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격문턱 높이자 사무소엔 인력절벽… 구조적 순유출 현실화
건축설계 현장의 인력난, 일시적인 현상일까?
대한건축사협회에 따르면 건축사사무소의 인력난은 이제 단순한 구인난을 넘어 구조적 위기로 번지고 있습니다. 특히 1~4인 소규모 사무소에선 퇴사자가 입사자의 3배에 달했고, 5~9인 규모의 사무소도 이탈 인력이 훨씬 많습니다.
2023년 전체 건축서비스 산업에서도 입사자는 1만7천 명, 퇴사자는 1만9천 명을 넘어설 정도로 순유출 현상이 심화되고 있죠. 그 중심에는 ‘건축사 자격시험’이라는 높아진 장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2027년부터 더 어려워진다… 진입 조건의 벽
오는 2027년부터는 5년제 인증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3년간의 실무수련을 마친 사람만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전체 건축 전공자 중 78.1%를 차지하는 4년제 이하 졸업생 또는 비인증 교육과정 이수자들을 제도권 밖으로 밀어내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실무능력이 있어도 자격시험 자체를 볼 수 없는 이들이 늘어나고, 이들이 결국 업계를 떠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시험만 통과해도? 그마저도 '설계 중심'의 편협함
현행 자격시험은 실기 중심 평가 체계입니다. 건축설계1, 설계2, 대지계획 등 설계 위주의 과목만으로 자격을 판단하다 보니 실제 업무와 괴리감이 크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최근 해체공사 감리제도 도입, 구조기준 강화 등 현장의 업무 범위가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험은 여전히 '도면 작성'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식이 커지고 있습니다.
법령해석도, 기술조정도… 현실은 더 복잡하다
오늘날 건축사는 설계만 하는 직종이 아닙니다. 구조 안전 검토부터 법령 해석, 기술 설비 조정까지 다방면에 걸친 역량이 요구되지만, 자격시험은 이런 종합 능력을 충분히 평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무수련 과정에서도 시공, 감리, 법규 등 다양한 영역을 경험하지만, 시험은 이를 배제한 채 설계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 현장과 시험 사이의 간극이 더 벌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시험 구조,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건축사연구원은 자격시험을 '기획–설계–기술–감리'의 4대 역량군으로 나눠 다단계, 다분야로 재편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실기뿐 아니라 필기, 면접 등을 통해 종합적 소양을 평가하고, 수련과정도 연차별, 과목별로 체계적으로 관리하자는 겁니다.
이와 함께 4년제 비인증 졸업자나 전문대 출신에게도 일정 보완교육과 경력을 조건으로 응시 기회를 부여하는 등, 진입 장벽을 낮추되 실질적 역량 중심으로 기준을 바꾸자는 제언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시험은 단절이 아니라 연결이어야”
건축설계업계는 현행 제도가 역량 있는 인재들의 유출을 부추기고 있다고 입을 모읍니다. 실무에 적응하고 경험을 쌓기 시작할 즈음, 자격의 벽에 부딪혀 업계를 떠나는 구조.
이는 곧 중소 건축사사무소의 생존 문제로도 직결되고 있습니다. 시험은 단지 통과 여부를 가르는 벽이 아니라, 인재를 성장시키고 산업을 지탱하는 연결고리가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