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속 고래가 되어볼까…수영 못해도 괜찮아 ‘프리다이빙’ [ESC]

한겨레 2024. 10. 12. 08: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커버스토리 프리다이빙 하는 사람들
필리빈 세부 모알보알 바다에서 이준호씨가 바다거북과 함께 수영하는 모습. 이준호 제공

장비 없이 무호흡으로 깊은 바다에서 물질하는 해녀처럼 유영
호흡법, 회복 ‘이퀄라이징’ 등 훈련…“수영과 달리 릴랙스 중요”
“‘내 안’을 들여다보는 스포츠” “육아 스트레스 씻고, 자유 느껴”

“호흡을 스스로 컨트롤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물 위로 올라와 참았던 숨을 내뱉을 때 헐떡이지 말고 여러번에 나눠서 ‘푸’ 하고 소리 내며 호흡하세요.”

지난달 29일 경기도 성남시 성남종합스포츠센터 내 아쿠아라인 수영장. 프리다이빙 강사 이준호(32)씨의 말에 초보 수강생 김주영(43)씨가 귀를 기울였다. 김씨는 올해 초 ‘2024년 이루고 싶은 버킷 리스트’에 프리다이빙을 적었다. ‘깊은 물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고 싶다’라는 문구와 함께였다. “프리다이빙은 번거로운 장비 없이, 오직 내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물속에서 헤엄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주변에도 프리다이빙을 버킷 리스트에 올린 사람들이 많아요. 날이 쌀쌀해지면서 더 늦기 전에 올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왔습니다.”

프리다이빙은 말 그대로 ‘자유롭게’ 물속에서 노니는 스포츠다. 장비 없이 오직 스스로의 호흡에 의존해 물속 깊은 곳까지 내려가 자유롭게 수영한다. 물 표면에 떠서 호흡관이 연결된 마스크를 끼고 물놀이하는 스노클링이나, 산소통의 도움을 얻어 깊은 곳까지 내려가는 스쿠버다이빙과는 다르다. 오히려 숨을 참고 별다른 호흡 장치 없이 바다 깊은 곳까지 내려가 물질하는 해녀들의 방식과 비슷하다.

지난달 29일 경기도 성남시 성남종합스포츠센터 내 아쿠아라인 수영장에서 초보 수강생 김주영씨가 프리다이빙 강습을 받고 있다. 호흡 훈련을 마친 뒤 줄을 잡고 5m 수심을 내려가는 훈련 중이다. 이준호 제공

“프리다이빙 세상은 아직 여름 성수기”

김씨는 1.5m 가슴 깊이의 수심에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준비 호흡, 모든 숨을 다 내쉬었다가 목 끝까지 최대한 숨을 많이 들이마시는 최종 호흡, 물속에서의 무호흡, 참았던 숨을 뱉어내는 회복 호흡까지 4단계의 호흡법을 배웠다. 1시간 가까이 걸린 호흡법 배우기는 3시간의 수강 시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숨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게 된 뒤에야 비로소 긴 오리발을 신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김씨는 수심 5m 구간으로 이동해 줄을 잡고 수영장 바닥까지 서서히 내려갔다. 깊은 곳으로 숨을 참고 내려가는 것에 익숙해진 뒤에는 줄을 잡지 않고 바닥까지 내려가 다시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호흡이 너무 어려웠어요. 무의식적으로 해오던 호흡이 원래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수영이 아니라 요가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데 배운 대로 숨을 머금고 물속에서 헤엄치는데, 힘든 연습 과정이 싹 다 씻겨나갔어요. 바닷속 돌고래나 거북들이 이런 기분일까요? 정말 자유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프리다이빙 초보 수강생 김주영씨가 숨을 참은 채 줄을 잡고 물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 이준호 제공

올해로 프리다이빙 경력 6년차인 프리랜서 강사 이준호씨 역시 ‘인생 버킷 리스트’를 적어본 게 프리다이빙의 출발점이 됐다. 게임 회사에 근무하는 직장인이기도 한 이씨는 ‘바다에서 돌고래와 수영하기’라는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프리다이빙을 시작했다.

“신혼여행지에서 돌고래와 멋지게 수영하려는 꿈을 갖고 프리다이빙을 배웠는데 하필 코로나 때문에 여행이 미뤄진 거예요. 드디어 지난해 12월, 인도양의 모리셔스섬에서 돌고래와 프리다이빙에 성공했습니다. 돌고래에게 고맙다고 했어요. 널 보려고 시작한 프리다이빙 덕분에 삶이 즐거워졌다고요.”

이씨는 무호흡의 상태로 바다를 노닐 때 극한의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했다. 평소 스쿠버다이빙과 스노클링, 프리다이빙을 모두 즐기지만, 그중에서도 프리다이빙이 가장 매력적이라는 게 이씨의 말이다. “스쿠버다이빙은 깊은 바다로 나가 ‘밖’을 살피는 해양스포츠예요. 물고기나, 예쁜 산호 같은 것들을 감상하는 거죠. 프리다이빙은 물 안에서 ‘내 안’을 들여다보는 스포츠예요. 물이 차가워도, 깊어도, 파도가 세도 오롯이 내 호흡에만 집중하는 법을 가장 중요하게 배우기 때문이죠. 덕분에 일상생활에서도 스트레스 받거나 기분이 저기압일 때 그런 상황에서 쉽게 벗어나는 것 같아요.”

프리다이빙이 ‘나를 들여다보는 스포츠’라는 건 물속으로 들어갈수록 더 절실히 느껴진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안정적인 프리다이빙을 위해서는 물속에서 숨을 참는 것만큼이나 수중에서 받은 귀와 몸의 압력(수압)에서 벗어나 회복하는 ‘이퀄라이징’ 과정이 중요하다. 물속에서 코를 막고 소리 내면서 폐의 공기를 끌어올려 얼굴의 빈 공기 공간에 채워주는 과정인데, 이를 배우는 과정에서 개인 편차가 심하다. 단 한시간 만에 익숙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개월을 배워도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있다. “골프나 테니스 같은 운동은 강사가 문제점을 알려주거나 자세를 교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잖아요. 반면 프리다이빙 이퀄라이징은 몸의 컨디션에 예민하게 집중하며 ‘내 비강의 크기가 이 정도는 되는구나’ 하는 식으로 오롯이 혼자 깨닫고 배워가야 해요.”

이씨의 노트는 날이 제법 선선해진 10월에도 수강 예약으로 빼곡했다. 이씨는 “바닷속은 육지보다 한달 정도 계절이 늦게 바뀌기 때문에 프리다이빙 세상은 아직 여름 성수기”라며 “프리다이빙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20대 대학생부터 30대 직장인, 50~60대 가족 단위까지 점차 연령층이 확대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머메이드 프리다이빙’으로 꿈 이뤄”

지난 8월 경기 시흥 파라다이브 수영장에서 김혜미씨가 우산과 인어 복장 등을 갖추고 ‘머메이드 프리다이빙’을 하고 있다. 고고다이브 제공

이씨의 수강생 중에는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오히려 물에 대한 공포가 심한 경우, 부력이 있는 전신 슈트를 입고 자유롭게 헤엄치는 프리다이빙을 통해 물 공포심을 극복하는 경우도 많다. “프리다이빙은 ‘릴랙스’(이완)를 중요시해요. 힘을 빼고 엎드려 호흡하는 과정을 통해 천천히 물에 익숙해지죠. 반면 수영은 힘을 쓰며 계속 움직임을 일으키면서 앞으로 나가는 운동이고요. 수영 영법에 자신이 없다고 해서 물과 친해질 수 없는 건 아니거든요.” 이씨의 말이다.

‘프리다이빙’ 마니아 김혜미(34)씨가 딱 그런 경우다. 김씨는 수영을 배운 적이 없고, 자연히 영법도 전혀 구사할 줄 모른다. 얼마 전, 필리핀 세부로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바다에서 ‘수영을 못해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먼저 프리다이빙을 경험하고는 매력에 푹 빠졌다. 여행지에서 돌아온 5월부터 프리다이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6개월 아이를 키우는 김씨에게는 일주일에 3시간 남짓의 프리다이빙 시간이 삶의 큰 활력소다. “육아 스트레스를 물로 씻어내는 것 같달까요. 엄마로서의 역할도, 나를 찾는 휴대전화 소리에도 그 순간만큼은 다 멀어져서 오직 물속으로 깊이 파고들 때 너무 자유로운 기분이 들어요.”

하지만 그 자유로움 속에서도 여느 스포츠처럼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 역시 필요하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처음에는 숨을 1분 겨우 참았어요. 꾸준히 연습하면서 5초, 10초, 30초씩 늘려왔고 이젠 3분까지도 무호흡으로 수영이 가능해요. 내 한계를 깨는 것 같은 느낌이 들죠.”

지난 6월 필리핀 보홀에서 이준호씨가 속한 프리다이빙 동호회 회원들이 바다에서 프리다이빙을 즐기는 모습. 이준호 제공

실제로 프리다이빙은 무호흡 상태에서 최대 수심에 도달하는 ‘콘스턴트’, 수평으로 최대 거리를 잠영하는 ‘다이내믹’, 물 위에 엎드려 숨을 얼마나 오래 참는지 경쟁하는 ‘스태틱’ 등 그 종류가 많다. 콘스턴트 방식의 수영만 하더라도, 핀을 착용했는지, 보조 줄을 잡고 하강하는지 등에 따라 또 세부적으로 나누어진다.

김씨는 요즘에는 깊은 물속에서 인어복을 입고 헤엄치며 사진도 촬영하는 ‘머메이드 프리다이빙’에 푹 빠져 있다. 물속에서 유영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게 주요한 목표다. “순진하게도 초등학생 때까지 꿈이 인어공주였어요. 꼬리지느러미 옷을 펄럭이며 물속에서 헤엄칠 때 ‘인어공주’ 동화책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죠. 오랜 꿈이 이뤄진 셈이에요.”

김씨는 프리다이빙을 할수록 새로운 목표와 꿈이 생긴다고 한다. 요즘에는 머메이드 프리다이버들의 성지로 꼽히는 말레이시아 셈포르나섬에 방문하는 것을 새 버킷 리스트에 올렸다. “엄마가 멋진 인어옷을 입고 물속에서 자유롭게 수영하는 모습을 언젠가 아이에게 꼭 보여주고 싶어요. 그림책을 통해서나 상상을 통해 그려보던 인어의 모습을 직접 보게 됐을 때 아이가 얼마나 즐거워할지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나요. 물속에서 더 많은 프리다이빙 친구들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장선희 자유기고가

깊고 맑은 바다…바다거북과 인생사진도

국내외 프리다이빙 명소

프리다이빙 강사 이준호씨가 지난달 울릉도 앞바다에서 프리다이빙을 하는 모습. 이준호 제공

프리다이버들은 보통 수심이 깊은 실내 수영장에서 연습 과정을 거친 뒤 바다로 나간다. 물속에서 무호흡과 이퀄라이징, 다이빙 이후의 회복 호흡이 잘되는 경우 바로 바다에 나가서도 문제없이 다이빙을 즐길 수 있다.

국내의 프리다이빙 인기 장소로는 강원도 삼척 장호항과 제주 김녕 세기알해변, 제주 서귀포 앞바다의 문섬 등이 있다. 이들 바다는 비교적 프리다이빙을 즐기기 좋게 물이 깊고 맑아서 국내 다이버들에게 인기 장소로 꼽힌다. 사실 국내 바다는 지형이 험하고, 바닷속 시야도 탁한 편이라 안정적으로 다이빙을 즐기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수온이 따뜻한 6~10월 정도에만 프리다이빙을 할 수 있다는 점도 한계다.

이 때문에 프리다이버들은 주로 국외 다이빙 명소를 찾는다. 국외에서는 필리핀 세부와 보홀이 프리다이빙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프리다이빙에 관심을 갖고 강습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세부 등 국외여행에서 먼저 프리다이빙을 맛보고 본격적으로 찾아오는 이들이다.

필리핀 세부와 보홀의 바다는 날씨가 1년 내내 따뜻하고 물살이 잔잔하고 맑아 초보 프리다이버에게 적합하다. 특히 세부의 오슬롭은 고래상어와 프리다이빙을 하며 인생사진을 남길 수 있는 명소로 알려지며 인기를 끌고 있다. 보홀은 바다거북과 헤엄칠 수 있는 장소인 발리카삭과 카빌라오 등 황홀한 바닷속 풍경을 지닌 곳들이 주요 프리다이빙 포인트로 꼽힌다.

사이판도 프리다이빙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사이판의 면적은 서울의 5분의 1밖에 안 되지만 다이빙 명소가 많다. 거친 파도를 막아주는 아름다운 산호초가 곳곳에 있어 바다가 즐기기 좋게 잔잔하다. 절벽이 깎이면서 생긴 천연 동굴인 ‘그로토’(Grotto)와 태평양전쟁 때 추락한 비행기와 난파선을 볼 수 있는 ‘비(B)-29’ 같은 포인트가 대표적이다. 이들 장소에서는 운이 좋으면 돌고래와 수영을 즐길 수도 있다.

장선희 자유기고가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