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 첫 경기만 치르고 대회가 멈췄다. 여수 진남체육관, 팬들은 두 번째 경기를 기다렸지만 장내 아나운서의 “중단” 안내만 들었다. 국제배구연맹(FIVB)의 제동 때문이다. 세계선수권이 한창인데 컵대회를 강행했고, 외국인 선수 출전까지 시도했다. 결과는 파행. “예고된 참사”라는 말이 과하지 않다.

문제는 새롭지 않다. 세계선수권이 열리는 동안 대회를 치르지 말라는 규정, 종료 후 3주 룰, ITC(국제이적동의서) 발급 금지… 다 알려진 기본이다. 그런데도 “친선 성격이라 괜찮다”는 해석으로 밀어붙였고, 구단과 감독들이 수차례 보낸 우려에도 “문제 없다”는 답만 되돌려줬다. 대회 전날 밤에야 외국인 선수 불가 통보, 개막 당일 돌연 중단. 이건 악재가 아니라 실수의 결과다.
13일 남자부 개막전(현대캐피탈–OK저축은행)은 국내 선수만으로 진행됐다. 곧이어 열릴 예정이던 2경기(KB손해보험–삼성화재)는 다음 날 오전으로 미뤄졌다. 자정까지 FIVB 승인을 못 받으면 남자부 전면 취소. 컵대회의 시작이 곧 끝이 될 수 있는 시간표가 공개적으로 흘렀다.

관중은 허탕을 쳤다. 첫 경기와 두 번째 경기 표를 따로 판 탓에, 2경기 팬들은 안내도 부족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일부는 환불을 받게 됐지만, “당일 현장 중단”의 피로감은 남았다. 여수시와 스폰서, 중계사, 선수단 모두가 불똥을 맞았다. 여자부는 예정대로 진행한다지만, 남자부가 비면 대회는 반쪽이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국제대회 기간 금지 원칙. 세계선수권 기간엔 각국 대회를 멈추라는 게 FIVB의 기본 입장이다. 둘째, 세계선수권 종료 후 3주 룰. 이 때문에 V리그 개막전도 기존 10월 18일에서 내년 3월 19일로 바뀌었다. 개막전 일정을 맞추기 위해 개막전 경기를 뒤로 미루는 것이다. 이미 한 차례 일정 수정까지 겪었는데, 컵대회에서 같은 지점을 다시 밟았다.

외국인 선수 문제도 예견 가능했다. 세계대회 기간 ITC 발급이 불가하니, 외국인은 못 뛴다. 작년엔 세계대회가 없어 ITC가 미리 나왔고, 외국인들이 뛰었다. 그 기억을 올해에 그대로 대입한 게 오판이었다. “이벤트 대회라 예외”라는 논리는 상금·스폰서·중계까지 갖춘 현실 앞에서 설득력을 잃었다.
외국인 감독들과 구단들은 일찌감치 문제를 짚었다. 국제대회 규정, ITC, 일정 충돌… 다수의 문의와 경고가 있었다. 돌아온 답은 “진행 가능”. 개막 전날 밤 10시쯤 외국인·아시아쿼터 불가 통보가 떨어지자, 구단들은 “사실상 통보”라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대회 첫날, 1경기만 치르고 중단. 팬과 선수, 지역 주최 측이 모두 불편을 떠안았다. 이건 결과론이 아니다. 준비 단계에서 충분히 피할 수 있었고, 현장이 이미 수차례 신호를 보냈다. 무시된 건 위험 신호가 아니라 절차였다.
스포츠에서 가장 참기 힘든 장면은 “왜 멈췄는지 모른 채” 기다리는 시간이다. 표를 들고 입장했지만, 이유 설명은 모호했고, 안내 인력도 부족했다. 환불 공지와 무료입장 전환 같은 뒷수습이 뒤늦게 나왔지만, 현장 신뢰는 쉽게 복구되지 않는다. 팬이 떠나면 스폰서도 멀어진다. 경기력 이전에, 경험이 흔들렸다.

선수들도 손해다. 시즌 전 전술 점검, 로테이션 테스트, 신인 적응… 컵대회는 “몸값을 높이는” 무대가 아니라 “정확히 맞춰보는” 공간이다. 이 시간을 잃으면 초반 리그 경기력이 흔들리고, 부상 리스크도 커진다. 행정의 빈틈은 결국 선수 몸과 팬 시간에서 비용을 회수한다.
FIVB가 이번에 더 강하게 제동을 건 건, 한국 남자 대표팀이 세계선수권에 참가 중인 상황에서 국내 컵대회를 연 것 자체를 “공개적 규정 위반”으로 본 탓이 크다. “친선”이라는 국내 논리보다, “일정 충돌”이라는 국제 규범이 우선했다. 계속 밀어붙였더라면 벌금·징계 가능성도 있었다. 그나마 멈춰서 더 큰 손실은 피했다.
문제는 신뢰다. 한 번의 파행은 사고, 두 번은 습관이 된다. 개막전 변경에 이어 컵대회 중단까지 겹치자, “일정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국제적 인식이 쌓일 수 있다. 일정·규정·승인, 이 셋은 스포츠 행정의 기본 중 기본이다.

“친선 대회라서 괜찮다”는 말은 팬들에게 통할지 몰라도, 국제 규정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규정은 해석의 영역이 아니라 약속의 영역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누군가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손실로 바뀐다. 이번 일의 본질은 그래서 ‘소통의 오해’가 아니라 ‘절차의 누락’이다.
이제 필요한 건 사과문을 넘어선 시스템 고치기다. 일정은 보수적으로, 승인은 서면으로, 안내는 즉각적으로. 기본 중 기본을 지키면 파행은 사고가 아니라 예방될 수 있는 변수로 내려온다. 팬은 결과보다 과정을 기억한다. 다음에 똑같이 멈추지 않는 것, 그게 지금 KOVO가 보여줄 최소한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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