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만에 공개 ‘자화상’…오지호 회화의 진수

‘자화상’

오지호와 인상주의 회화의 진수를 만날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된다. 특히 일본 동경미술학교(현 동경예술대학)를 졸업할 무렵 학교 측에 기증했던 ‘자화상’(1931년 작)과 말년 유럽 여행을 하며 그렸던 풍경들, 그리고 가족들 중 화가로 활동하는 이들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의 회화인생이 총망라됐다.

광주·전남에서 김홍식 박근호 김두제가 일본 유학 1세대들인데 두번째로 떠난 장본인이자 서양화단의 거목이며 인상주의 화풍의 개척자로 평가받고 있는 전남 화순 출생 서양화가 오지호(1905∼1982·전 조선대 교수)가 그다.

전남도립미술관(관장 이지호)이 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으로 2025년 오지호 탄생 120주년을 앞두고 ‘오지호와 인상주의:빛의 약동에서 색채로’라는 주제로 마련한 전시가 그것으로, 지난 15일 개막해 오는 2025년 3월 2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오지호의 전 생애를 아우르는 회화작품 100여점을 비롯해 아카이브 100여점, 그의 데드 마스크와 생전에 사용하던 이젤과 팔레트, 작업복 등 유품이 선보인다. 오지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 34점이 기증돼 있는 데 이를 조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근래 오지호에 관한 큰 전시가 없었기에 오지호를 기억하는 미술계 안팎의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이끌어낼 전망이다.

이번 전시 출품작 중 ‘자화상’은 동경미술학교가 졸업해 나갈 때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 기증하고 나가는 문화가 있었기에 거기에 따른 것이지만 오지호의 회화에서 주요 지점에 놓인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두번째로 선보이는 것이어서 의미가 깊다. 당시 동경유학생 43명의 자화상을 모아 서울소재 일본대사관 광보문화원에서 1989년 선보인 바 있다. 그후 35년만에 대중과 만나는 셈이다.

<@1><@2><@3>아울러 오지호 외에 김홍식과 김용준의 동경미술학교 초상화를 포함한 졸업작품 및 미술학교 교수이자 일본의 대표 인상주의 화가인 오카다 사브로스케, 후지시마 다케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또 ‘임금원’이나 ‘남향집’은 주목할 작품들이다. 둘째딸이 등장하는 ‘남향집’은 작가가 광복 전까지 살았던 개성 집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임금원’은 삼성가 개인소유의 작품이어서 이번 전시나들이에서 차지하는 가치가 결코 작지 않다. 이 작품은 하얗게 꽃이 활짝 핀 사과밭을 작은 붓 터치로 실감나게 포착했다. 1930년대 개성 송도 시절에 출간된 한국 최초의 원색화집인 ‘오지호·김주경 2인 화집’에 수록돼 있는 이 작품은 한국의 자연을 인상파 화풍으로 담아내기 위해 짧은 붓 터치 외에 점묘법을 활용, 햇빛에 반짝이는 사과꽃과 연초록 이파리를 표현했으며 평면적 구도를 유지하는 한편, 그림자 부분을 보라색으로 처리했다. 나무의 윤곽선을 강조해 전통 인상파와는 결을 달리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크게 시기별 활동 범위와 특성에 따라 ‘인상주의를 탐색하다’(1920~1945), ‘남도 서양화단을 이끌다’(1946~1970), ‘한국 인상주의를 구현하다’(1971~1982) 등 제3부로 구성됐다.

제1부에는 1920년대 동경예술대학 유학 시절 제작한 작품과 한국 최초 서양화 미술 단체인 ‘녹향회’ 활동, ‘오지호·김주경 2인화집’(1938)에 수록된 ‘처의 상’, ‘임금원’과 1948년 첫 개인전에서 ‘사양’이라는 제목으로 선보였던 ‘남향집’ 등 인상주의 천착기에 제작한 대표적인 작품들이 망라됐다.

<@4><@5><@6>제2부에는 해방 이후 산 풍경과 항구·배를 그린 바다 풍경, 꽃과 식물, 열대어 등 남도 서양화단을 주도했던 시기로 오지호의 화업을 이어나간 아들 오승우(1930~2023)·오승윤(1939~2006·전 전남대 교수), 그리고 장손 오병욱(전 동국대 교수)의 작품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제3부에는 1970년대 이후 빛과 색채로 구축한 남도의 풍경뿐만 아니라 1974년, 1980년 두 차례의 여행을 통해 담아낸 유럽풍경들과 그가 유작으로 남긴 미완의 작품 ‘쎄네갈 소년들’(1982)을 만날 수 있다. 문헌과 사진, 실물자료 등을 토대로 구성한 아카이브는 ‘오지호화백작품전’(1948), ‘아미타후불탱화’(1954)와 미술론·미술비평, 국·한문 혼용운동, 문화재 보전운동 등 다양한 활동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이외에 오지호 작가의 화업을 이어나간 장남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차남인 오승우, 그리고 오승윤과 오병욱의 대표작품이 출품돼 근현대 서양 화단을 이끌어온 오지호 일가의 회화 세계를 재조명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프랑스의 인상파를 소개하기 위한 취지로 인상주의 대표작가인 클로드 모네와 빈센트 반 고흐의 예술세계를 VR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제공된다.

이지호 관장은 “오지호는 인상주의 화가이지만 민족주의자로 다른 작가와는 확실한 차별점이 있다. 사실 진작 열었어야 할 전시인데 다소 늦은 감이 있다. 내년이 탄생 120주년이고 제가 처음 가봤던 곳이 화순 동복 소재 오지호 생가였다”면서 “전시를 준비하던 무렵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다. 더욱이 올해는 1874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회 인상파 전시로부터 150주년을 기념하는 큰 의미를 갖는 해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개막식은 19일 오후 3시, 전시연계 행사인 국제 학술세미나는 28일 오후 2시 각각 진행된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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