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지난 11월 5일에 원자력추진 잠수함 건조에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이 필요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전문가들이 협정 개정 없이는 원잠 건조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는데, 정부는 어떻게 이런 자신감을 갖게 된 걸까요?
협정 종료와 진수 시점의 완벽한 타이밍
정부 관계자들은 "원잠을 만들어 실전에 투입할 때쯤에는 협정 시한이 종료되기 때문에 핵연료 공급에 제한을 받지 않게 된다"고 밝혔습니다.
이 한 문장에 모든 전략이 담겨 있죠.

원종대 국방부 자원관리실장은 전날 국무회의에서 "2000년대 후반 원잠 건조 단계에 진입한다면, 2030년 중후반엔 선두함 진수가 가능하다"고 보고했습니다.
한국의 자체 우라늄 농축 수준을 20% 미만으로 제한하는 현 한미 원자력 협정은 2015년 6월 15일 발효돼 2035년까지 유효합니다.
협정이 끝나면 정부는 자체적으로 핵연료를 수급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재명 대통령이 이날 조현 외교부장관에게 한미 원자력 협정 종료 시점을 물은 것도 바로 이런 맥락입니다.
이 대통령은 "협정 종료 예정 기간이 언제까지냐"고 물었고, 조 장관은 "10년 남았다"고 답했습니다. 우연이 아닌 정교하게 계산된 타임라인이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직접 확인한 협정의 빈틈
이재명 대통령과 조현 외교부장관의 대화는 더욱 흥미롭습니다.

조 장관이 "원잠이 원자력 협정과는 무관하다. 별도의 것이고 군사용"이라고 하자, 이 대통령은 날카롭게 반문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아는데, 군사용으로 쓰지 않는다고 해도 원자력 협정에 있는 문언 때문에 제약을 받고 있는 것 아니냐. 효력이 지나서 협정이 없어지면 일단 형식적으로 제한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라고 말이죠.
이 질문은 단순한 확인이 아니라 정부의 전략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순간입니다.
협정이 원잠을 직접 규제하지는 않지만, 핵연료 농축 수준 제한이라는 간접적 제약이 존재한다는 것을 대통령이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의미죠.
그리고 그 제약이 2035년에 자동으로 사라진다는 점도 명확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앞서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핵무기를 적재한 잠수함을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디젤 잠수함이 잠항 능력이 떨어져 북한이나 중국 쪽 잠수함 추적 활동에 제한이 있다"며 원잠 추진이 방어용이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군사적 필요성과 국제 협정 준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는 전략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프랑스 바라쿠다급, 20% 미만 저농축 우라늄의 마법
그렇다면 정부는 어떻게 협정 개정 없이 원잠을 건조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걸까요?
핵심은 프랑스 바라쿠다급이 20% 미만의 저농축 우라늄(LEU)을 연료로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한미 원자력 협정이 정확히 20% 미만으로 농축 수준을 제한하고 있는데, 바라쿠다급은 이 범위 내에서 작동하도록 설계된 세계 유일의 최신예 원잠이죠.
미국의 버지니아급이나 영국의 아스튜트급은 90% 이상의 고농축우라늄(HEU)을 사용합니다.
이런 잠수함을 만들려면 협정을 전면 개정하거나 미국에서 핵연료를 직접 공급받아야 하죠.
하지만 바라쿠다급 방식을 채택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건조 기간 동안에는 협정 테두리 안에서 작업하고, 2035년 협정 종료 후 실전 배치 단계에서는 핵연료 수급에 완전한 자율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정부 관계자가 "핵연료 공급 자체는 문제가 안 되는 것"이라며 "한미 회담 이튿날 트럼프 대통령이 건조를 승인했다고 밝힌 만큼, 원잠을 위한 제반 사항은 다 갖춰졌다고 본다"고 말한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라쿠다급이라는 완벽한 해법을 찾았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도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이죠.
5,400톤급, 한국에 딱 맞는 설계
프랑스 바라쿠다급의 배수량 5,400톤은 한국 해군에게 최적의 크기입니다.
현재 운용 중인 도산안창호급이 3,600톤이니 약 50% 큰 규모지만, 미국 버지니아급 7,800톤이나 러시아 야센급 13,800톤보다는 훨씬 현실적이죠.

한국 주변 해역은 동해, 서해, 남해로 구성된 반폐쇄 해역입니다. 북한 잠수함을 추적하고 중국의 해양 활동을 감시하는 데는 지나치게 큰 잠수함보다 기동성 있는 중형급이 더 효과적입니다.
한국 조선소들도 이미 3,600톤급 잠수함 건조 경험이 있어 5,400톤급으로의 스케일업이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필리조선소에서 원잠을 건조한다"고 언급했지만, 정부 관계자는 "필리조선소에서 원잠 전체를 만드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하다는 것을 양국이 알고 있기 때문에, 팩트시트나 MOU에 장소가 건조 조건으로 적시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피트 헤그세스 미 전쟁부 장관이 이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도 '선박의 공동 생산'에 방점을 찍었을 뿐, 장소에 대해선 따로 못 박지 않았습니다.
이는 원자로는 프랑스나 미국의 기술 지원을 받고, 선체는 한국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저농축 우라튬 원자로, 기술적 과제는 극복 가능하다
저농축 우라늄을 사용하는 원자로에도 과제는 있습니다.
고농축우라늄을 쓰는 미국식 원자로보다 출력 밀도가 낮고, 연료 교체 주기가 짧습니다.
미국 원잠은 30년 이상 연료 교체 없이 운용할 수 있지만, 바라쿠다급은 약 10년마다 연료를 교체해야 하죠.

이는 운용 비용 증가와 정비 기간 확대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 재래식 잠수함의 정기 정비와 배터리 교체 경험이 풍부합니다.
10년 주기 연료 교체는 기존 정비 체계에 통합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LEU 기술이 핵확산 우려를 최소화해 국제사회의 비판을 피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방어용을 강조한 것도, LEU 기반 원잠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내에서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바라쿠다급의 강점은 조용한 작동 소음에도 있습니다. 프랑스는 펌프젯 추진 방식과 첨단 소음 감소 기술로 바라쿠다급을 세계에서 가장 조용한 원잠 중 하나로 만들었죠.
수개월간 연속 잠항이 가능하고 30노트 이상의 수중 속력을 내는 이 잠수함이 한국 해군에 배치되면, 북한과 중국의 잠수함을 지속적으로 추적할 수 있게 됩니다.
정부가 협정 개정 없이도 원잠 건조가 가능하다고 자신하는 것은, 바라쿠다급이라는 완벽한 해법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2030년대 후반, 한국 최초의 원잠이 동해에 모습을 드러낼 그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