’을 첫손에 꼽을 만하다. 백련사는 원묘(圓妙)국사 요세(了世·1163~1245)가 이끌었던 고려 후기의 신앙운동 결사체인 백련결사로부터 시작한 천년고찰이다.
천년의 세월을 거치며 절집은 숱한 풍진을 겪었지만, 절집 뒷산의 동백나무숲은 훼손되지 않고 의연하게 남았다.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숲’은 백련사 사적비에도 아름다운 숲이라고 기록돼 있으며, 조선시대 문인들이 최고의 숲으로 예찬한 시문(詩文)도 여럿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오래전부터 널리 알려진 숲이다. 이 숲이 특별한 건 사람의 출입이 자유롭다는 사실이다. 동백꽃의 처연한 낙화를 느낄 수 있을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숲에는 약 1500그루의 동백나무가 있는데, 평균 높이는 7m쯤 되고, 가장 오래된 나무는 300년쯤 돼 보인다. 백련사를 처음 일으킨 시기와 맞지 않아 요세가 심은 나무는 아니다.
그러나 절집 뒷동산 전 지역에 이토록 넓은 구역이 동백나무숲으로 형성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이만큼 큰 숲이 이뤄지려면 요세가 이 절집에 주석하던 때인 800년 전부터 그 역사가 시작됐다고 보아야 한다. 평균 수명이 길지 않은 동백나무는 그때부터 몇 차례의 세대 교체를 거치며 지금에 이르렀다고 보는 게 온당하다.
숲 곳곳에 흩어진 4기의 이름 모를 스님들의 부도탑도 정겹다. 천년 숲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놓인 부도탑은 오래전에 불교 개혁을 주장하며, 용맹정진하던 옛 스님들의 자취를 짚어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숲에 기대어 살아온 사람의 역사가 지어낸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숲이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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